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과학·3] 생명은 어디서 왔나·Ⅱ

등록날짜 [ 2016-12-21 14:58:32 ]


● 연재 순서

① 창조를 믿을 수밖에 없는 이유
② 생명은 어디서 왔나·Ⅱ
③ 노아 시대 대홍수/화석과 지층
④ 성경 속 과학 탐험
⑤ 성경 속 공룡 탐험


●진화론의 확대 역사
창조론자와 진화론자의 첫 공개 논쟁은 1860년 6월, 옥스퍼드 논쟁이었다. 헉슬리와 위버포스 대주교 사이의 논쟁이었는데, 진화론자의 승리로 끝났다. 헉슬리가 생물의 다양성을 진화의 증거로 제시한 반면, 창조론자들은 “종류대로 창조하셨다”는 말씀에 대한 연구 결과물을 증거로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1925년 미국에서는 스코프스 재판(원숭이 재판)이 열렸다. 그 당시 유럽에서는 진화론을 인정하고 있었지만, 미국은 거부하고 있었다. 그런데 미국 테네시주 데이튼 시 생물보조교사 스코프스가 진화론을 가르쳐 재판을 받게 되었다. 재판에서 스코프스가 내세운 중요한 증거는 ‘필트다운인(Piltdown Man)’이었다. 진화론자들은 이를 인간과 원숭이의 중간 단계 화석이라고 제시했다. 재판 결과 스코프스는 벌금형을 받았지만, 실제로는 미국에서 진화론을 가르치는 계기가 되었다.


<사진설명> 필트다운인 화석. 마모된 어금니는 인위적으로 줄질 되었고 모든 뼈는 오래된 것처럼 보이게끔 화학처리된 것으로 확인됐다.(좌)
필트다운인의 화석을 이미지 처리한 모습. 진화론자들은 사기로 드러난 화석을 이렇게 이미지화한 것이다.(우)


‘필트다운인’은 1912년 영국 런던 왕립 박물관장 우드워드 박사와 동료 과학자 도오슨이 학계에 발표했다. 실제로는 사람의 두개골과 원숭이 턱뼈를 조합하여 만든 조작품이었으나, 원시인으로 인정받았다. 1953년 연대 측정 결과 조작한 증거가 뚜렷해 1962년 사기극이라는 결론이 났다. 하지만 50년간 거짓 필트다운인의 영향은 강력했다. 그 당시는 그리스도인들조차 진화론을 사실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필트다운인 증거가 무너진 1962년 이후에야 창조 과학 단체가 설립됐다. 1963년 미국에서 창조과학연구회(Creation Research Society)를 설립했고, 1970년 창조론의 세계적 중추기관인 미국 창조연구소(ICR)가 탄생됐다. 우리나라에도 1981년 한국창조과학회(KACR)을 창립했다.

●교과서에 나타난 거짓 진화론의 증거들
진화론자들은 진화가 3단계에 거쳐 일어난다고 본다. 1단계는 무기물에서 유기물로 변하는 화학진화, 2단계는 유기물에서 생명체(세포)로 변하는 생명 발생, 3단계는 단세포 생명체에서 복잡한 생명체로 변하는 생물 진화다.

먼저 1단계 무기물에서 유기물로 변하는 화학진화가 가능할까? “모든 물질은 시간이 지날수록 무질서도가 증가한다”는 열역학 제2법칙에 따라 실제로 관찰 되는 사실은 유기물에서 무기물로 변화한다. 그러나 교과서에서는 1단계 진화의 증거로 1953년 밀러가 한 실험을 소개한다(지난 호에 소개). 밀러 자신이 1991년 “과거 우리가 주장했던 학설은 너무나 동화 같은 이야기였다. 태초에 생명이 어떻게 시작했는지 현재로써는 아무도 모른다”고 실토했지만 여전히 교과서에는 밀러의 실험이 진화 증거로 제시되고 있다.

2단계 유기물이 생명체로 변화되었다는 생명 발생을 살펴보자. 진화론에서는 물질이 오랜 세월이 흘러 우연히 생명체로 발생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최근 가장 단순한 생물체 중 하나로 말해지는 마이코플라즈마(Mycoplasma genitalium)에서 생명력을 가지는 데에 필요한 단백질이 최소 387개라는 것이 밝혀졌다. 이를 확률로 계산해 보면, 각종 항공기 부품들이 회오리바람에 하늘로 빨려 올라갔다가 땅에 떨어지면서 우연히 보잉747 점보 여객기로 조립될 확률보다 낮다. 과학적으로 보면, 단백질 한 개도 우연히 합성될 가능성은 없다. 그러나 진화론자들은 “확률적 계산으로 가능성이 없다는 주장은 의미가 없다. 왜냐하면 진화는 일어났기 때문이다”라고 주장한다.

1, 2단계 진화도 가능성이 없는데 하물며 3단계 단세포 생명체에서 어류, 양서류, 파충류, 조류, 포유류로 진화할 수 있을까?

과학교과서에는 시조새(鳥)를 새의 조상이라고 소개하면서 ‘파충류와 새의 중간 단계’라고 말한다. 그러나 시조새는 비행 깃털, 날개, 횃대를 움켜쥐는 발, 차골 등과 같은 조류의 핵심적인 특성을 갖고 있다. 따라서 시조새는 새의 조상이 아니라, 멸종된 새에 불과하다. 사이언스(Science) 지(誌)는 1978년에 일반 새 화석이 시조새 지층보다 오래된 곳에서 발견되었다고 밝혔다. 중고등학교 과학교과서 중에 진화 증거로 시조새를 소개하는 교과서도 있고 그 부분을 삭제한 교과서도 있다(교과서진화론개정추진회 자료참고).

또 교과서에서는 말(馬)을 진화의 증거로 제시한다. 진화론자들은 말이 에오히푸스→오토히푸스→폴리오히푸스→에쿠우스(오늘날의 말)로 진화했다고 주장한다. 말 크기가 점점 커지고 있다. 그러나 말 크기 변화가 진화의 증거가 될 수 없다. 왜냐하면 현존하는 아르헨티나산 팔라벨라 말은 키가 50cm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또 에오히푸스와 현존하는 말인 에쿠우스가 같은 지층에서 발견되었고, 화석들이 변화 순서대로 한 지층에서 나온 적이 없고, 여기저기 불규칙하게 불연속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에오히푸스는 현존하는 아프리카산 바위너구리와 거의 같다.

진화론자들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자바인→북경원인→네안데르탈인→크로마뇽인으로 두개골이 진화되었다고 믿는다. 그러나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원숭이였고, 네안데르탈인과 크로마뇽인은 사람이었다. 네안데르탈인은 꾸부정한 모습을 지녀 20만 년 전에 활동한, 유인원에서 한층 진화한 인간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후에 곱추병 환자였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리고 크로마뇽인은 프랑스 동굴에서 발견된 것으로 5만 년 전 인간으로 추측되었으나, 뇌 용적이 현대인보다 크고 동굴에 정교한 벽화를 남겼다. 따라서 네안데르탈인과 크로마뇽인은 현대 인류와 차이가 없는 완벽한 사람이었다. 자바인은 듀보아가 1891년 발견했는데, 15m 떨어져 있던 원숭이 머리뼈와 사람 다리뼈를 조합하여 만들었다. 1922년 사람 두개골이 발견되자, 자바인이 거짓이었음을 고백했다.


<계속>

자료 출처-창조과학회


/조신애 기자
(이화여대 과학교육과 졸, 前 중학교 과학 교사)

위 글은 교회신문 <508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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