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전 목사와 함께하는‘성서의 땅을 가다’(228·上)] 부유한 항구도시‘두로’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땅(53)

등록날짜 [ 2022-03-15 18:18:15 ]

무역 왕성해 ‘부(富)의 상징’ 도시

원래 섬이었으나 현재 반도 형성

딸 문제 해결받은 두로 여인처럼

간절히 기도해서 응답 얻어 내야




윤석전 목사: 시편 92편에 “의인은 레바논의 백향목과 같이 성장한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시92:12). 그 때문인지 솔로몬은 성스러운 법궤를 만들었던 조각목(싯딤나무)이 아닌 레바논의 백향목을 성전 건축 재료로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백향목을 구했던 레바논의 성읍에서, 신약시대 예수님께서 한 여인의 귀신들린 딸을 고쳐 주신 이적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담긴 아셀 지파의 성읍, ‘두로(Tyre)’로 가 보겠습니다.



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에서 남쪽으로 약 80km를 달리면 두로가 나온다. 이 지역에서 가장 훌륭한 항구였기에 두로는 교역의 중심지가 되었다. 순례팀은 이스라엘의 솔로몬(Solomon, BC 970~930)에게 백향목을 보낸 히람왕(Hiram, BC 986~935)의 무덤을 찾았다. 당시 두로의 왕이었던 히람은 솔로몬과 무역을 통해 우정을 쌓았다. 그러나 두로는 결국 로마의 속국이 되고 말았고, 그 흔적으로 로마 개선문과 마차 경주장이 남아 있어 당시 상황을 짐작케 한다. 비록 로마의 속국이 되었지만 당시 무역을 통해 번성했던 두로는 아셀 지파의 중요 성읍으로 남아 있다.



<사진설명> 두로항 모습.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에서 80km 남쪽에 있는 두로는 고대 페니키아 도시였고, 오늘날 레바논의 네 번째 큰 항구 도시이다. 바다를 중심으로 교통과 교역의 요지였던 두로는 구약시대 시돈과 더불어 레바논 부(富)의 상징이었다.



<사진설명> 두로는 ‘갈릴리’에서 북서쪽으로 55km, ‘시돈’에서 남쪽으로 40km 떨어진 곳에 있다. ‘레바논산맥’과 그 뒤쪽 ‘안티레바논산맥’ 사이에 자리하고 있어 안정적으로 농사를 지을 수 없었고, 그 탓에 자연스레 바다로 진출해 무역업을 했다.


<사진설명> BC 332년 그리스 알렉산더 대왕이 난공불락과도 같았던 두로를 침공하기 위해 본토와 해안 사이에 폭 60m, 길이 800m에 이르는 둑을 6개월간 쌓아 육지와 연결해 농성 중이던 두로를 공격해 차지했다. (왼쪽부터) 알렉산더의 침공 삽화, 두로의 과거·현재 해안선 비교, 현재의 위성 사진. 수세기 동안 둑 양쪽에 퇴적물이 쌓였고 본토와 연결된 반도를 형성했다.



윤석전 목사: 아셀 지파의 성읍 두로는 어떤 곳인가요?


홍순화 교수: 이스라엘의 북쪽은 현재 레바논 땅입니다. 레바논에도 해변이 있지만, 이스라엘과 달리 평야라고 할 수 있는 지역은 별로 없고 산악지대가 이어집니다. 두로는 ‘레바논산맥’과 그 뒤쪽 ‘안티레바논산맥’ 사이에 있습니다. 우리나라로 말하면 강원도 해안가와 비슷한 지형입니다. 두로는 ‘갈릴리(Galilee)’에서 북서쪽으로 55km, ‘시돈(Sidon)’에서 남쪽으로 40km 떨어진 곳에 있습니다.


