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청년회 에스크(ASK) 종강예배
캠퍼스 위해 기도하게 하신 주께 영광
등록날짜 [ 2011-08-23 11:27:34 ]
알렉산드리아를 중심으로 여러 곳에 교회 세워
마가기념교회(The Church of St. Mark)
콥트(Copt)는 이집트에 사는 고대 이집트인으로 그리스도의 단성설(單性說-神性)을 신봉하던 사람들을 말하며, 그 명칭은 그리스어 아이깁티오이(Aigiptioi, 이집트인)에서 나온 아랍어 킵트(Kibt) 또는 쿱트(Kubt)에서 유래한다. 콥틱(Coptic)은 콥트인 혹은 그들이 사용하는 말을 지칭한다.
주후 451년 칼케돈 종교회의에서는 로마 가톨릭 교회와 콥틱교회를 분리했다. 로마 가톨릭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人性)과 신성(神性) 두 가지를 주장했지만, 콥틱교회는 신성만을 주장했기 때문인데, 그때 로마 가톨릭과 갈라진 이후 콥틱교회는 지금까지 독자적인 길을 걸어왔다.
콥틱교회는 자기들의 교회 출발 원년(元年)을 주후 284년으로 한다. 로마 황제 디오클레시안(Diocletian)이 즉위한 해다. 교회 역사에서는 이 황제가 통치한 기간을 ‘순교자 시대’라고 부르는데, 극심한 박해로 콥틱교인이 많이 순교했다. 콥틱교회에서는 순교자 시대가 시작하는 해를 콥틱교회 공식 원년으로 삼고 있다.
이집트는 국가 정책과 시민 생활을 종교가 좌우한다. 아버지의 종교에 따라 자녀의 종교가 결정되고, 신분증에도 종교 표시를 한다. 이집트는 이슬람 국가임에도 콥틱교인이 750만 명에 달하고, 전체 인구 중 15%를 점하고 있다. 국민 대다수가 모슬렘이기에, 소수인 콥틱교인은 언제나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 그러나 콥틱교회는 이러한 종교 탄압에도 굴하지 않는다. 콥틱교인은 오른 손목 안쪽 중앙부분에 하늘색으로 작은 십자가 문신을 하여 평생 변함없이 콥틱교인임을 자부한다.
카이로에는 콥틱교회 총 본산인 교황청이 있고, 그 안에 마가교회가 있다. 마가교회는 카이로(람세스) 중앙역에서 약 3km 지점인 아밧시아 거리(Abassia Street)에 있다. 카이로 시민은 마가교회보다는 콥틱 교황청이라고 하면 쉽게 이해한다.
마가 요한은 사도 바울과 전도여행을 떠난 최초의 선교사였고, 마가복음을 기록했다. 마가 요한이 알렉산드리아에 처음 복음을 전파하고 교회를 세운 것을 시작해서 이집트 곳곳에 십자가가 세워졌고, 오늘날까지 기독교인들이 믿음을 지키고 있다.
교황청 안에는 건물이 여러 채 있다. 교황청 앞에는 주후 1200년에 세운 루이스교회가 있고, 주후 1968년 그 인접 지역에 마가교회를 웅장하게 건축했다. 이 교회는 2층 전체가 본당이며, 1층은 마리아교회, 비쇼이교회 등 교회와 용도별 부속 사무실이 있다. 마가교회 뒤편 지하층에는 마가의 묘(Shrine, 廟)가 있어 마가의 유해가 안치돼 있다. 알렉산드리아에서 순교한 후 여러 곳에 흩어진 유해를 모아 이곳에 안치했다고 한다.
콥틱 박물관(Coptic Museum)
둥근 지붕인 조지교회와 바벨론 성채 사이에 있는 넓은 부지에 콥틱 박물관이 있다. 이 박물관은 주후 1908년에 건축을 시작해서 1910년에 개관했다. 주후 1세기에서 오늘날까지 약 2000년을 이어온 콥틱교회 역사를 유물 약 14만 점과 함께 생생히 관람할 수 있다.
박물관 1층에는 주로 4~6세기 콥틱교회 건축물의 원추 기둥(Columns), 기둥머리(Capitals), 머릿돌은 섬세하고 아름답게 조각됐다. 그리고 2층에는 파피루스와 양피지 등에 색채로 아름답게 필사한 콥틱성경 사본들이 진열돼 있다. 고대 콥틱교회 제사장과 사제들이 입던 에봇 종류, 여러 가지 직물, 장식품, 농기구 등 다양한 유물들도 전시돼 있다. 이곳은 콥틱교회 역사를 조명해 주어 신앙의 뿌리를 살펴볼 중요한 박물관이다.
위 글은 교회신문 <254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