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가 오시는 대로(大路) <12·下>] 유다, 공동체를 지키다

등록날짜 [ 2025-04-28 10:59:58 ]

형들에게 극도로 미움 받았던 요셉

유다가 목숨 살리려 팔자고 제안해

훗날 베냐민 대신 인질 자처할 만큼

공동체 유지하고자 마음 다한 유다



애굽의 생명수인 나일강을 따라 상부(남쪽) 이집트로 가면 룩소르(Luxor)가 나오는데, 그곳에서 가장 유명한 유적지가 바로 카르나크 신전(Temple of Karnak)이다. 현존하는 신전 중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카르나크 신전은 이방 신들을 섬긴 애굽 왕들이 여러 차례 증축했다.


당시 애굽의 곡창 지대 고센(Goshen). 이곳에서 생산된 작물은 거대한 곡식 창고 성읍에 저장해야 될 만큼 풍부했다. 그 곡식을 얻으려고 애굽에 온 유다와 형제들은 큰 위기에 처했고, 형제들을 구하고자 유다는 큰 희생을 자처하는 용기를 보인다.


<사진설명> 국제우주정거장에서 본 나일강 삼각주(야경). 나일강 삼각주는 이집트 전체 면적의 2%에 불과하지만, 이집트 인구의 41%가 살고 있다. 나일강 삼각주는 야곱과 그 가족들이 정착해서 출애굽 때까지 거주한 고센 지역이며, 그 당시 고센 지역도 자원이 풍부하여 한 가족이 들어가서 한 민족이 되어 나오게 된다.



<사진설명>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영토.야곱의 아들들이 식량을 구하러 애굽까지 오가다가 총리가 된 요셉을 만났고, 요셉을 만난 것을 계기 삼아 야곱의 가족이 애굽으로 이주한다. 야곱 일가가 애굽으로 이주한 목적은 훗날 유다로 이어지는 메시아 계보를 이어 가기 위함이었다.




<사진설명> 카르나크 신전. 현존하는 세계 최대 신전이며 1500여 년에 걸쳐 지어졌다. 이 신전 건설에 애굽 노예였던 이스라엘 백성이 강제 동원됐다.


▶윤석전 목사: 유다의 삶도 예수님이 오시는 대로에 한 역할을 담당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유다의 삶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일까요?


▶권혁승 교수: 성경은 유다를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지 않습니다.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겠지만 부정적인 관점으로 평가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떠한 탁월한 인물이라기보다는 그들의 형들보다 비교적 낫다고 하는 상대적 평가를 내릴 수 있습니다.


맏아들 르우벤은 아버지의 침상을 더럽히는 성적 문란을 저질렀습니다. 이 성적 문란이 고대로 올라가면 우상숭배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상숭배를 영적 음란이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또 차남 시므온과 삼남 레위는 세겜 사람들을 살해하는 잔혹함을 보여 주었습니다. 사람과 사이에서 살인하면 안 된다고 하는 하나님의 계명을 어긴 것입니다.


십계명은 하나님에 대한 계명과 인간을 향한 계명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음란과 살인은 십계명의 두 가지 큰 계명을 어긴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하나님께서 예수의 족보에 들어갈 인물로 유다를 선택했다고 볼 수 있으며, 하나님께서 음란과 살상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교훈도 얻을 수 있습니다.


▶윤석전 목사: 하나님께서는 열두 형제 중에 유다를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들어가도록 선택하셨습니다. 유다가 아름다운 인물은 아니지만,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축복을 이어 받을 수 있는 자격자로 보셨기에 유다를 예수가 오시는 길로 삼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보잘것없고 이 세상에서 소외된 자일지라도 많은 이를 귀하게 사용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유다의 형들처럼 우상이나 간음이나 살인 같은 잘못을 저지르고도 뉘우칠 줄 모르거나 하나님 마음을 아프게 해서 하나님의 축복에서 제외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아버지가 요셉을 편애했다고 하더라도 형제들이 동생을 죽이려 했다는 것이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형들이 요셉을 미워한 까닭도 알려 주세요.


▶권혁승 교수: 두 가지를 들 수 있습니다. 하나는 요셉이 형들과 함께 아버지의 양을 칠 때 아버지에게 형들의 잘못을 고하게 됩니다. 혹자는 요셉이 형들을 감싸 주지 못했다고 비난할 수도 있지만, 성경은 형들의 잘못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창37:2).