두로는 원래 섬이었습니다. 큰 섬이 있었고, 큰 섬 남쪽에 신전이 있는 작은 섬이 있었는데 두로 왕 히람이 두 섬을 연결시켜 인구 3만 5000명 정도가 살 수 있는 하나의 섬으로 만들었습니다. 이어 BC 332년 그리스 알렉산더 대왕이 난공불락과도 같던 두로를 침공하기 위해 본토와 해안 사이에 폭 60m, 길이 800m에 이르는 둑을 6개월간 쌓아 육지와 연결한 다음 농성 중이던 두로를 공격해 차지했습니다. 이후에도 둑을 중심으로 퇴적물이 계속 쌓여 지금은 섬이 아닌 육지의 일부가 됐습니다.


두로는 지리적인 이점 때문에 무역으로 막대한 부를 쌓았고, 웬만한 국가 버금가는 권력과 힘이 있던 도시였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자주 옷감 장사 이야기에서 알 수 있듯이 두로는 그 당시 최고의 옷감이었던 자주 염색을 해서 수출하는 일로 부유해졌습니다. 또 백향목을 외부에 수출하고 여러 중개무역을 하면서 중동지역에서 위상이 대단하고 융성한 도시였습니다.


윤석전 목사: 예수님 시대에 두로에서 일어난 이적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홍순화 교수: 마태복음 15장 21~28절에 보면 가나안 여인이 자기 딸이 귀신들렸다며 도와달라고 하자 예수님께서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 나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않았다”라며 거절하십니다. 거듭 도와달라고 애원하자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줄 수 없다”라고 예수님께서 재차 거절하시는데 말 그대로 짐승 취급을 하신 것입니다. 그러자 여인은 “개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러한 믿음이 예수님을 감동시켰고, 자녀의 문제를 해결받는 이적을 경험합니다.


윤석전 목사: 예수님께서 “자녀의 떡을 뺏어 개에게 주는 게 마땅치 않다”라고 하신 것은 다시 말하면 “너는 개인데, 내 자녀가 먹던 떡을 빼앗아 너에게 주겠느냐”라는 뜻입니다. 사람으로서 감당할 수 없는 망신을 당한 것입니다. 하지만 여인은 주님 앞에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라고 말하며 믿음을 보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하나님 앞에 꼭 가져야 할 믿음이 아닌가 싶습니다. 귀신들린 딸의 어머니가 지녔던 믿음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인가요?


권혁승 교수: 예수님의 초기 사역은 주로 유대인을 대상으로 복음을 전하십니다. 열두 제자도 모두 유대인이었습니다. 이후 열두 제자를 통해 이방선교를 하시지만, 우선적인 것은 유대인 선교였습니다. 그런 점에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에 예수님의 의중이 들어 있다고 봅니다. 여인의 믿음은 예수님의 섭리적 역사, 즉 유대인을 우선한다는 것을 적극적으로 수용한 것입니다. 여인은 하나님의 역사를 수용했고, 그런 수용이 있을 때 “부스러기라도 주십시오”라는 겸손한 간구가 가능했다고 봅니다. 만약 여인이 섭리적 역사를 수용하지 못했다면, 자신이 모욕당한 감정을 앞세워 그 같은 기도를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여인이 하나님의 뜻을 수용했기에 겸손하게 기도할 수 있었으리라 해석합니다.


윤석전 목사: 주님은 능히 내 딸을 고칠 수 있는 분이라고 믿었고 지금 기회를 놓치면 고칠 수 없다는 절박감에 그런 믿음을 보였으리라 생각합니다. 우리도 여인처럼 겸손하고 주님을 향한 믿음과 절박함이 있다면 어떤 기도인들 응답되지 않겠는가 생각해 봅니다.


윤석전 목사: 고대 페니키아 지역이던 두로와 시돈이 지중해로 진출해 해상권을 장악할 수 있던 이유는 무엇인가요?


권혁승 교수: 불리한 여건을 적극적 자세로 극복했기 때문입니다. 두로와 시돈 지역은 바다와 뒤쪽의 산맥밖에 없습니다. 레바논산맥에서 나오는 백향목으로 배를 만들었고 누구도 관심 갖지 않던 바다로 진출할 수밖에 없던 여건 때문이었습니다.


윤석전 목사: 아셀 지파의 성읍 중 ‘사렙다(Zarephath)’와 ‘가나(Cana)’로 가 보겠습니다. <계속>


위 글은 교회신문 <740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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