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전 목사의 ‘성막과 예수 그리스도’] 신령한 것을 담는 금 같은 믿음
윤석전 목사의 ‘성막과 예수 그리스도’(98)

등록날짜 [ 2012-08-21 22:04:33 ]

순수한 심령으로 하나님 말씀을 담아
불변하는 믿음으로 연단에 동참해야

하나님께서 성막 지성소 법궤에 두라고 한 금 항아리에는 만나가 담겨 있습니다(출16:33~34;히9:4). 구약시대 광야에서 이스라엘 민족이 먹은, 하나님이 주신 양식인 만나는 금 항아리에 담아야 할 만큼 신령하다는 의미입니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자신의 살과 피를 주시며 “내 살을 받아 먹어라, 내 피를 받아 마셔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진설명> 법궤에 둔 금항아리(사진 왼쪽).

풀 한 포기 구경할 수 없는 광야에서는 하나님이 내려주신 만나가 없이는 살아남을 수 없듯이, 영적 광야인 이 세상에는 예수의 살과 피가 없이는 우리 영혼이 살 수 없습니다. 광야에서 만나를 먹어도 다 죽었으나 예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신 자는 영원히 살리라고 했으니(요6:49~51), 우리는 유대 민족이 광야에서 먹은 만나와 비교할 수 없는 신령한 양식을 예배 때마다 풍성히 먹고 마십니다.

만나를 금 항아리에 담아 법궤에 두듯, 하나님이 주시는 영적 양식을 담아 두는 내 심령도 금 그릇이 되어야 합니다. 금 그릇이 되지 않은 사람들은 하나님 말씀을 들어도 그 말씀에 은혜 받지 못합니다. 그들에게는 말씀이 달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들어도 지식으로 알 뿐 말씀대로 행동하려 들지 않습니다. 우리도 하나님 말씀을 담은 금 항아리가 되려면 안과 밖이 모두 변치 않는 금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속마음은 수없이 삐딱거리고 육신의 소욕이 가득하면서도 교회에 와서 겉으로만 집사인 체, 권사인 체한다면, 안팎이 다릅니다. 하나님을 향해 변치 않는 믿음을 지닌 성도에게만 예수라는 신령한 만나가 담깁니다.

하나님의 힘으로 살려는 자
대부분 예수 믿고 죄 사함 받으면 만사가 형통할 것으로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잦습니다. 예수 믿고 나서부터 혹독한 고생이 찾아오기도 합니다. 마귀는 악착같이 역사하여 구원받은 사람의 믿음을 허물고 그 영혼을 노략질하려고 몸부림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430년간 종살이를 마치고 나올 때 그들이 애굽 사람에게 은혜를 입어 금은 보화를 바리바리 싸들고 신바람 나게 나왔습니다. 그 길로 곧장 약속의 땅 가나안 복지로 직행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애굽에서 나오자마자 앞에는 홍해로 가로막혔고, 뒤에는 애굽 군사가 어마어마하게 철병거와 말을 타고 쫓아옵니다. 진퇴양난에 빠지자 이스라엘 백성이 원망합니다.

그때 모세가 “조용히 해라. 하나님이 어떻게 하시나 보자” 하고 지팡이를 홍해에 내밀어 하나님의 능력으로 바다를 갈라 육지처럼 이스라엘 민족을 건너게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할렐루야!” 외치며 홍해를 건넜습니다.
 
우리도 예수 믿고 구원받고 성령이 충만하면 “할렐루야!” 하고 좋아하지만, 또 금세 가로막는 것들이 생깁니다. 사람 힘으로는 앞으로 나갈 수도, 뒤로 물러설 수도 없을 때가 옵니다. 이때부터는 오직 하나님의 힘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출애굽 해서 겪은 고난은 홍해 사건으로 끝이 아니었습니다. 배고프고, 목말라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광야에서 갖은 고통을 당했지만, 하나님께서는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이스라엘 민족을 인도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안 죽을 만큼 연단하시며 인도하셨습니다.

신앙생활 하면 육신이 편할 줄 알아도 천만의 말씀입니다. 금 같은 믿음으로 성장할 때까지 계속 연단(鍊鍛)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신앙생활에 연단 과정이 있는 줄 모르고, 예수 믿고 구원받은 후에 시험이 찾아오면 너무 쉽게 넘어집니다.
 
또 핍박을 받으면 “예수 믿어도 아무 소용없다” 하고 낙심하여 과거로 되돌아갑니다. 아직 제대로 연단 받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금은 좀처럼 변하지 않습니다. 추워도 안 변하고, 더워도 안 변하고, 쪼개져도 안 변하고, 갈라져도 안 변합니다. 무게도 안 변하고 값도 안 변합니다. 그래서 우리 기독교인은 하나님께서 금같이 단련하여 금 같은 믿음을 지닌 자를 항아리로 만들어 영원한 생명의 양식인 예수의 살과 피를 담을 자로 삼습니다.

금 제련소에 가면 금이 박힌 돌을 가져다가 불에 달궈 금을 채취합니다. 사람도 금 같은 믿음이 되려면, 연단해서 불순물을 다 떨어내고 순수한 믿음만 남게 해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도 홍해 앞에 선 이스라엘 백성처럼 원망도 떠나고, 불신앙도 떠나고, 하나님만 의지하는 순수한 믿음이 남을 때까지 연단을 받습니다.

금 같은 믿음이 참믿음
하나님께서는 만나를 금 항아리에 담아서 성막 지성소 법궤에 두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도 금 같은 믿음을 지니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에 못 들어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광야 40년을 통해 이스라엘 민족이 금 같은 믿음을 지니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드디어 가나안 복지를 눈앞에 두고 열두 명을 정탐하러 보냈더니 그 중 열 명이 와서 믿음 없는 보고만 합니다. “거기는 신무기가 발전했고 우리는 그 사람들의 엉덩이에 메뚜기 붙은 것처럼 생겨서 가면 죽겠더라”(참조 민13:33).

여호수아와 갈렙만은 “아니다. 하나님께서 그 나라와 그 민족 가나안 복지를 우리 손에 붙였다. 그놈들은 덩치가 커서 우리가 부려 먹기 좋고 그놈들이 쓰던 전쟁 무기를 우리가 쓰면 좋겠고, 기름진 땅도 우리가 쓰면 좋겠더라. 그들은 우리의 밥이다” 하고 정반대로 보고합니다. “가나안 복지를 네 손에 붙인다” 하고 약속하신 하나님 말씀을 믿었기에 이런 보고를 했습니다.
 
금 같은 믿음은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질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안팎이 다른 사람과는 함께하지 않습니다. 안팎 모두 변하지 않는 금이 돼야 하나님께서 그를 믿어 주십니다. 나 혼자 하나님을 믿는다고 믿음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나를 믿어줘야 믿음입니다. <계속>

위 글은 교회신문 <302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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