결론적으로 형들의 잘못을 눈감아 줬다면 이는 아버지를 위해서도 안 좋은 일이며 형들을 위해서도 안 좋은 일입니다. 예를 들어 형들이 아버지의 양을 치다가 몇 마리를 팔아 버렸다고 한다면 아버지에게 손해를 끼치는 일입니다. 설상가상 양을 판 돈을 가지고 노름을 한다든지 술집에 가서 탕진했다면, 이는 아버지에게 잘못한 일이면서 형들이 점점 죄에 빠져들도록 놔둔 잘못하는 일입니다.


그런 점에서 요셉이 형들의 잘못을 아버지에게 고한 것은 형들을 잘못된 길에서 돌이키게 하려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 점에서 형들이 미워한 이유 중 하나가 자기들의 잘못을 고발한 일이었으나, 그 고발은 요셉의 관점에서 보면 아버지와 형들 모두를 살리는 길이었습니다.


다른 하나는 하나님이 주신 꿈을 꾼 이유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꿈은 요셉을 이끌어 가는 힘이기도 했으나 그 내용이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형들의 곡식 단이 자기 곡식 단에 절하고, 해와 달과 별들이 자기에게 절하는 꿈을 꿨는데 그 꿈 내용을 형들에게 말해 버린 것입니다.


꿈을 마음에 간직하기만 하지, 왜 말한 것일까요? 이는 하나님이 주신 비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비전은 나눠야 합니다. 요셉이 꿈을 나눴기 때문에 훗날 형들이 총리인 요셉을 만났을 때 하나님의 비전을 깨닫게 됩니다. 당장은 꿈 내용을 말한 것 때문에 요셉이 어려움을 겪었지만, 신앙적으로 볼 때 하나님의 비전은 숨겨 두지 말고 공유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요셉은 신앙 때문에 핍박을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도 그러한 요셉의 행동을 귀하게 보셨다고 생각합니다.


▶윤석전 목사: 성지에서는 왜 양을 많이 키우는지 궁금합니다.


▶홍순화 교수: 성지에 양이 많은 이유는 양을 키울 수밖에 없는 환경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양은 척박한 사막과 광야 그리고 강수량이 적은 지역에서도 잘 견딜 수 있습니다. 성경에 가장 많이 인용된 동물이 양인 것처럼 양을 키우기 적합한 지역이고, 예수님께서도 목자와 양의 비유를 많이 말씀하셨습니다.


특별히 성지의 양은 ‘어떻게 저런 것을 먹고 버티나’라고 생각할 만큼 생존력이 강합니다. 성지에 가 보면 길 양쪽에 언덕이 있고, 자세히 보면 ‘양의 길’이라는 가로 줄들이 나 있습니다. 양들이 위아래로 오르락내리락하지 못하고 옆으로 왔다 갔다 하면서 잔디 같은 풀을 먹은 흔적입니다. 성지에 가면 양들이 지그재그로 언덕을 올라 다니면서 풀을 뜯어 먹은 자국이 길게 나 있습니다.


반면 소는 아무 곳에서나 못 키웁니다. 소는 풀이 굉장히 풍부한 지역에서 키워야 합니다. 성경에 “바산의 암소들아”(암4:1)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갈릴리(Galilee) 북동쪽의 바산(Bashan) 지역은 무척 비옥한 지역입니다.


▶윤석전 목사: 성지의 양들이 다니기 힘든 경사진 곳을 좌우로 다니면서 풀을 뜯는 모습이 떠오릅니다. 양의 생애가 힘든 것을 생각하며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인 예수님의 생애도 떠올리게 됩니다.


유다는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려 염려를 덜어 드리는 좋은 아들이었습니다. 또 많은 형제가 요셉을 죽이려 했지만 그를 어떻든 죽음에서 건져 애굽의 장사꾼에게 팔려가게 한 것도 동생을 살리려는 의도였습니다.


형제들이 애굽으로 내려가 양식을 얻을 때 총리가 된 요셉 앞에서 고개를 숙였습니다. 그때 요셉이 막내 베냐민의 자루에 자신이 쓰던 은잔을 넣어 놓고 “네가 내 것을 훔쳤으니 여기 머물러라”라고 말할 때 유다는 기꺼이 “내 동생을 보내 달라. 내가 여기에서 죽든 살든 머무르겠다”라고 말하며 자기 형제들을 책임지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살리려고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시고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신 것처럼 유다도 자기 목숨을 담보 삼아 자기 형제들을 구원해 냅니다. 하나님께서 이러한 유다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가 오실 길을 열어 가셨습니다. 다음 시간이 또 기대됩니다. 감사합니다.




위 글은 교회신문 <896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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