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전 목사의 ‘성막과 예수 그리스도’] 예수께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
윤석전 목사의 ‘성막과 예수 그리스도’(87)

등록날짜 [ 2012-05-29 10:38:02 ]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하나님께로 갈 길을 여시다
천국으로 가는 길은 오직 예수, 오직 믿음으로만

예수 그리스도가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는 순간, 예루살렘 성전 안에 있는 성소(聖所)와 지성소(至聖所)를 가로막은 휘장이 두 갈래로 찢어졌습니다.


<사진설명> 지성소의 휘장

이는 우리 인간이 하나님께로 나아갈 새롭고 산 길이 활짝 열린 것을 상징합니다. 곧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가로막던 죄의 담을 완전히 허물어 버리신 것을 선포한 것입니다.

과거에는 대제사장만이 일 년에 한 차례씩 짐승의 피를 들고 지성소에 들어갔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피 흘리신 이후에는 누구나 예수의 피 공로를 붙들면 지성소 곧 하나님께서 계신 거룩한 곳에 들어가 하나님을 뵈올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누구나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만인(萬人) 제사장(祭司長) 시대가 열린 것입니다.

이때부터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갈 때 예수의 피를 심령에 가득 채우고 나아가야 합니다. 예수의 피를 망각한 기도와 찬양, 예수의 피를 망각한 감사와 충성, 예수의 피를 망각한 어떤 행위도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담대히 나아가게 할 수 없습니다. 예수의 피 공로만이 하나님께 나아갈 길을 대로와 같이 활짝 열어줍니다.

하나님과 열린 관계
하나님과 관계가 이렇게 활짝 열리는 순간부터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요14:14),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막11:24) 하고 약속하신 대로 우리가 기도할 때 응답이 열립니다.

하나님께서 네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신 것도, 결국 누구와도 막히지 말아서 하나님과 관계를 열어 놓으라는 말입니다. 이스라엘 초대왕 사울은 시기질투심 때문에 다윗을 죽이려고 군사를 이끌고 추격했지만, 다윗은 사울을 하나님께서 기름 부어 세운 왕으로 여겼기에 몇 번이나 죽일 기회가 있었으나 끝까지 손대지 않고 하나님을 향해 열어 놓았습니다.

원수 갚는 것이 하나님께 있다는 말씀도 절대로 하나님과 막히지 말고 항상 열어놓으라는 말입니다(히10:30). 자기에게 죄를 범한 자를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도 사람과 관계에서 제한 없이 열어두라는 뜻입니다(마18:21~22).

하나님을 향해 열린 신앙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에 열두 명을 정탐하러 보냈습니다. 그 땅을 정탐하고 돌아온 자 중 열 명은 자기 생각으로 부정적인 보고를 해서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길을 닫아버렸습니다.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다. 우리는 그들에게 비하면 엉덩이에 붙은 메뚜기만큼 적으니 도무지 그들을 해볼 수가 없다.”(민13:32~33 참조)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눈앞의 근심걱정에 잠기고 말았습니다. 이처럼 불신앙은 하나님과 관계를 닫고, 하나님이 일하실 역사를 막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가나안 복지를 이스라엘 민족의 손에 붙인다고 약속하셨는데, 그러지 못할 것이라는 부정적인 생각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가로막는다면, 이것이 바로 죄입니다.

반면에 여호수아와 갈렙은 긍정적인 보고를 했습니다.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민14:9)

결국 애굽에서 나온 수많은 이가 가나안 땅에 못 들어가고 모두다 광야에서 죽었으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들어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이 열리고 생각이 열린 자에게 축복의 땅 가나안을 주셨습니다.

열려야 들을 수 있는 목자의 음성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 내가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요10:14~15).

주님은 목자시라 어떻게 해야 양을 배불리 먹이고 목마름을 해결해주고 이리가 득실거리는 들판에서 보호할지 아신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과 사이에 가로막힌 죄를 헐어버리고 목자와 양의 관계 속에서 주의 목소리가 항상 심령 안에 들려와야 합니다.

양은 목자의 음성을 들어야 삽니다. 귀가 닫혀 있으면 그 목소리가 안 들립니다. 설교도 들을 귀가 안 열리면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습니다. 그래서 듣기는 들어도 알지 못하며 보기는 보아도 깨닫지 못한다는 것은 닫혀서 그런 것입니다(사6:9).

이스라엘 백성은 이 문이 열리기를 사모했습니다. 이 문을 열어줄 메시야를 오랫동안 기다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말씀하셨고, 결정적으로 침례 요한을 보내서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 양이로다” 하고 선포함으로써 예수가 이 문을 열 분이심을 알려 주었습니다(요1:29).

또 그때부터 예수께서는 자신이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 문을 열 자라는 것을 이적과 능력과 표적으로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대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하나님과 가로막힌 담, 곧 죄의 휘장을 걷어버리고 하나님께로 가는 새롭고 산 길을 여셨습니다. 그런데 지금 많은 사람이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가로막힌 죄의 담을 예수가 헐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여 다른 길을 찾습니다.

석가나 공자, 마호메트가 만들어 놓은 길은 자기 영혼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오직 죄로 가로막힌 구원의 문, 축복의 문, 하늘의 문을 열 자는 죄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습니다. <계속>

위 글은 교회신문 <291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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