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기독교 유적지를 찾아서(4)] 이야깃거리 풍성한 초대교회 역사박물관
김제 금산교회

등록날짜 [ 2013-08-27 11:42:31 ]

남녀 구분하려고 한옥으로 지은 ㄱ자형 건물
소나무로 대들보 만들어… 은은한 향기 가득
 

<사진설명> 한옥 ㄱ자형 교회.

전북 김제시 금산사 입구에 있는 금산교회는 우리나라에 유일하게 남은 ㄱ자형 초대교회다. 금산교회는 1905년 미국 선교사 테이트(Lews Boyd Tate)가 처음 세웠으며 1908년 이 자리에 지었다.

교회를 설립하는 일에는 테이트가 이곳에 와서 전도한 조덕삼, 이자익, 박화서, 왕순칠 같은 인물들이 크게 기여했다. 이들은 훗날 1900년대 우리나라 초기교회가 발전하는 역사에 큰 자취를 남겼다.

특히 양반인 조덕삼은 자기 집안에서 마부로 일하던 이자익이 장로 투표에서 먼저 당선되었음에도 겸허히 수용했을 뿐만 아니라, 이자익이 신학 공부를 할 수 있게 도와 목사가 되게 하고 후일 장로회 총회장으로 큰 역할을 했다.
 
1915년 이자익이 금산교회 담임으로 부임했다. 이자익은 교단을 섬기는 교단장으로 활동했고 장로교 헌법의 기초를 세웠다. 이자익 목사는 마부라는 신분이었으나 주인이 적극적으로 후원해 평양신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총회장을 3회 연임했다. 조덕삼 장로의 아들 조승호 장로는 금산사립학교를 세운 실천가였으며, 손자는 조세형 국회의원이다.

교회 내부 성막 3중 구조 본떠
한옥으로 지은 ‘ㄱ’자형 금산교회는 원형이 잘 보존되었는데, 당시의 시대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이러한 건축 구조는 당시 남녀유별이라는 전통사회 관습을 반영하여 남녀 신도가 앉는 자리를 분리하려는 의도가 보인다. 더불어 남자석 대들보에는 한자로, 여자석 대들보에는 한글로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이고...”라는 성경 말씀을 새겼다.

자연석을 다듬어 초석을 놓고 그 위에 사각기둥을 세웠다. 하인방 아래 환기 구멍을 냈고 중인방과 상인방 사이에 세살창(창살을 아주 가늘게 다듬어 만든 창)을 해 달았다. 지붕은 홑처마에 우진각 형태인데 처음엔 초가로 했다가 해방 후 지금의 시멘트 기와로 바꾸었다고 한다. 남쪽과 북쪽에 나 있는 출입문은 여닫이 격자무늬 종이 문이다.


<사진설명> 금산교회 내부 모습. 강단 왼쪽에 휘장이 보인다. 그곳에 여자 성도가 모여 말씀을 들었다.

예배당 마루는 전통적 우물마루가 아니라 일렬로 길게 뻗치는 쪽마루를 깔았고 위는 천장 가구가 그대로 드러난 연등천장이다. 천장 가구는 납도리 5량식이고 지붕 용마루를 받치는 마루도리와 중도리를 겹으로 올렸다. 예배당 안은 기둥 하나 없는 통간 건물인데 육중한 지붕 무게를 지탱하고자 우람한 소나무 재목을 구해 대들보로 삼았다. 이 소나무는 교인들이 모악산에 올라가서 베어 왔다고 한다. 예배당은 모든 재목을 깎아서 맞추는 이음새 맞춤법을 사용했고 철로 만든 못은 어느 한 곳에도 사용하지 않았다.

다섯 평짜리 강단은 북서쪽 모서리에 있는데 2단으로 꾸몄다. 그러나 목사가 밟고 서는 발판을 포함하면 3층 구조가 된다. 이는 한국 전래의 제단 구조이면서 뜰-성소-지성소로 이어지는 성막의 3중 구조이기도 하다. 강단 뒤쪽에 목사님들이 강단에 들어설 때 사용하던 작은 문이 있다.

강단 오른쪽에 있는 기둥은 휘장을 칠 때 사용했다. 휘장은 두 번을 친다. 먼저 남자와 여자 성도 사이에 친다. 그리고 강단에 선 목사도 여자석을 볼 수 없게 했다. 휘장은 단계적으로 철거했는데, 목사와 여자 성도 사이에 있던 휘장은 1930년대 초에, 남자와 여자 성도 사이에 있던 휘장은 1940년대 초에 철거했다. 금산교회 주변에는 금산사 등산로가 일품이고, 인근 유적지를 잇는 모악산 마실길이 조성되어서 나들이하기에 좋다.

영원한 하늘 집을 소망하며
엄격한 남녀 구별은 들어가는 문과 좌석에만 한정한 것이 아니라 남녀석 상량문에서도 차이를 뒀다.

남자석 상량문에는 한문으로 고린도후서 5장 1~6절을 기록했다. 5장 1절을 한글 성경으로 번역하면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나니”로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을 소망하는 내세 지향적인 내용을 새겼다. 여자석 상량문은 고린도전서 3장 16~17절인데 순 한글로 기록했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이 구절 끝에 “주여 당신 오실 때까지 늘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멘”이라는 기도문을 덧붙여 놓았다. 이 또한 주의 재림을 기다리는 내세지향적인 간구다. 금산교회 교인에게 성전은 영원한 하늘 집이고 다시 오실 예수를 기다리는 ‘거룩한 공간’이었다.


<사진설명> 현재 금산교회 전경.

오래된 강대상과 서양식 옛 의자, 백 년 된 풍금, 나무로 만든 헌금통…. 예배당 안은 각자의 이야기를 간직한 아담한 역사박물관이다. 눈에 넣고 다녀도 좋을 아름다운 금산교회 예배당은 1997년 7월 전라북도 지방문화재 제136호로 지정되었다.

/특별취재팀

위 글은 교회신문 <351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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