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열왕 이야기 <15>] 바아사에게 왕조를 빼앗기다
나답<2>

등록날짜 [ 2012-06-05 19:33:03 ]

에브라임 왕조 무너지고 잇사갈 왕조 나타나
여로보암의 후손 완전히 멸절당하고 없어져

BC 930년경 솔로몬의 이스라엘 제국이 남과 북으로 쪼개져서 북쪽에는 요셉 지파 ‘에브라임 왕조’가 자리 잡고, 남쪽에는 솔로몬의 후계자 르호보암 왕이 ‘다윗 왕조’를 이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북쪽 이스라엘 왕국에서 여로보암의 에브라임 왕조가 그 아들 나답의 대에서 어이없이 망하고, 이스라엘 역사상 유례가 없는 잇사갈 왕조가(왕상15:27) 등장한다. 잇사갈 정권은 전쟁과 정변 속에서 정권 담당자가 여러 번 바뀌지만, 722년 북조 이스라엘 왕국이 망할 때까지 존속하게 된다.

잇사갈 왕조가 나타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반 쪽짜리였지만 제사장 나라의 명분을 지니고 있던 북조 이스라엘 왕국이 왜 잇사갈 왕조의 이름 아래 종말을 고하고 있는 것인가? 그 이유는 잇사갈 왕조의 문을 연 바아사 왕에게서 찾아야 할 것 같다.

바아사, 새 왕조를 열다
바아사의 조상인 잇사갈은(창30:18) 유다의 바로 아래 친동생이었다. 야곱의 첫째 부인 레아의 다섯 번째 아들이었으므로 그 역시 정통성이 있는 적자였다. 그러나 포용력 있고 똑똑한 형님 유다의 그늘에 가려서 빛을 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 이스라엘 제국이 분열할 때 잇사갈 지파는 유다 지파 다윗 왕조의 그늘을 떠났다. 그 원인을 찾으면, 다윗-솔로몬-르호보암으로 이어지는 다윗 왕조의 유다 지파는 친동생 집안인 잇사갈이나 스불론에게 오랜 세월 무심했다.

수도 예루살렘에서 귀족 생활을 하던 유다 지파는 가까이 사는 베냐민 지파나 제사장 집안인 레위 지파가 친동기간처럼 느껴지지, 변방인 북쪽 갈릴리 호수에 자리 잡아 먼 친척이 되어버린 잇사갈 지파나 스불론 지파에게 아쉬움이나 애정이 남아 있지 않았다.

이제 남은 것은 지배자와 피지배자와의 관계, 이익 집단 간의 이권 다툼뿐이었던 것이다. 무시당한 유다의 바로 아래 동생 잇사갈의 복수가 바아사의 권력욕을 빌어서 터져 나왔고 정권을 잡을 기회가 다가왔다. 전쟁터에서 무능했던 에브라임 왕조 여로보암 부자는 그 빌미를 제공했다.

여로보암 왕은 르호보암의 아들 아비야 왕의 군대에 쫓겨서 80만 대군 중 50만이 섬멸당하고 벧엘 지역마저 빼앗겨버렸다(대하13:3,17~20). 그 아들 나답 왕이 복수에 나섰지만, 예루살렘에 다가가지도 못하고 블레셋에서 가까운 깁브돈 성에서 발목이 잡혀버렸다(왕상15:25~27).

그러자 대군을 가지고도 작은 성 하나 점령하지 못하는 무능한 세겜 출신 왕에게 변방 갈릴리 족속들이 반기를 들었다. 그 중심에 에브라임 다음으로 정통성을 자랑하는 잇사갈 족속의 바아사 장군이 버티고 있었다.

그는 서슴없이 진중 모반을 일으켜 나답 왕을 암살하고 왕도를 세겜 성에서 북쪽 디르사로 옮긴 후 새 왕조, 즉 잇사갈 왕조의 성립을 전격적으로 선포했다.

“유다 왕 아사 제 삼년에 바아사가 나답을 죽이고 대신하여 왕이 되고 여로보암의 온 집을 쳐서 생명 있는 자를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고 다 멸하였는데 여호와께서 그 종 실로 사람 아히야로 하신 말씀과 같이 되었으니”(왕상15:28~29).

제사장 나라는 칼로 지킬 수 없다
칼로써 제사장 나라를 뒤집고 새 왕조를 열었다면 그 결과는 어떻게 될 것인가? 바아사의 잇사갈 왕조가 주는 역사적 교훈은 다음과 같다.

첫째로, 정통성이 약했기에 국내외적으로 끊임없는 전쟁과 정변에 휩쓸렸다. 정통성 있는 다윗 왕조의 남 유다가 이스라엘 통일을 명분으로 계속 쳐들어왔다. 바아사 왕은 24년 재위기간 내내 전쟁에 시달렸다(왕상15:32~33).

또 정변은 같은 잇사갈 족속 내에서 일어났다. 왕성 수비대장 시므리가 바아사의 후계자 엘라 왕을 죽이고 왕이 되었으나(왕상16:8~10) 즉시 전방 깁브돈에서 회군한 군대 장관 오므리에 의하여 그 세력이 꺾이고 말았다(왕상16:15~22). 반대파를 제거하고 무력으로 왕이 된 오므리는 6년 후 수도를 디르사에서 사마리아로 옮기고 다시 6년을 더 통치하다가 자신보다 더 악한 왕인 아들 아합에게 잇사갈 정권의 바통을 넘기게 된다(왕상16:23~34).

둘째로, 제사장 나라는 칼로써 지켜질 수가 없었다.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는 믿음으로 지켜지는 나라가 제사장 나라라고 볼 때, 바아사의 칼로써 지켜지는 이스라엘 왕국은 더는 제사장 나라가 아니었다.

여호와 보시기에 악한 왕 바아사는 여로보암의 길로 행했다(왕상15:34). 그래서 제사장 나라를 회복해나가고 있었던 유다의 아사 왕(왕상15:11~16)을 시기하여 평생 전쟁을 벌이고(왕상15:16) 민간교류마저 완전히 차단하고 말았다(왕상15:17). 바로 라마에 군사분계선을 설치한 것이다(마2:18).

그 결과 북조 이스라엘에는 무늬만 선지자 또는 사이비 선지자(왕상13:18)들이 나타나고 백성은 우상숭배에 빠져들었다(왕상14:9~10;16:1~3).

위 글은 교회신문 <292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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