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사는 분명한 우상숭배이다
미풍양속 명목아래 귀신 섬기는 명절 경계

등록날짜 [ 2009-09-22 15:21:49 ]

천지만물과 구원 베푸신 하나님만 경배해야


몇 년 전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추석에 국민 10명 중 4명은 ‘즐겁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고, 남자들은 ‘경제적 부담감 때문에’, 여자들은 ‘가사 노동의 부담감’ 등으로 반갑지만은 않은 추석을 맞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명절만 되면 크리스천들에게는 또 하나의 스트레스가 존재한다. 이 땅에 기독교가 전파된 이래 끊임없이 제기되어 온 ‘제사 문제’가 그것이다.
<창세기>에서 아담의 첫째 아들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하나님께 드렸고, 둘째 아들 아벨은 양을 잡아 제물을 드리며 제사를 드렸다. 오랜 세월 후 노아시대 대홍수 이후 노아와 그 가족은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짐승을 취하여 번제로 제사를 드렸다. 아브라함도 그가 살았던 BC 2090년경부터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짐승을 취하여 제사를 드렸다. 이처럼 성경을 보면 천지창조 이후 인류의 시작부터 하늘의 하나님께 제물을 바치며 제사를 드렸고, 모세 시대인 BC 1440년 경 레위기를 통해 하나님께서 제사에 대한 각종 규례를 정해 주셨다.
일연이 쓴 <삼국유사>에 보면 단군왕검은 평양에 도읍을 세워 고조선을 세웠고 참성단(塹星壇)을 만들어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 BC 2세기에 세워진 부여에서는 영고(迎鼓), BC 37년에 세워진 고구려는 동맹(東盟), 그리고 3세기에 세워진 동예(東濊)에서는 무천(舞天)이라 하여 풍성한 수확을 주신 하늘의 신에게 감사하는 농제(農祭)를 올렸다고 한다.
성경과 역사 속의 많은 나라들이 하늘의 신에게 제사를 드렸음을 말하고 있다.
추석은 <삼국사기>에 의하면 AD 30년경 신라의 3대왕 유리 이사금 때 가배놀이에서 기원한다. 가배는 길쌈놀이로서 베를 짠 양을 가지고 진 편이 이긴 편에게 잔치와 춤으로 갚는 놀이였다.
처음에 놀이로 시작하였던 추석은 조선시대에 바뀌었다. 주자학이 조선의 국가 정교(政敎)의 기본강령으로 정해지고 왕족부터 사대부(士大夫)의 집안으로, 그리고 평민에게까지 보편화되기에 이르렀다. 16세기 중엽부터 성리학이 심화되면서 주자가 유가(儒家)의 예법의장(禮法儀章)에 관하여 상술한 <주자가례>가 정착하게 되고 이 책에 명시된 4대 조상까지 제사를 지내는 전통이 오늘날까지 이르고 있다.
이처럼 추수를 위해 감사하는 모습은 하늘에 알지 못하는 막연한 신에게서 점차 변화되고 변질되어 사람에게로 감사의 대상이 바뀌게 되었고, 이는 곧 조상에게 제사를 드리는 것으로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온 가족이 모이는 것은 너무도 좋은 것이다. 그러나 제사라는 미명 아래 만들어진 명절에 대해서는 분명히 우리 기독교인은 경계해야 할 것이다. 이미 제사는 하나의 형식에 불과하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되겠는가. 그러면서도 마지못해 행하는 것은 지금과 같은 ‘정보과학시대’에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어리석은 행위이다.
또한 성경은 말한다.
“대저 이방인의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 나는 너희가 귀신과 교제하는 자 되기를 원치 아니하노라”(고전10:20)
제사의 모습과 형태는 시대에 따라 변화하면서 각 나라마다 다양한 모습으로 바뀌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 바뀔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세상풍속의 변화에 따라 귀신에게 제사하고 귀신과 교제하는 우상숭배의 죄를 지어서는 절대 안 될 것이다.
이제 곧 3,000만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추석을 맞이하여 햇과일과 햇곡식을 차려놓고 귀신에게 제사를 지낼 것이다. 하나님께서 주신 풍성한 오곡백과와 천지만물을 누리면서 마귀에게 속아 조상이 주었다고 귀신에게 절하며 우상숭배할 때 하나님의 마음은 얼마나 아프시며, 인간의 배신에 대해 얼마나 분노하실까?
추수감사절과 추석을 맞이하여 오직 천지만물을 주시고 그 아들 예수를 주셔서 구원의 열매를 맺게 하신 하나님께만 경배하고 예배드려야 한다. 이제 곧 추석축복성회가 있다. 추석을 맞이하여 온 가족이 우상숭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신령하고도 참된 축복을 누리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가정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영육 간에 풍성한 열매를 맺는 추석이 되길 바란다.

위 글은 교회신문 <167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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