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전 목사의 ‘성막과 예수 그리스도’] 법궤처럼 하나님 법을 내 안에 두고 살라
윤석전 목사의 ‘성막과 예수 그리스도’(91)

등록날짜 [ 2012-06-26 13:40:16 ]

주님을 만나는 장소가 거룩해야 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성전인 우리 몸도 온전히 보전해야



하나님의 법궤(法櫃)를 두는 장소는 성소(聖所)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곳입니다. 내 심령에도 하나님의 법궤를 모셨다면, 내 삶의 중심에 하나님께서 좌정(坐定)하셨다는 말입니다. 그곳은 거룩한 하나님을 만나는 곳이요, 사망이 물러가고 생명이 풍성한 거룩한 장소이며, 죄가 감히 역사하지 못하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법궤를 모신 자는 자기 안팎에 죄가 있으면 회개해서 죄를 몰아내고 죄를 이겨서 언제나 거룩함을 유지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 마음 중심에 하나님이 함께하실 수 있습니다.

자기 중심에 주님을 모신 자들은 “주님, 저는 가라 하시면 가고, 오라 하시면 오는, 당신의 법에 압도당한 사람입니다. 저는 당신의 법대로 살기로 작정했습니다” 하고 고백할 것입니다. 그래서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잠4:23).

하나님께서는 심지가 곧은 자를 지키십니다.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에 평강으로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사26:3).

하나님 말씀의 법은 늘 곧습니다. 이렇게 심지가 곧은 자 안에 좌정(坐定)하시어 그 속에서 죄를 이길 생명과 능력을 주시고, 전도할 생명을 주시고, 감사할 생명을 주시고, 신앙생활 잘할 생명을 주십니다. 주님은 이렇게 거룩한 곳에만 계시기에 우리 속에 이런 거룩한 장소를 마련해야 합니다. 법궤가 성소의 중심이듯, 하나님의 법이 내 중심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과 자유의 법
법궤를 모신 자, 즉 하나님께 다스림을 받으려고 작정한 사람은 하나님 말씀의 법이 곧 왕입니다. 말씀이신 하나님이 내 안에 왕으로 계시기에 하나님 말씀의 법 앞에 꼼짝 못하고 순종합니다. 우리는 법 앞에 두려워서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그 말씀의 법을 사랑하기에 순종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요일5:3). 하나님의 법이 간섭이 되지 않고 자유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법을 ‘사랑하라’는 말과 하나님의 법에서 ‘자유하라’는 말을 복음 안에서 올바르게 체험하지 못하면 법을 두려운 것, 자유를 결박하는 것으로 압니다.

하나님 말씀의 법이 좋아서 지킨다면, 법 안에서 자유는 저절로 누리게 됩니다. 말씀의 법은 곧 신랑이신 주님의 말씀입니다. 신부는 신랑이 하는 말이 즐겁습니다. 법이 내게 자유를 주니 얼마나 즐겁고 감사한 일입니까? 자기 신세 생각해서 법을 사랑하고 법을 즐겨야 합니다. 우리 인생의 최종 목적이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히 하나님을 뵙는 것이기에 하나님을 모시는 법궤가 있는 곳까지 들어왔다면 이때부터는 이 법으로 살아야 합니다.

만남의 기쁨이 있는 곳
법궤가 있는 지성소는 신인상봉(神人相逢)의 장소입니다. 죄인은 용서받는 자리요, 의인은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하는 자리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제일 영광스러워하는 날이 언제일까요? 대제사장이 자기들의 죄를 들고 지성소에 들어가서 희생 제물인 양의 피를 하나님께 보이고 속죄받고 나오는 날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인격적인 만남을 경험한 자는 이 세상을 다 얻은 것보다 기쁩니다.

오늘날 우리는 직접 내 안에서 성령으로 와 계신 하나님을 만나고 있으니 그들과는 비교도 안 되는 복을 받은 자입니다. 우리는 진짜 그분을 모신 자로서 기쁨의 밑천이 확실한 자입니다. 우리는 그분을 내 안에 만난 경험이 있는 기쁨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이런 기쁨을 소유한 사람은 세상 어떤 일이 일어나도 절대로 흔들리지 않습니다. 늘 그분으로 만족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처음 믿을 때는 기뻐하다가 교회에서 조금만 감정이 상해도 흔들리는 기쁨은 하나님을 만났다는 엄청난 영광을 알지 못하는 지식 없는 기쁨입니다.

거룩함으로 준비된 자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6:19~20).

바울은 고린도 교인이 예수를 믿고 구원 받아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자유를 얻고, 그 안에 성령을 모시고도 그분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책망을 겸하여 권면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방종(放縱)한다, 즉 최고 극치의 기쁨을 인식하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내 안에 계신 하나님께서 주시는 제한 없는 영적 부유인 은혜, 능력, 천국, 영생의 분량을 모르면 성령 하나님을 내 안에 모시고도 짜증을 내고, 부정하게 살고, 죄짓고 삽니다. 만약 그분이 주시는 사랑의 분량, 기쁨의 분량을 제대로 안다면 그분 한 분만으로 만족할 것입니다. 내 안에 계신 그분을 조금이라도 불편하게 모시지 않으려고 거룩하게 살 것입니다.

법궤를 모신 성막 지성소는 거룩한 곳인데 그곳을 더럽히면 살아남겠습니까? ‘거룩하다’는 말 속에는 ‘깨어 있으라’는 의미도 들어 있습니다. 즉 준비하고 있어서 주인이 찾을 때 손색없는 자,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사람이 돼라는 말입니다.
 
열 처녀가 다 같이 신랑을 기다렸지만 다섯만 데리고 갔습니다. 만약 우리에게 그런 일이 닥친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우리는 주님이 다시 오셔서 공중에서 혼인 잔치하는 그 날을 위하여 오늘도 거룩하고, 내일도 거룩하고, 인생 다하는 그 날까지 하나님의 법 안에서 거룩한 자로 그 법을 사랑하는 자, 그 법에서 자유와 기쁨을 누리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계속>

위 글은 교회신문 <295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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