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전 목사의 ‘성막과 예수 그리스도’] 예수를 보여주는 그리스도의 편지
윤석전 목사의 ‘성막과 예수 그리스도’(96)

등록날짜 [ 2012-08-07 13:46:17 ]

사람은 속에 무엇을 새기느냐에 따라 행동 나타나
버릴 것은 버리고 깨끗한 심령으로 말씀을 담아야

성막 지성소에 있는 법궤에는 하나님 말씀을 쓴 돌판 두 개만 넣어 두었습니다(출25:16). 우리도 하나님 말씀만 내 심비에 새겨 놓아야 합니다. 절대로 마귀역사를 새겨서는 안 됩니다.


<사진설명> 법궤에 둔 돌판 두 개.

하와에게 뱀이 나타나서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하고 처음 말을 걸어올 때 하와가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선악과를 먹지 말라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셨다” 하고 단호하게 대답했다면, 뱀이 더는 말을 걸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와가 하나님 말씀과 달리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하고 흐릿하게 말하니까 뱀이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라” 하고 적극적으로 미혹했습니다.

이렇게 뱀이 한 말이 믿어지니 결국 하와가 선악과를 따 먹고 남편에게도 주어서 똑같이 멸망하게 되었습니다. 마귀역사를 마음에 새기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심비에 새겨야 할 말씀
교회에서도 시험 든 사람이 하는 말이 믿어지면 같이 시험에 듭니다. 그 사람 말이 마음에 새겨지기 때문입니다. 시험 든 사람을 만나서 자기 귀를 내주면, 그 말이 심비에 새겨집니다.

이처럼 하나님 말씀을 들어도 심령으로 들어가 심비에 새겨지고, 마귀가 시험하는 말을 들어도 심령에 들어가면 심비에 새겨집니다. ‘믿어졌다’는 말이 곧 ‘새겨졌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마귀가 하는 말이 믿어지지 않도록 내 속에서 쓸데없는 것들을 다 찾아내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오직 주님 말씀만 내 심비에 새겨지게 해야 합니다. 시험 들게 하는 소리, 믿음에서 떠나게 하는 소리, 남 흉보는 소리라면 듣지 말아야 합니다.

누가 내게 조금만 거리끼는 말을 해도 마음에 담아놓고 ‘기분 나쁘게 왜 사람을 무시해?’ 하는 불평불만이 나오면 큰일납니다. 잘못 새기면 안 된다는 말입니다. 어떤 말을 들어도 내게 유익하도록 심비에 새기면 시험 들지 않습니다.

마귀는 시험 들게 하니 마귀가 가져다주는 생각은 지우고,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 말씀만 내 심령에 기록해야 합니다. 마귀가 나를 함부로 사용하지 못하게, 하나님만이 역사하시게 나를 지켜야 합니다.

마귀가 주는 편지는 지워라
“회개하라”는 말은 마귀가 우리 마음에 써 놓은 글씨를 지우라는 말입니다. 이렇게 마음에 새겨진 것을 빨리 전환할 줄 알아야 복 받은 사람입니다. 내 속에 남을 흉보는 말이 쓰였으면 흉보는 사람이 됩니다.

혈기가 쓰였으면 혈기 내는 사람, 교만이 쓰였으면 교만한 사람이 됩니다. 짜증이 쓰였으면 짜증내고, 번민이 쓰였으면 번민하고, 불만이 쓰여 있으면 불만하고, 불평이 쓰였으면 불평하고, 걱정근심이 쓰여 있으면 걱정 근심합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11:28)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너희 모든 짐은 내게 맡기라. 네 심비에 써 놓지 말고 내게 맡겨라. 그리고 너희는 해결됐다고 믿어라. 그렇게 마음에 써 놓으면 그렇게 되리라” 하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씀대로 역사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자기 심비에 무엇을 기록하든지 기록한 대로 되게 하십니다. 그런데 무엇 하러 망할 내용을 써서 망합니까? 그러므로 내 마음을 마귀가 사용하지 못하게, 불의가 사용하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주님이여, 나는 당신이 쓴 편지입니다. 당신만이 내 심비에 쓰시옵소서. 내게 잘못 새겨진 것을 다 철수하시옵소서. 백지(白紙)로 만드시고 당신이 새로 쓰시옵소서!” 하고 내 심비를 내드려야 합니다.

시험 든 자가 있거든 그렇게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나태한 자도 다시 시작하십시오. 기도하기 싫은 자도, 믿음이 없는 자도 새로 시작하기 바랍니다. 그래서 첫사랑을 회복해야 합니다. 버릴 것은 버리고 깨끗하게 살아야 합니다. 마귀에게 속아서 마음으로, 행동으로 쓴 편지는 다 지워야 합니다.

예수를 보여주는 편지
빌립이 예수께 하나님을 보여 달라고 하자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을 인하여 나를 믿으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요14:9~12).

즉, 예수를 보면 아버지를 보는 것이니 예수가 하는 일을 보고 아버지를 보라는 말입니다. 이같이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아버지를 보여주는 편지입니다. 또 우리를 그리스도가 쓴 편지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하는 행위를 보고 예수를 알아야 하고, 나를 보는 자는 예수를 보는 것 같아야 합니다.

최후의 심판 때는 우리 속에 무엇이 쓰였는지를 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 만나는 그날을 바라보고 주님 뜻대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지 않도록 회개하고 바로 살아야 합니다. 멸망할 날이 홀연히 오기 전에 고쳐 써야 합니다. <계속>

위 글은 교회신문 <300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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