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전 목사의 ‘성막과 예수 그리스도’] 죄 사함 받는 곳, 속죄소
윤석전 목사의 ‘성막과 예수 그리스도’(93)

등록날짜 [ 2012-07-17 13:45:52 ]

법궤 위 두 그룹(천사 모양) 사이에서 하나님 만나
피 흘린 짐승처럼 죽어야 할 죄인임을 자백하는 곳

성막 가장 깊숙한 곳에 지성소가 있고, 지성소에 법궤가 있습니다. 법궤 위에 속죄소가 있는데, 법궤의 뚜껑 부위가 바로 속죄소입니다. 속죄소는 가로 125센티미터, 세로 75센티미터로 법궤의 그것과 똑같습니다. 속죄소 두 끝에는 금으로 쳐서 그룹 둘을 만들어 놓았는데 속죄소와는 한 덩어리로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룹들은 날개를 높이 펴서 속죄소를 덮게 했습니다. 그룹들은 얼굴을 마주하여 속죄소를 향하게 했습니다. 속죄소를 법궤 위에 얹고, 증거판을 법궤 속에 넣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모세와 만나겠다고 하시고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에 네게 명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고 하셨습니다(출25:22). 즉 속죄소 위 두 그룹 사이가 하나님의 보좌이며, 거기서 하나님께서 모세와 만나셨습니다.

또 죄를 속(贖)하는 장소라는 속죄소(贖罪所)의 의미 그대로 대제사장이 1년 1회인 대속죄일에 지성소에 들어가 이곳에서 하나님을 만나 자신의 죄와 백성의 죄를 속함 받았습니다. 속죄소 위에 있는 순금으로 만든 그룹 둘을 ‘덮는 그룹’이라고도 부르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인간이 나아올 때 그의 허물을 덮어 주시고 감추어 주시는 분임을 나타냅니다. 그래서 속죄소를 ‘시은좌(施恩座)’라고도 부릅니다. 즉 은혜를 베푸는 보좌라는 뜻입니다.

짐승의 피를 들고 죄인임을 고백하는 곳
속죄소를 두 천사가 지키는 것은, 하나님 보좌에 하나님께서 정해 주신 방법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나오는 것을 막기 위해서입니다. 만약 대속죄일에 대제사장이라도 하나님이 원하시고 요구하시는 방법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들어오면 죽습니다. 그러면 대제사장이 속죄소에 나아가는 바른 방법은 무엇일까요?

바로 속죄 제사로 드리라고 미리 하나님께서 정해 주신 희생 제물인 짐승의 피를 들고, 그 짐승처럼 죽어야 할 죄인임을 자백하고 상한 심정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대제사장 자신의 죄를 속하는 제사를 드릴 때도 그렇지만 백성을 위한 속죄 제사를 드릴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여, 내 백성이 이 짐승과 같이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이 피를 보시옵소서. 우리 백성이 죽어야 할 대신 희생 제물이 흘린 피입니다. 우리 모든 백성이 피 흘려 죽어야 할 죄인임을 자백하며 회개하고 있습니다. 이 피를 보시고 용서해주세요” 하는 심정으로 가야 합니다.

만약 그런 진정한 회개가 없으면 그날부터 온 백성에게 저주가 임하게 됩니다. 오늘날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흘린 피를 붙잡고 ‘내가 죽을 대신 하나님의 아들이 죽었으니 죄를 사해 주세요’ 하는 심정으로 회개하지 않으면 죄 사함을 받지 못합니다. 예수의 피 공로 외에는 죄를 사할 다른 방법이 전혀 없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이처럼 반드시 하나님께 나아갈 때는 섬기는 예법과 절차가 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향해 고정된 시선
속죄소 위에 있는 하나님의 그룹인 두 천사의 시선은 항상 하나님의 보좌를 향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도 언제 어디서나 예루살렘 성전을 향해 기도하고 성전을 바라보며 살았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광야에서 진을 칠 때 성막을 중심으로 열두 지파가 사면에 질서 정연하게 에워싸듯 진을 쳤습니다. 전부 다 성막을 향한 채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포로로 잡혀가 식민지 생활을 할 때도 예루살렘 쪽을 바라보고 기도했습니다. 지금도 이스라엘이 예루살렘을 두고 아랍인과 전쟁을 벌이는 이유도 그곳이 성전이 있던 곳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시선이나 생각도 언제나 주님만 향해야 합니다. 그런데 만일 세상을 향하면 즉시 세상에 속하게 됩니다. 오늘날 성도의 영적인 시선이 속죄소를 대신해서 이제는 나를 구원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 그분의 은혜 안에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내 죄를 사하시고 구원하신 그분의 은혜를 잊어버리면 안 됩니다. 나를 구원하신 주 예수만 바라보아야 합니다.

속죄소 역할을 하는 교회
교회는 속죄소 역할을 하는 곳입니다. 오늘날 교회에서 죄 사함의 은혜가 넘치게 하려면 먼저 죄를 지적해 주어야 합니다. 교회가 죄를 지적하지 않으면 속죄소 구실을 못 하는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오늘날 교회들이 죄를 지적하지 못합니다. 교인이 죄를 지적하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말씀과 반대되는 것이 죄입니다. 죄를 지적해 주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과 반대로 하고 맙니다.

그래서 교회는 끊임없이 성도에게 인본주의에서 신본주의로 바꾸어라, 세상 사람에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바꾸어라, 육신에서 난 사람이 하나님에게서 난 사람으로 바꾸어라, 사람의 자식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신분을 바꾸라고 계속 회개를 촉구해야 합니다. 속죄소가 죄를 속하는 곳이라면, 교회는 죄를 사해 주는 곳이니 그 기능을 제대로 수행해야 합니다. 죄 사함의 은총이 날마다 넘치게 해 주어야 합니다.

“오늘도 주님 뜻대로 살지 못했습니다. 내 생각에서 하나님을 잊었습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했는데 기도하지 못했습니다. 범사에 감사하라고 했는데 감사하지 못했습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하라고 했는데 전하지 못했습니다. 온종일 산 것을 주님 말씀에 비교해볼 때 죄뿐입니다. 내 죄를 사해 주세요” 하고 기도하여 죄 사함 받아야 합니다.

교회는 날마다 속죄소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의 피가 언제나 강물을 이루게 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대속하신 속죄의 은총이 충만하도록 날마다 하나님 앞에 나와서 죄를 속하고 깨끗해져서 하나님이 쓰시는 큰 그릇이 되어야 합니다.    <계속>

위 글은 교회신문 <297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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