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전 목사의 ‘성막과 예수 그리스도’] 법궤는 하나님과 만나는 장소
윤석전 목사의 ‘성막과 예수 그리스도’(92)

등록날짜 [ 2012-07-10 10:17:34 ]

평생 동안 신령한 말씀과 회개가 있는 곳에서
주님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영적 유익 누려야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성막 안 법궤가 있는 곳에서 만나주신다고 말씀하시고, 그곳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명할 모든 일을 일러 주겠다고 하셨습니다(출25:22).

법궤는 모세 이후로 대대에 걸쳐 대제사장들이 짐승의 피를 들고 들어가서 하나님을 만나던 장소요, 하나님의 음성을 듣던 곳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니 인간은 죄로 죽어 영원히 멸망받아 마땅하지만, 희생제물인 짐승을 잡아 그 생명인 피를 들고 성막 가장 깊숙한 곳인 성소 법궤 앞에 들어가 그 피를 뿌리며 죄를 고하면 하나님께서 밖에서 이스라엘 백성의 회개하는 진심을 보고 하나님께서는 죄를 용서하시고 만나주셨습니다.

법궤가 있는 장소로 나아가야 한다
오늘날 교회에서 예배드릴 때 성령에 감동된 목사의 설교를 통해 말씀을 듣는다는 것은, 과거 이스라엘 대제사장이 법궤가 있던 자리에서 하나님을 만나 그분의 음성을 듣던 것과 같은 엄청난 일입니다. 그런데 믿노라 하는 사람들 중에도 이런 깊은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하여 예배를 형식적으로 드리는 모습을 볼 때 안타깝기만 합니다.

성소 안 법궤 앞에서 하나님을 만나듯, 우리가 예배드리는 것이 얼마나 어마어마한 사건인지 알고 경험하는 길은 성령께서 깨닫게 해주는 방법뿐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고전2:10)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성령이 충만해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거룩함에 이르면, 이스라엘 대제사장이 성소 안 속죄소 법궤에서 하나님을 만나 그분의 음성을 듣고 장차 할 바를 안 것처럼, 지금 우리도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 알아 통달하게 하신다는 말입니다.

신령한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한다
이스라엘 대제사장이 속죄소 안에 들어가 법궤 앞에서 하나님을 만나 죄를 사함받으면 온 이스라엘 백성이 나발을 불고 춤추며 죄를 용사하시고 축복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들이 받은 은혜를 감사했습니다.
 
이처럼 오늘날 교회에서도 예배를 통해 하나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을 만나면 자신이 은혜 받은 사람임을 깨닫는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세상 영이 아닌 오직 하나님에게서 온 영으로만 알 수 있기에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할 수 있습니다(고전2:12~13).

세상에는 인간이 만든 윤리와 도덕이 있고, 깊이 있는 학문이 있으며, 마음을 수양하는 각종 종교가 있기에 사람들은 그것들을 대단히 훌륭한 것으로 여기지만, 하나님이 계시지 않은 것은 어느 것도 거룩하지 않고 신령하지 않습니다. 신령한 것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한다고 말했으니, 이 신령한 지성소, 즉 거룩하고 깨끗한 곳에 들어가야 신령한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지성소 밖에 있으면 들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교회에 와서 예배에 참석하면서도 그런 신령한 음성을 듣지 못하는 사람은 “왜 이렇게 시간이 안 가는지 모르겠다”며 엉뚱한 소리만 해댑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내가 너와 만나리라”고 말씀한 장소에 나를 가져다 두어야 합니다. 평생 나를 둘 주소(住所)는 법궤 앞이 되게 해야 합니다.

주님과 만나게 하는 십자가 사건
하나님께서는 성막 성소 법궤 앞에서가 아니라 언제 어디서나 우리를 만나주시려고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사 우리의 죄를 대속하게 하시고 그가 흘린 피 공로를 믿고 의지하는 자에게는 언제나 만나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 일을 이루시려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예수께서 가야바의 뜰에서 매를 맞고 홍포를 입고 십자가를 지시고 저주를 받고 갈대를 들리고 침 뱉음을 당하고 뺨을 맞고 가시관을 쓰셨습니다. 이것은 사실 내가 당해야 할 일입니다. 내가 받아야 할 사형선고를 죄 없는 예수께서 대신 받았습니다.

그의 아픔과 고통은 우리를 사랑하신 사랑의 절정입니다. 그가 죽는 모습이 내가 죽는 모습이요, 그가 흘리신 피는 날 사랑하신 피입니다. 그래서 십자가는 하나님과 인간이 극과 극, 다시 말해서 죄인과 의인이, 은혜 베풀 자와 은혜 받을 자가 만나 조화를 이루는 곳입니다.

그래서 십자가의 길은 완전히 주님과 죄인 중의 괴수인 내가 상극(相剋)에서 만남으로 일치됩니다. 이것이 바로 법궤 안에서, 증거궤 안에서, 언약궤 안에서 “너와 만나리라” 약속하신 영원한 언약을 성취하신 것입니다.

영적으로 분별할 수 있는 사람
이렇게 하나님과 만나본 사람만이 그 목소리에 귀가 익어 세상의 소리, 육의 소리를 분별합니다(고전2:14).
성령이 충만하여 주님과 만남 속에서 기뻐하는 것을 육에 속한 사람은 절대 모릅니다. 그래서 그의 목소리를 듣고 사는 사람들을 핍박하고 무시하고 멸시합니다. 똑같이 예수를 믿어도 너무 지나치게 믿는 거 아니냐고 힐난합니다.

육으로 볼 때는 지나쳐 보일 것입니다. 그러나 영으로 볼 때는 주를 위해서 지나친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나 같은 것을 위해 저주받고 고통받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우리 같은 인간에게 천국을 유업으로 준 것이 너무 지나친 것 아닙니까? 그분이 나에게 한 것에 비교하면 그분 앞에서 나 같은 것은 일백 번 죽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그분이 나를 어떻게 사랑했는지 그 만남의 현장을 가지고 보고 알며 사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계속>

위 글은 교회신문 <296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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