[삶의 향기] “제게도 순교할 믿음을 주소서!”

등록날짜 [ 2025-04-28 10:32:20 ]

지난주 삼일(수요)예배를 마칠 무렵, 담임목사님께서 “우리 연세가족은 이번 작정기도회 기간에 순교의 믿음을 갖도록 기도하세요”라고 당부하신 말씀이 마음 깊이 남았다. 담임목사님의 당부를 들으며 ‘얼마 안 있어 한국교회에 극심한 핍박이 닥칠 수도 있겠다’는 다급함을 느꼈다. 지금은 영적으로 풍요롭게 살고 있지만 갑작스레 핍박이 닥친다면 과연 믿음을 지킬 수 있을까. ‘순교’라는 단어가 막연하게 느껴지는 지금, 과연 나는 핍박의 시대를 제대로 준비하고 있는가.


그러다 얼마 전, 북한 인민군이 남한을 점령했을 때 믿음을 지키고 순교한 이판일 장로에 관한 콘텐츠를 접하게 되었다. 과연 그분은 어떻게 죽음 앞에서도 예수를 부인하지 않고 순교의 믿음을 가질 수 있었을까.


이판일 장로가 30대 중반에 접어들 무렵인 1931년. 성령 충만한 전도사가 그에게 진실하게 복음을 전했고, 앞서 예수를 만난 아내와 자녀들도 적극적으로 전도한 끝에 이판일 장로 역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피의 공로를 뜨겁게 경험했다. 며칠 지나지 않아 이전에 즐기던 술과 담배를 완전히 끊은 후 하나님 말씀과 반대된 행동을 고쳐 나갔고, 그가 눈에 띄게 달라진 모습을 지켜본 이웃들이 그를 변화시킨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고 싶어 교회로 오기 시작했다. 삶이 변화된 모습만으로도 복음 전도가 된 것이다. 그 후 약 20년간 복음을 전하며 성령 충만한 삶을 살았다.


6.25사변이 발발한 1950년. 임자도(전라남도 신안군)가 공산군에 장악되었고, 교회는 공산당 사무소로 바뀌었다. 이 장로 역시 공산당에게 붙잡혀 온갖 수모를 겪었지만 결코 신앙을 포기하지 않았다. 겨우 석방된 후에도 얼마 지나지 않아 교우들과 가정집 밀실에서 예배드리다가 공산당에게 발각되었다. 공산당원은 “예수를 믿지 않겠다고 말하면 살려 주겠다”라고 회유했으나, 이판일 장로와 그의 가족 그리고 교우들은 누구도 예수님을 부인하지 않았다.


결국 노모와 조카가 잔인하게 죽창에 찔려 죽는 모습을 본 이 장로는 무릎을 꿇고 생의 마지막 기도를 드렸다. “주여! 부족한 종과 우리 모두의 영혼을 받아 주소서. 또 저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죄를 사하여 주소서.” 기도를 채 마치기 전, 이판일 장로는 큰 몽둥이를 뒷머리에 맞아 순교했다. 그날 48명이 함께 순교했는데, 그중 13명이 이 장로와 그의 가족들이었다.


한 달 후 임자도가 수복되어 그의 둘째 아들인 이인재 목사가 국군과 함께 섬을 다시 찾아 가족을 죽인 원수들을 붙잡았지만, 아버지의 기도처럼 “당신들을 용서합니다. 이것은 오로지 하나님의 사랑 때문”이라며 복음을 전했다. 이후 이인재 목사는 임자도진리교회를 담임하였고, 아버지를 죽인 공산당원의 자녀 결혼식도 주례하며 임자도 주민들의 영혼을 한평생 섬겼다. 현재는 이 장로의 손자인 이성균 목사가 같은 교회를 담임하고 있다.


이판일 장로의 신앙 일대기를 알게 된 후 ‘순교의 믿음’을 새 기도 제목으로 삼았다. 이번 ‘40일 그리고 10일 작정기도회’에서도 ‘작정기도’를 삶의 최우선순위에 두고 순교의 믿음을 응답 받는 데 마음 쏟을 것이다. 일상의 삶에서 신령한 가치를 선택하는 작은 행동들을 차곡차곡 쌓아 가면 순교해야 하는 순간에도 신령한 선택을 담대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막연하게 여기던 순교의 믿음을 알게 하시고 기도하게 하신 주님께 모든 영광을 올려 드린다.



/박채원 기자(신문발행국)



위 글은 교회신문 <896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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