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차 해외단기선교 사역보고
소경과 벙어리가 보고 들었습니다

등록날짜 [ 2004-03-29 13:29:16 ]

■ 카자흐스탄 <1> - 탈디 쿠르간

카자흐스탄에는 120여 민족이 있는데, 카작인 51%, 러시아인 32%, 우크라이나인 4%, 10만 여명의 고려인 들이 살고 있다.

카작인들의 이슬람화된 민족적 정체성과 러시아 정교회를 섬겼던 구소련의 탄압 속에서 형성된 기독교에 대한 반감 때문에 실제로 카작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란 매우 어렵다. 그러나 91년 구소연방의 해체와 급속한 변화상황으로 인해서 카작인들은 기독교를 포함한 서구적 세계관에 대해서 현재 매우 개방적인 태도이다.

지금 복음에 관한 호기심이 열려 있다. 현재 7천명의 기독교인이 있다고 한다. 강력한 회교집단의 압력 하에서 회교도가 40%, 기독교도가 27%를 차지하고 있다.

단기선교팀은 15일간의 일정으로 카자흐스탄 제1의 도시 알마티와 이곳에서 버스로 5시간 떨어진 탈디 쿠르간에서 사역했다.



▲ 탈디 쿠르간= 가는 곳곳 치유와 구원의 역사가 120여 민족이 거주하는 카자흐스탄에서 이번 사역의 주요 초청자들도 이란인, 카작인, 러시아인, 고려인들이었다.

‘탈디 쿠르간 두나미스교회’에서 류보비 전도사와 함께 6명의 선교팀은 드라마, 태권도, 댄싱, 워십, 장고 등의 공연 사역과 교회초청 전도 집회, 가정 심방 전도, 미개척 지역(우시도백) 전도 집회, 공공기관(고아원, 보통학교, 유치장) 방문 전도 집회 등을 열어 총 사역 결과 267명이 결신하고 70명의 환자가 치유를 받았으며, 10명이 방언은사를 받았다.

▲ 미개척지역 우시도백에 가정교회 개척 = 탈디 쿠르간에서 버스로 한 시간 걸리는 우시도백은 1938년 구소련이 사할린에서 고려인들을 강제로 호송하여 이주시킨 최초의 고려인 정착지이다.

통역을 도와준 차이라 자매의 가정에서 이루어진 가정교회개척 사역에는 이란인, 카작인들도 많이 와서 예수를 영접했다. 선교팀이 처음 가보니 차이라 자매의 친인척 4명밖에 없어 초청자 보기가 민망했다. 팀원들은 한복과 공연복을 서둘러 갈아입고 뛰어나와 눈이 녹아 질척한데다 가축의 배설물로 범벅이 된 땅을 누비고 다니며 집집마다 사람들을 초청해서 27명이 모였다.

1차 사역에서 복음을 듣고 믿음이 생겨 기도를 받은 후 병을 고친 사람들은 더욱 큰 믿음으로 말씀과 기도를 사모했고, 소문이 나서 2차 사역에는 새로운 사람들과 아픈 사람들이 더 많이 왔다.

1,2차로 나누어 사역하는 동안 53명이 초청되어 53명 전원이 결신하고 20명의 환자가 고침을 받았다. 이들 중 윤계순 할머니와 이란인 소녀 슬비암을 잊을 수 없다.

▲ 목발은 필요 없어요 = 차이라 자매의 집에서 많은 사람들이 병을 고친 것을 지켜 본 한 고려인 남자가 있었다. 그도 자기의 칠순 노모가 지난 3여년 동안 목발을 짚지 않으면 거동할 수 없는 상태니 기도해 주기를 간청해왔다. 정은심 집사가 예수의 십자가 공로에 대한 설교를 하고 나서 윤계순 할머니는 결신했다.

선교팀이 성령께서 할머니에게 걸을 수 있는 힘을 주시도록 합심하여 기도하고 믿음으로 걸으라고 하자, 할머니는 처음에는 힘들다며 걷다가 포기했지만, “예수님이 힘주실테니 두려워말고 걸으시라”며 믿음으로 단호하게 재촉하자 다시 일어나 걷기 시작했다. 할머니는 곧이어 목발을 집어 던졌으며, 쉬시라고 놓아드린 의자마저 한 쪽으로 밀쳐버리고 계속해서 걸었다. 모두는 벅찬 가슴으로 하나님께 뜨거운 감사와 영광의 박수를 올려 드렸다.

▲ 선천적 소경 슬비암의 눈이 보여 = 윤계순 할머니의 치유 소문을 듣고 복음과 기도받기를 사모하며 선천적 소경 자매 슬비암이 예배에 참석했다.

이란인으로서 10대 후반인 슬비암은 옆에 앉아 있었던 심광성 집사도 보지 못하는 소경이었다. 공연을 하고 정은심 집사가 말씀을 증거한 후 팀원들이 함께 환자를 위해 기도할 때, 그녀의 언니가 먼저 심장병을 위해 기도를 받고 나았다는 확신을 받은 후, 동생인 슬비암을 데리고 나왔다. 류보비 전도사와 팀원들은 하나님께서 역사해 주실 것을 믿으며 간절한 마음으로 예수 이름으로 기도해 주자 “주변의 사람들이 보인다”며 그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소극적인 성격 탓이라지만 왠지 석연찮은 반응에 우리는 다시 한번 기도해주었으나 “비교적 잘 보인다”고 말하는 그녀의 표정에서 병을 고쳤다는 기쁨을 찾아 보기는 힘들었다. 안타까운 마음에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혀 고통받으시고 채찍에 맞으시고 죽으신 것은 ‘바로 너’를 구원하시고 ‘너의 병’을 고쳐주시기 위한 것”이라며 간곡하게 믿음을 심어주고 세 번째 기도해 주었다. 그러자 그녀는 자신에 찬 목소리로 “방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다 보인다!”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성령의 놀라운 역사하심을 바라보며 살아계신 하나님을 체험하는 귀중한 시간이었다.

