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전 목사의 ‘성막과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께서 주신 거룩한 불로 분향(焚香)하라
윤석전 목사의 ‘성막과 예수 그리스도’(82)

등록날짜 [ 2012-04-25 09:15:45 ]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으로 하는 기도가 능력 있어
성령 충만으로 응답하실 하나님께 초점 맞추어야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명한 식양(式樣)대로 분향단(焚香壇)을 만들어 그 단을 증거궤 위 속죄소 맞은편, 곧 증거궤 앞에 있는 장 밖에 두라고 하셨습니다(출30:6). 그리고 향을 사르되 아침마다 등불을 정리할 때 사르고 저녁에 등불을 켤 때 사르라고 하시고, 그 향을 대대로 여호와 앞에서 끊이지 않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내리신 불로 분향하라
그렇다면, 분향단에서 향을 사르는 불은 어디에서 가져온 것일까요? 레위기 16장 12~13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향로를 취하여 여호와 앞 단 위에서 피운 불을 그것에 채우고 또 두 손에 곱게 간 향기로운 향을 채워서 장 안에 들어가서 여호와 앞에서 분향하여 향연으로 증거궤 위 속죄소를 가리우게 할찌니 그리하면 그가 죽음을 면할 것이며”라고 명하셨습니다.
여기서 ‘향로를 취하여’라고 했습니다. 즉 번제단의 불을 향로에 담아 그것으로 분향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번제단의 불은 어떤 불입니까? 하나님께서 주신 거룩한 불입니다. 레위기 9장 24절을 보면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단 위의 번제물과 기름을 사른지라 온 백성이 이를 보고 소리 지르며 엎드렸더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구약 시대 제사장이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지성소로 가기 직전에 분향단에서 하나님이 주신 거룩한 불로 향을 살라 그 향연을 하나님께 올려드린 것은, 오늘날 성도가 기도로 하나님을 만나는 것을 상징합니다.
이때 향을 사르는 불은 반드시 하나님께서 주신 거룩한 불을 사용해야 했으니, 곧 기도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으로 해야 함을 뜻합니다. 성경에는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같이 하라”고 했습니다(벧전4:11). 즉 무엇이든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과 능력으로 하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힘으로 하는 기도
기도를 하나님이 주시는 힘으로 하지 않고 사람의 열정이나 의지로 한다면, 얼마 지속하지 못해서 기름칠하지 않은 기계가 삐걱거리듯이 힘이 들게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주시는 힘으로 하는 기도는 아무리 장시간 해도 힘들지 않고 모두 하나님께 상달됩니다.

사도행전 2장 4절에 “저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시게 함을 따라 방언을 말하더라”고 했습니다. 또 바울은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라”고 했습니다(엡6:18). 이는 모두 성령께서 공급하시는 힘으로 기도하라는 말입니다.
성령께서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기도는 100퍼센트 응답받는 기도입니다. 성령께서 말하시게 하는 방언 기도를 통변해 보면, 육신이 잘되게 해달라는 기도는 없고, 대부분 내 영의 일만 가지 사정을 아뢰는 영적인 기도입니다. 성령이 누구십니까? 바로 기도하게 하시고 그 기도를 듣고 응답하실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감동으로 하는 기도는 응답하실 성령께서 하라고 명하신 기도이기에 100퍼센트 응답받는 기도입니다.

하나님의 방법대로 하는 신앙생활
기도뿐만 아니라 감사와 충성, 전도를 비롯한 모든 신앙생활을 하나님이 주시는 힘으로, 하나님께서 명하신 법대로 해야 하나님께서 받으십니다. 하나님께 공급받는 힘으로 움직이는 것이 교회(敎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거룩한 불로 향을 살라야 그 향연을 하나님이 받으시고, 불도 잘 꺼지지 않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신앙생활도 내 인생 끝날 때까지 하나님께서 공급하시는 힘으로 해야 하나님이 받으시고, 신앙의 열정도 식지 않습니다. 사람의 힘으로 하면 언제, 어느 때 그 열정이 식을지 아무도 모릅니다.

교회에서 사람의 힘으로 일하는 사람은 문제에 부딪히면 결국 못 하겠다고 내팽개치고 맙니다. 칭찬받는 재미로 일하는 사람도 칭찬이 없으면 의기소침해서 금세 열심의 불이 꺼지고 맙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공급하시는 신앙의 불은 어려움이 오면 올수록, 핍박하면 할수록, 시험하면 할수록 더욱 뜨겁게 타오릅니다. 어려움을 당할수록 하나님을 향한 신앙심이 강렬해지는 것이 기독교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 주신 신앙의 불은 누구도 끌 수 없습니다. 인본주의를 완전히 뛰어넘습니다. 그래서 성령으로 사는 사람은 누가 대적해도, 방해를 받아도 절대로 신앙생활을 중단하지 않습니다. 신앙생활에 제한받는 것 자체가 벌써 육의 사람이라는 증거입니다.

성령의 역사가 나를 앞장서게 하라
세상에서 제일 큰 용사는 자기를 다스리는 사람입니다. 자기를 다스리지 못하는 사람은 용사가 될 수 없습니다. 성령이 충만할 때는 병에 걸려도 걱정이 없습니다. 병은 생각부터 사로잡아 억누릅니다. 성령이 충만한 사람은 생각이 병을 얕잡아보고 압도합니다. 육의 생각, 육의 계획, 육으로 사는 모든 것이 성령 앞에는 초라한 방해꾼입니다. 그래서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입니다(롬8:6).

그래서 신앙생활에 변덕 부리는 모습을 보면 하나님께서 공급하시는 성령의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닌, 자기 힘으로 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교회도 성령이 충만하지 못하면 사람의 비위를 맞추지만, 성령이 충만하면 성령의 뜻에 맞춥니다. 그래서 성령이 충만한 교회는 성령의 소리를 듣지만, 그렇지 못한 교회는 사람의 소리를 따라가다가 어려움을 당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거룩한 신앙의 불, 즉 성령 충만으로 살 것이냐, 아니면 사람의 의지와 열심에서 나오는 육신의 소욕으로 살 것이냐를 잘 분별해야 합니다. 절대로 인간의 열심이 아닌 하나님이 내려주신 거룩한 불, 즉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살아야 합니다. <계속>

위 글은 교회신문 <286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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