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전 목사의 ‘성막과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법으로 영원한 자유를 얻으라
윤석전 목사의 ‘성막과 예수 그리스도’(90)

등록날짜 [ 2012-06-19 11:28:11 ]

성막 가장 중요한 곳에 법궤가 있는 것처럼
우리 심령 속에 하나님의 법이 중심이 돼야



이스라엘 백성은 성막 지성소에 법궤를 두고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의 법대로 살려고 몸부림쳤습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도 자기 심령의 지성소에 성령 하나님과 하나님 말씀의 법을 모셔두고 그 말씀의 법대로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이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8:32)고 한 말씀을 오해하여 하나님 말씀대로 살려 하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살아도 되는 줄 압니다. 그러나, 그것은 자유가 아니라 방종일 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의 법대로만 신앙생활을 해야 생명을 얻습니다.

자유를 선언하는 하나님의 법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율법은 무엇이 죄인지 발견케 해주는 기능이 있습니다.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느니라”(롬5:13).

그러므로 율법으로 무엇이 죄인지 알아서 그 죄를 범하지 않을 때 자유를 누립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하신 말씀의 법을 지키는 자에게 자유를 주십니다.

세상 법을 어긴 사람이 가는 곳이 교도소입니다. 그곳에 갇혀 있으면 부자유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말씀의 법을 지키는 것이 육체로는 부자유하나 양심은 자유롭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자동차를 운전하고 가다가 교통신호를 무시했다고 합시다. 그런데 30미터도 못 가서 교통경찰이 서 있으면 가슴이 덜컥 내려앉습니다. 교통법규를 안 지켰기 때문에 벌써 양심에 붙들린 것입니다. 법규를 지켰다면 양심에 거리낄 것이 없어 자유롭습니다. 하나님의 법을 지키는 자는 이처럼 영육 간에 자유를 누립니다. 

율법을 완전케 하신 예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율법을 주셨기에, 우리는 무엇이 죄인 줄 알게 됐습니다. 그런데 이 율법으로는 인간의 행위로 범한 죄를 찾을 수는 있으나,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죄는 찾아내지 못합니다. 그러기에 바리새인 같은 이들은 율법만 잘 지키면 의로워지는 줄로 오해했습니다.

예수께서는 이 땅에 오셔서 이처럼 죄를 다 찾아내지 못하는 율법을 보완하여 완전케 하셨습니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마5:17~18).

다시 말하면, 율법으로는 간음에 해당하는 행동을 해야 간음죄에 걸리지만, 주님께서는 마음으로 음욕을 품기만 해도 간음이라며 율법의 기준을 강화함으로써 율법을 완전케 하셨습니다(마5:27~28).

율법의 요구를 이루신 예수
‘율법을 완전케 하셨다’는 것은 율법으로 찾아내지 못한 마음속으로 지은 죄도 싹 다 찾아내게 했다는 뜻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기에 예수께서 완전케 하신 율법 앞에는 어떤 사람도 의인이 없이 모두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는 완벽하게 율법으로 인간을 죄인으로 만들어 놓고 그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셨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아들이 와서 죽으신 것이 율법의 요구를 이루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롬8:1~4).

예수께서도 율법을 인정했다는 증거입니다. 율법을 초월하신 것이 아니라 율법으로 죄를 찾아내고, 죗값은 사망이라는 율법의 요구를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이루신 것입니다.

이처럼 율법이 살아 충분히 죄를 지적하는 기능을 갖추어야 우리가 죄에서 자유할 수 있습니다. 완전한 율법이 우리의 겉과 속의 죄를 모두 지적해 줌으로써 죄를 피하게 해줍니다.

또 율법을 지키지 못했을 때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은혜로 죄 사함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율법이 살아 있어야 우리에게 은혜가 있습니다. 율법이 살아 있어야 복음이 의미가 있습니다. 율법이 살아 있어야 복음이 진리가 됩니다. 하나님 말씀의 법이 죽으면 기독교도 죽은 것입니다. 우리는 복음의 자유를 육체의 기회로 삼아서는 안 됩니다(갈5:13).

하나님의 법대로 움직이는 삶
하나님의 나라는 무질서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법대로 움직입니다. 성막의 법궤가 지성소에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이 내 안에 있다는 것은 나로 평생 하나님의 법대로 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내 안에 법궤를 모셨다면 하나님만이 나를 움직일 권한이 있지 나에게는 권한이 없어야 합니다. 내 안에 있는 하나님의 법이 나를 움직이게 해야 합니다. 내 안에 있는 하나님의 법만이 나의 권한입니다. 말씀하시는 그분만이 권한이 있다고 고백하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법이 충만해서 그 법으로 지배받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 역시 하나님의 법대로 움직여야 합니다. 그와 더불어 하나님의 법을 위반한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피 공로가 넘쳐야 합니다. 하나님의 공의의 법과 은혜가 공존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자유의 소식을 알지 못하여 죄 아래서 고통당하는 수많은 사람에게 복음을 전해서 구원해야 합니다.
<계속>

위 글은 교회신문 <294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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