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여전도회 2024 결산총회
한 해 영혼 구원에 사용해 주심 감사
등록날짜 [ 2022-11-14 19:48:04 ]
최후의‘그 날’성도에게 닥칠
고난 핍박 사실적으로 전하며
신앙의 정절 지킬 것을 당부해
재상연 위해 단원 모집하는 중
<사진설명> 뮤지컬 <그 날> 중 핍박받는 장면에서 주요 출연진들이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 곡을 찬양하며 신앙을 지킬 것을 다짐하고 있다.
<사진설명> 백스테이지에서 분장팀과 스태프가 충성하는 모습. 배우·앙상블·댄스팀 등 출연진과 무대 제작·의상·소품·분장·헤어·음향·조명·촬영 등 스태프까지 70여 명이 투입된 대작이다.
지난 2009년 ‘교회설립 23주년 감사행사’에서 초연한 이래 10여 년 동안 상연되고 있는 뮤지컬 <그 날>은 종교통합운동으로 기독교인이 핍박받고 있는 가까운 미래를 배경 삼아 “예수를 부인하라”는 회유와 혹독한 고문에서도 끝까지 신앙을 지킨 정 목사와 신앙인들의 삶을 그리고 있다. 우리 교회 청년들이 주축이 되어 만든 <그 날>은 마태복음 24장을 무대에 그대로 옮겨오기 위해 회를 거듭할 때마다 여러 차례 각색을 거치며 작품의 완성도를 최고로 끌어올렸다.
성경을 오롯이 담아낸 복음 뮤지컬
뮤지컬 <그 날>은 성도들의 마음과 상상 속에 있었을 최후의 날, 피 흘리며 순교하는 모습을 무대 위에서 적나라하게 펼친다. 많은 성도가 몰살당하거나 죽음의 고통과 고문당하는 장면 등을 보여주며 성도에게 닥칠 ‘그 날’의 현실을 처절하게 그려낸 것이다. 3시간 가까이 펼쳐진 뮤지컬 내용은 성도들에게 닥칠 환란과 핍박 그리고 최후의 승리를 여과 없이 보여주며, 이를 통해 멸망에 이르게 할 거짓 세상에 속하지 말 것을 애타게 경고한다.
뮤지컬의 대단원, 주인공인 정 목사가 갖은 고난을 받으면서도 신앙을 더욱더 강하게 붙드는 모습을 보며 관객들은 경외와 감동을 동시에 경험한다. 예수를 부인하라는 회유와 고통에도 응할 수 없는 이유는 예수의 십자가 피의 공로에 대한 신앙 양심 때문이요, 육신의 때의 고통보다 더한 영혼의 때의 영원한 고통이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작품 속 성도들이 극한의 고통 중에도 예수를 좇아 피 흘림의 고난을 따라가면서 찬양하는 모습은 아름답기까지 하다. 주가 보시기에 아름다운 그 모습이 내 모습이 되어야 할 것이다.
말세를 준비하게 할 뮤지컬의 힘
뮤지컬이 펼쳐지는 무대는 하나님의 마지막 날을 온전히 보여주기에는 미흡한 게 사실이나, 성도들에게 닥칠 최후의 그 날을 배우의 연기와 각종 무대장치를 통해 최선을 다해 그려내기에 관객들은 온몸이 떨리는 전율을 경험한다. 성경을 그대로 담아낸 생명력 넘치는 작품에 의해 작품 속 인물들의 고난이 무대를 초월해 성도들에게 닥칠 고난으로 전해지기 때문이다.
그 고난의 실감은 순교한 정 목사가 끝까지 신앙을 버리지 않은 것처럼 성도들로 하여금 최후의 날에 대한 각오를 새롭게 한다. 극 피날레에서 전 출연진이 주제곡 ‘지져스 커밍 데이’에 맞춰 새하얀 옷을 입은 채 화려한 군무를 선보일 때, 성도들도 함께 손뼉을 치면서 어떠한 핍박과 고난이 닥치더라도 영적생활을 끝까지 승리하리라 다짐한다. 온갖 고난을 이기고 하나님 나라의 영복(永福)을 뮤지컬로 경험한 성도들은 고난 너머의 하나님 나라에서 받을 축복이 무엇인지 이미 알고 있다.
매회 상연할 때마다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야 뮤지컬 <그 날>이 나오게 된다. 한 땀 한 땀 주님께서 만들어주신 은혜이다. 뮤지컬의 무대가 우리 성도들에게 닥칠 삶의 무대라는 사실이 느껴지도록 만드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지만, 우리 교회 배우들이 주님 심정으로 애타게 기도하며 극한의 노력을 기울였기에, 또 말세를 준비하라는 주님의 애타는 사랑이 있기에 매회 상연할 때마다 말세를 준비할 마음을 다잡게 한다.
한편, 지난 2019년 9월 8일(주일) 오후 예루살렘성전에서 마지막 공연을 올려 드린 뮤지컬 <그 날>을 다시 상연할 예정이다. 문화복음선교국(이대호 국장)은 뮤지컬 상연을 위해 현재 단원들을 모집하고 있다. 신앙의 정절을 당부할 뮤지컬 <그 날>에 청년들을 비롯해 많은 연세가족들이 지원하기를 소망한다. 말세지말에 가져야 할 신앙의 정절을 소유하게 될 복된 충성의 기회가 되기를 기도한다.
위 글은 교회신문 <774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