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용어 알파와 오메가·77] 성경을 ‘상고’하는 자가 누릴 영혼의 부유

등록날짜 [ 2021-02-09 18:12:12 ]

소나 기린 같은 초식동물은 ‘되새김질’을 한다. 풀·나뭇잎·열매 같은 식물을 먹고 한번에 소화하는 것이 아니라 첫째 위에 모아 뒀다가 이 내용물을 게워 내 수십 차례 곱씹은 다음 둘째, 셋째 위에서 더 잘게 부수어 장에서 영양소를 뽑아낼 형태로 바꾼다.


진정한 배움도 마찬가지다. 단순한 주입 단계를 넘어 그 지식을 되새김질하는 과정을 거쳐 내 안에 남아 있어야 진정한 지혜와 지식이다. 지식사회학이나 교육학에서도 “모든 배움은 스스로 배움”이라고 결론을 내린다. 즉 사람의 삶의 방식과 정신, 인생을 바꾸는 지식은 단순히 정보를 전달받는 것이 아니라, 마치 소가 되새김질하듯 그 지식을 흡수할 만큼 가공하거나 그 지식을 받아들일 밭이 되도록 자신의 영혼을 바꿔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과 전혀 관계없는 또 하나의 신호(signal)가 지나쳐 갈 뿐이다.


아무리 많은 시간 설교 말씀을 들어도 “좀 전 예배 시간에 무엇을 들었니?”라는 질문에 바로 대답하지 못하는 이유도 그 시간 동안 말씀을 되새김질하는 작용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치 학생이 아무리 오랜 시간 책을 붙들고 있어도 공부가 되지 않고 시간만 낭비하는 안타까운 상황과도 같다.


성경은 이를 명확히 설명한다. 예수께서 “다윗이 자기와 그 함께한 자들이 시장할 때에 한 일을 ‘읽지’ 못하였느냐”(마12:3) 통탄하신 것은 바리새인들이 성경의 율법적 사실만 따질 줄 알지 그 말씀에 담긴 깊은 뜻을 자신의 앎으로 전혀 만들지 못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읽다’는 단어 자체가 ἀναγινώσκω (아나기노스코)다. 이 말은 ‘또’, ‘다시’를 뜻하는 ἀνα(아나, again)와 ‘알다’를 의미하는 γινώσκω(기노스코, know)의 합성어다. 즉 진정함 ‘읽음’이란 기호 인식이 아니라 내 안에서 되새김질해 체화하는 ‘다시 앎’(know again)의 과정이다.


“이 편지를 너희에게서 읽은 후에 라오디게아인의 교회에서도 읽게 하고 또 라오디게아로서 오는 편지를 너희도 읽으라”(골4:16)고 사도 바울이 명령한 ‘읽음’도 ἀναγινώσκω(아나기노스코)이고 이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상고(詳考) 방식이다. “베뢰아 사람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보다 더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런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했다”(행17:11)고 칭찬하는 대목이 나온다. 여기서 ‘상고’도 ἀνακρίνοντες(아나크리논테스)로, ‘다시(again) 수색하다(search)’라는 되새김을 의미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받는 것으로 모자라 성경 자체를 되새김했다는 말이다. 이때 성경의 저자이자 그 사람 안에 역사하시는 동일한 보혜사 성령께서 되새김질하게 해 주셔서 내 영혼의 살과 피가 되게 하는 양식으로 흡수되게 한다. 이는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 마치 소가 음식을 되새김질해야만 양분을 흡수해 살아가듯 영적 세계의 실상이다.
 
 
 
 

위 글은 교회신문 <684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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