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전 목사와 함께하는‘성서의 땅을 가다’(227·上)] 납달리 지파의 요지‘하솔’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땅(51)

등록날짜 [ 2022-02-28 22:02:31 ]

윤석전 목사: 가나안 ‘하솔(Hazor)’의 왕 야빈(Jabin)은 가나안으로 진군해 들어오는 이스라엘 군이 얼마나 두려웠던지 가나안 전 지역의 군대를 모아 연합군을 조직해 이스라엘에 대항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정착을 막고자 모인 연합군대의 수가 해변의 모래알처럼 많았다고 여호수아서 11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이스라엘의 손에 넘겼고 그들은 패배하고 말았습니다. 여호수아는 야빈을 죽이고 하솔을 불태웠습니다(수11:10~11). 하나님의 군대에 맞서 싸우다 처절하게 패배한 하솔로 가 보시겠습니다. 바로 납달리 지파의 땅입니다.



이스라엘 북부 국경지대에 있는 고대 도시 하솔. 이곳은 일찍이 여호수아에게 정복당해 납달리 지파에게 분배됐다. 특히 토지가 비옥하고 물이 풍부해 솔로몬 시대에는 하솔을 요새화했다. 그 흔적으로 현재 발굴되고 있는 거대한 수로는 당시 이곳의 풍부했던 물 사정을 짐작케 한다. 광대한 유적 터가 있는 하솔은 납달리 지파가 살면서 번영을 누렸던 곳이다.



<사진설명> 텔 하솔 유적지. 80ha(헥타르)에 달할 만큼 이스라엘에서 가장 큰 규모의 유적지로 알려져 있다. “하솔은 본래 그 모든 나라의 머리였더니”(수11:10) 말씀처럼, 하솔은 시대를 막론하고 이곳을 차지한 나라들마다 중요하게 여긴 성읍이었다.



<사진설명> 이스라엘 시대의 6칸 성문. 적의 침투를 막고자 솔로몬 왕은 하솔에 요새를 쌓았고(왕상9:15), 유사한 형태의 성문이 므깃도, 라기스 등에서도 발견되었다.


<사진설명> 하솔 주변 지도. 하솔은 갈릴리에서 북쪽으로 16㎞ 정도 떨어진 곳에 있고, 단에서부터 남쪽으로 25㎞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 하솔 바로 옆에 그 당시 제일 중요한 해변길이 지나가고 있어 교통의 요지였고, 땅도 비옥한 데다 가까이에 훌라 호수도 있어 물도 풍부한 지역이었다.



윤석전 목사: 하솔이 어디에 있는지 지도를 보면서 알려 주세요..


홍순화 교수: 이스라엘 영토는 서쪽에 지중해가 있고, 해변가를 따라 해안평야지대가 남북으로 펼쳐져 있습니다. 더 동쪽으로 오면 산악지대가 시작됩니다. ‘갈릴리(Galilee)’ 지역은 둘로 나뉘는데, 해안도시 ‘악고(Acco)’를 기준 삼아 악고의 북쪽은 상부 갈릴리, 악고의 남쪽은 하부 갈릴리라고 부릅니다. 하솔은 상부 갈릴리에서 제일 중심 되는 도시였습니다.

하솔은 갈릴리에서 북쪽으로 16㎞ 정도 떨어진 곳에 있고, ‘단(Dan)’에서부터 남쪽으로 25㎞ 정도 떨어진 곳에 있습니다. 이곳이 중요한 이유는 하솔 바로 옆에 그 당시 제일 중요한 해변길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 토지가 굉장히 비옥하고, 지금은 거의 매립돼서 흔적을 찾을 수 없지만 바로 가까이에 ‘훌라 호수(Lake Huleh)’도 있었습니다. 결론적으로 교통의 요지인 데다 땅도 비옥하고 중동지방에서 귀한 물도 풍부한 도시였습니다.

