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대곤 목사 칼럼] 죄를 해결하러 오신 ‘예수 그리스도’
마가복음 강해⑥

등록날짜 [ 2023-07-02 21:44:15 ]

예수님은 죄 사함의 권세를 가지고

죄인을 불러 그 죄를 해결하는 것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이라고 선포하셔

죄 문제 해결받아 참 안식을 누려야


마가복음 강해⑥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그대로 이루신 분입니다. 구약의 예언대로 이 땅에 오셨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고 공생애 기간에 쉴 새 없이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예수께서 가버나움 세관 앞을 지나가십니다. 세관에서 업무를 보던 레위(마태)에게 “나를 좇으라”(막2:14)라고 부르시며 제자로 삼으셨습니다. 마태의 직업은 당시 유대인들이 가장 혐오하던 세리입니다. 유대 사회에서 죄인이자 매국노로 낙인찍힌 세리를 제자로 부르신 것과 그에 앞서 갈릴리 출신 어부들을 제자로 삼으신 것도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주님의 일꾼이 된 것은 남보다 의롭거나 더 훌륭해서가 아닙니다. 우리는 마태처럼 세상에서 멸시받는 낮고 천한 사람들인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사 예수를 구주로 믿게 하시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신분으로 변화시켜 주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고전15:10).


“그(마태)의 집에 앉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예수와 그 제자들과 함께 앉았으니 이는 저희가 많이 있어서 예수를 좇음이러라”(막2:15).


마태의 집에서 세리와 죄인들 그리고 예수와 제자들이 함께 식사했습니다. ‘죄인’으로 지목된 사람들은 실제 범죄를 저지른 게 아니라, 유대인의 전통을 지키지 않는 이들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이들과 교제하는 것 자체가 하나님 앞에 범죄하는 행위라고 여겨 세리와 똑같이 무시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모두 죄인이라는 점에서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의 은혜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존재입니다. 또 모든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된다는 사실도 같습니다.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롬3:20). 율법은 우리에게 죄를 깨닫게 할 뿐 단 한 사람도 의에 이르게 하지 못합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입니다.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서는 단 한 사람도 천국에 들어서지 못합니다(요14:6).


바리새인의 서기관들이 “어찌하여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먹는가”라고 항의했습니다. 예수님은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막2:17)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죄를 사해 줄 수 있는 권세를 가지고 죄인을 불러 그 죄를 해결하는 것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이라고 선포하셨습니다.


당시 바리새인들은 죄인을 상대해서는 안 될 기피 대상으로 취급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을 치료해야 할 환자로, 찾아야 할 잃어버린 양으로 인식했습니다. 자신이 죄인임을 발견하지 못하는 사람은 예수께 올 수 없습니다. 스스로 의롭다고 여기는 사람들은 죄인의 구주인 예수께 오기를 거부합니다. 우리 모두가 죄인(롬3:23)인데도 이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자기 실체를 알지 못하는 사람은 구원받을 기회를 놓치고 맙니다. 그래서 우리는 애절하게 예수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이 예수께 와서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의 제자들은 금식하는데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아니하나이까”(막2:18)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예수께서 “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때에 금식할 수 있느냐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는 금식할 수 없나니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 그날에는 금식할 것”(막2:19~20)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금식하는 이유는 하나님과 사이를 회복하려는 데 있습니다. 하나님과 사이를 회복하면 참 안식을 누리고, 참 안식은 죄가 없는 사람만 누릴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죄를 사하는 권세를 가지고 죄 사함을 얻게 하여 안식을 주러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죄인을 불러 그 죄를 해결해 주시고, 죄 때문에 금식하고 고민하는 많은 사람이 그 근심과 걱정에서 자유하고 신랑과 함께 기뻐하는 혼인잔치처럼 우리에게 기쁨을 주러 오신 것입니다.


그런데 당시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고 나서도 유대인들의 핍박과 억압 때문에 유대교로 돌아가는 일이 많았습니다. 예수님이 죄를 사하는 권세를 가지고 우리 안에 오셔서 죄에서 자유롭게 하셨는데, 그 큰 은혜를 얻고도 자꾸만 죄에 얽매이고 율법주의로 돌아간 것입니다.


또 안식일에 예수께서 밀밭 사이로 지나갈 때 제자들이 길을 내면서 이삭을 잘랐습니다. 안식일에 이삭을 자른 것이 율법을 범한 죄에 걸리기 때문에 이 모습을 본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안식일에 일을 한다고 따졌습니다(막2:23~24). 그때 예수께서 다윗왕이 자기와 함께한 자들이 시장할 때 제사장 외에는 먹지 못하는 진설병을 먹은 일(삼상21:5~6)을 예로 들면서 “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막2:27~28)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당시 많은 사람이 안식일에 율법과 장로들의 유전에 매여 전전긍긍하면서 하나님이 주신 참 안식을 누리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진정한 안식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부담을 느끼고 자기 나름대로 죄를 짓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마음속에 하나님을 바라보는 게 아니라 행위만 바라보았습니다. 그들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다고 착각한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오해하고 형식에 얽매여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지 못하고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자들에게 예수께서는 온전한 안식을 주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사람을 위해 안식일이 있고 하나님 안에서 그 안식을 누려야 한다고 말하며 그들에게 ‘참 안식을 줄 자가 바로 나’라고 말씀하십니다. 죄에서 완전히 분리되어 하나님 말씀 안에서 저주와 질병과 고통에서 보호받는 것이 진정한 안식입니다.


예수님은 안식일의 주인으로서 우리에게 참 안식을 주시는 분입니다. 형식적이고 타성에 젖은 신앙은 참 안식을 누리지 못합니다. “나는 죄인입니다. 죄를 사해 주시는 예수님이 꼭 필요합니다”라고 고백하며 죄를 해결받아 참 안식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위 글은 교회신문 <805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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