그 자리를 지켜보던 카작인, 러시아인, 이란인, 고려인 할 것 없이 모든 사람들이 그녀를 축하하고 기뻐하며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려 드렸다.

▲ 교도관도 예수 믿다 = 교도소 내에서의 전도활동 자체가 이 나라에서는 불가능한 것이었는데 하나님께서는 교도관의 마음을 움직이셔서 선교팀의 사역을 가능케 하셨다. 싸늘한 냉기와 더러운 냄새로 절어 숨쉬기조차 어려운 감옥에서 죄수들은 공연을 보고 복음을 들으며 마음을 열더니 29명 중 20명이 결신했다.

문제와 질병으로 기도받기를 사모하는 자 6명이 기도를 받았다. 심한 두통 때문에 기도 받은 ‘빔따르’는 “통증이 없어지고 마음이 매우 기쁘다”며 고백했고, 중풍기로 기도를 받은 가름잔은 기도를 받는 중에 귀신이 요동하는 듯 배를 움켜쥐고 고통스러워하더니 이내 환한 얼굴로 “몸이 가볍고 편안해졌다”며 하나님께 감사했다.

예수를 구주로 영접한 교도관 이반도 기도를 요청했다. 그는 간을 거의 다 떼어내고 다리도 아팠는데 기도받을 때 “온 몸에 땀이 흐르고, 몸이 뜨거워지고 다리가 편안해졌다”며 기뻐했다.

하나님을 사모하고 믿음으로 의지하고자 하는 그의 심령을 주님께서 먼저 예비하시고 죄수들과 교도관에게 복음의 기쁨과 능력을 맛보게 하셨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 벙어리 소년 제냐 말하다 = 교회 옆집에 사는 불신자 고려인 할머니가 집회에 참석한 후 심장병으로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던 남편과 어두운 표정의 벙어리 손자 제냐를 데리고 왔다. 살리고 싶은 주의 심정으로 가득 차 간곡하게 전하는 심광성 팀장의 복음을 듣고 믿음의 기도를 받은 할아버지가 심장병이 나았다고 고백했다.

그 다음 날부터 매일 교회에 와서 저녁 6시 예배에 참석한 할아버지의 얼굴색은 매우 환했고, 표정도 매우 밝아 하나님께서 그를 완전히 고치셨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올해 10살인 손자 제냐는 “어버버” 정도 외에는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하는 상태였다. 정은심 집사가 “제냐를 위해 십자가에서 채찍에 맞으시고 죽으신 예수가 분명히 고쳐주실 것”이라며 믿음을 심어 주고, 팀원들은 성령께서 역사하셔서 입이 자연스럽게 열려 말할 수 있도록 간절하게 기도했다. 따라서 말해 보라는 류전도사의 요구에 더듬거리던 제냐가 “이수스(예수)!”라며 또렷한 목소리로 말하더니 곧이어 “할렐루야!”도 따라 외쳤다. 기뻐 어쩔 줄 몰라하는 할아버지 할머니 옆에 앉아 그 맘때 소년이 지녀야 할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기쁨에 가득차 있는 제냐의 얼굴은 무척이나 행복해 보였다. 함께 예배하고 기도한 많은 사람들이 탄성을 지르며 기뻐했고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그 크신 능력에 영광을 돌려드렸다.

그리고 이후의 선교일정 속에서 이 믿음의 가정은 계속 예배에 참석해 할머니도 선교팀의 기도를 받고 결핵을 고쳤으며, 할아버지와 제냐는 방언은사를 받았다.

▲ 교통사고 후유증에서 해방 = 하나님의 계획하심 가운데 모일 곳을 찾고 있던 장애인협회에서 먼저 두나미스 교회에 단기선교팀과 함께 집회를 가질 것을 요청해 전도집회를 열게 되었다.

선교팀 전원은 이 집회를 위해 전날 금식을 했다. 그 중에 올랴는 석 달 전에 있었던 교통사고의 후유증으로 말이 심하게 어눌해지고 누가 부축해주지 않으면 걸을 수가 없어서 휠체어에 앉아야만 하는 20대의 러시아인 기혼 여성이었다. 올랴를 비롯한 장애인들은 설교를 듣고 예수를 영접하고 기도받기를 사모하며 자리에 남아있었다. 선교팀원들은 두 그룹으로 나누어 환자들을 위해 기도했는데, 심광성 팀장이 올랴를 위해 하나님의 말씀과 권고로 믿음을 심어주고 두 명의 팀원이 함께 간절히 기도했다. 그러자 올랴는 이제는 약간 어눌하게 말도 하고, 어색하게나마 성전 안을 걸어 다니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불과 10cm 높이의 계단도 오르지 못했는데 기도 받은 후 계단이며 성전 내부 어디든지 마구 걸어 다니며 금세 자연스러운 보행자세를 갖추었다. 또한 앉았다 일어났다를 거듭하며 기쁨과 놀라움으로 어찌할 줄 몰라했다.

올랴 자신도 자신에게 일어난 놀라운 일에 확신하며 감격하고 “자신이 건강해야만 자녀들을 돌볼 수 있다”며 울먹이며 하나님께 지극한 감사를 표현했다. 지금까지 지켜보고 있던 그의 모친은 눈물을 흘리며 사랑하는 딸을 안고 하나님께 감사를 올려 드렸다.

<카자흐스탄 단기선교 보고 다음 호에 계속 >

위 글은 교회신문 <58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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