하솔을 실제로 가 보면 그 규모에 대해 놀랍니다. 면적으로 따지면 80ha(헥타르) 정도 되는데 성지순례 때 들르는 지역은 극히 일부분입니다. 하솔은 이스라엘에서 가장 큰 규모의 텔(Tel)로서 가장 큰 유적지로 알려져 있습니다.


윤석전 목사: 하솔은 교통의 요지요, 토지가 비옥하고 물도 풍부해 매우 소중한 곳이라고 느껴집니다. 솔로몬이 이곳을 요새화했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홍순화 교수: 교통의 요지였기 때문에 적군이 북쪽에서 쳐들어온다면 이 하솔을 지나지 않고는 이스라엘로 침투하기가 불가능했습니다. 그런 이유 때문에 하솔은 방어를 위한 요새로 방비되었고 이곳을 거점도시로 삼아 인근 지역을 다스렸습니다. 하솔은 시대가 바뀌어도 이곳을 통치하던 나라마다 중요하게 여기던 곳이었습니다.


윤석전 목사: 교통의 요지요 관문이었기 때문에 적이 지나가지 못하도록 하솔을 철저하게 지킨 것이 오늘날에도 충분히 이해됩니다. 사사기를 보면 가나안 민족에게 빼앗겼던 하솔을 이스라엘 민족이 되찾는 과정에서 사사 드보라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하는데 어떤 역할을 했나요?


권혁승 교수: 드보라는 사사 중 유일한 여자입니다. 사사는 여러 가지 기능을 수행하지만 외적이 침입했을 때 그 위기에서 구출하는 구원자 역할을 합니다. 그러므로 사사들은 대개 전쟁을 치를 수밖에 없는데 여자로서 전쟁을 감당한다는 것은 힘든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드보라는 바락이라고 하는 장군을 선발해 전쟁을 수행하도록 합니다.

하지만 실질적인 전략을 짠다든지 부대를 배치한다든지 하는 일은 드보라가 담당합니다. 전투는 바락이 하지만 실질적인 지휘권은 드보라가 가졌다는 것입니다.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이라는 성경 말씀은 여호와 하나님이 총사령관이라는 뜻입니다. 드보라는 여자였지만 하나님과 영적 관계가 확실했기 때문에 힘이 좋은 바락도 드보라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사기 4장 8절에도 “바락이 그에게 이르되 당신이 나와 함께 가면 내가 가려니와 당신이 나와 함께 가지 아니하면 나는 가지 않겠노라”(삿4:8)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저는 이 사건을 보면서 하나님과 얼마나 가까이 있느냐가 영적인 능력이라고 깨닫습니다.


윤석전 목사: 하솔에 대한 역사적 연구 내용을 더 말씀해 주세요.


홍순화 교수: 하솔이라고 하는 유적지는 80ha 정도 되는 아주 넓은 곳입니다. 그래서 수많은 고고학자들이 최근에도 계속해서 열심히 발굴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연구한 내용들을 정리해 보면 갈릴리 인근의 요지였기 때문에 청동기 시대에도, 이스라엘 민족이 이곳을 장악했을 때도 계속해서 도시로 형성되어 왔습니다. 또 바사(페르시아) 시대에도 이곳에 사람이 거주했고 헬라 시대에도 사람들이 살았습니다.

그런데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언젠가부터 하솔은 사람이 거주하지 않았고 그냥 유적지로만 남아 있게 됐습니다. 오늘날에도 고고학자들이 계속 발굴하는 데 열심을 내고 있는 도시이기 때문에 연구의 결론을 아직 말씀드릴 수 없을 만큼 큰 유적지라 할 수 있겠습니다.


윤석전 목사: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발굴해도 마치지 못할 만큼 넓은 지역인 듯합니다. 하솔에 대해 살펴보면서 납달리 지파의 땅 소개를 마감하고, 아셀 지파의 성읍 중 지중해에서 가장 컸던 항구 ‘시돈(Sidon)’으로 가 보겠습니다. <계속>


위 글은 교회신문 <738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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