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말씀] 하나님이 주신 첫 계명

등록날짜 [ 2014-05-13 10:35:47 ]

이웃 사랑에 앞서 부모 공경은 그리스도인의 의무이니
가정 안에서 질서대로 순종하는 것이 신앙의 기본이다

에베소서 6장 1~4절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하나님은 만유의 조물주이시요, 우리의 영원하시고 거룩하신 아버지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자기 자녀로 삼으시려고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셔서 그의 영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로 더불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자식의 본질
하나님은, 하나님 자신과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아버지와 아들의 부자 관계를 우리 인간에게 보여 주시어 우리 인간의 삶에 본을 보여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아버지의 명령에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며, 그와 같이 아버지의 말씀에 복종하신 아들을 아버지는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셨습니다. 이 같은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이루신 일들이 바로 우리의 믿음이며 영생의 일입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17:3).

‘아버지’라는 말은 ‘본질’이라는 말입니다. 제 아버지가 윤 씨이기 때문에 저도 윤 씨인데, 아버지라는 본질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래서 아버지의 성품도 닮았고 얼굴도 닮았고 생각도 닮았고 행동도 닮았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실 때도 하나님께서 본질이 되셔서 흙으로 인간을 만드시고 코에 생기를 불어넣어 생령이 되게 하셨습니다(창2:7). 그러므로 인간은 생각이 하나님을 닮고, 모든 행위가 하나님을 닮고, 삶이 하나님을 닮아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닮지 못한 수많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아버지인 줄 모르고, 하나님께서 아버지로서 우리에게 어떤 축복의 말씀을 주셨는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엡2:2)라고 했습니다. 악한 영, 마귀는 항상 우리 인간이 하나님께 불순종하게 만듭니다.

하나님 아버지가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은 다 지켜 행하여 우리 인간이 행복하라는 것입니다. 그 말씀대로 행해야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하는 말도 그렇게 해야 행복하다는 말입니다. 자식이 행복하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이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도 우리가 행복하기를 간절히 원하고 바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슨 일이 있어도 자신의 행복과 하나님 아버지의 기쁨을 위해서 행복해야 합니다. 그 행복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할 때 얻게 됩니다.

아버지의 마음
누가복음 15장에 탕자 이야기가 나옵니다. 두 아들이 있는데 작은아들이 아버지의 간섭을 귀찮아하고 싫어합니다. 아버지가 자식이 잘되기를 바라서 이래라 저래라 말하는데 그것이 듣기 싫습니다. 그래서 아버지에게 자기 몫을 달라고 당당하게 요구하여 아버지 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아버지가 볼 때는 전혀 철이 없어서 재산을 가지고 나가면 다 망하고 말 것 같은데, 법대로 달라고 우겨대니까 하는 수 없이 줘서 보내고 말았습니다. 작은아들은 그것을 받아들고 나가는 순간에 돈을 물 쓰듯 쓰고 창기와 더불어 다 없애 버렸습니다. 창기와 더불어 없애 버렸다는 것은 그만큼 육체가 성숙했다는 것을 말하지만 아버지가 준 돈을 받아서 스스로 독립할 만한 정신적 기능은 없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아버지가 작은아들에게 재산을 줘서 내보내 놓고 ‘가져간 재산으로 행복하게 잘 살겠지’라고 생각하지 않고 ‘가져간 재산을 다 탕진하고 나면 아마 죽을 고생할 것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작은아들이 집을 나간 다음부터 걱정을 합니다.

일러스트 / 박철호

이와 같이 우리 하나님께서도 우리 인간이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아담과 하와에게 만물을 주시고 마음껏 사용하고 누리게 하셨습니다. 또 인간이 망하지 않기를 바라셔서 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과는 먹지 말라고, 먹으면 정녕 죽는다고 미리 일러 주셨습니다.

그런데도 아담과 하와는 행복하기를 바라는 하나님 말씀을 저버리고, 마귀의 말을 듣고 선악과를 먹어 정녕 죽는 죽음에 처하고 말았습니다. 마귀는 하나님 아버지 말을 안 듣고 인간이 자기 마음대로 사는 것이 유익인 것처럼 미혹하지만 하나님 말씀을 벗어나면 저주와 멸망과 고통과 죽음만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결국 탕자는 재산을 모두 탕진한 후에 온갖 고생을 하다가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옵니다. 염치가 없어서 품꾼의 하나로 써 달라고 부탁하겠다는 마음을 품고 돌아왔지만, 아버지는 문 밖에서 기다리다가 멀리서 아들을 알아보고는 반갑게 맞이하며 죽었던 아들이 돌아왔다고 기뻐합니다. 아버지는 이미 아들이 돌아올 줄 알고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순종과 불순종의 차이
성경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함께 일하신 사실을 기록한 책이며, 인간에게 주신 영생이라는 거룩한 작품을 기록하여 인류에게 주신 위대한 선물입니다. 성경 안에는 아버지와 아들의 사랑과 순종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나타나 있으며, 성령은 성경 안에 나타나 있는 아버지와 아들과 함께하여 우리에게 주신 생명을 체험케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성경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면 복이 있고 불순종하면 저주가 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마귀는 끝없이 인간을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게 만들어서 인간이 이 땅에서 살다가 죽으면 지옥으로 끌고 가려고 합니다. 지옥에 가서 어떻게 살겠습니까.

요한계시록 20장 10절에 “또 저희를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지우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고 했습니다. 무슨 미혹일까요? 바로 하나님을 믿지 마라, 교회 가지 마라,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해라, 기독교를 하나의 종교로만 인정하라 등 생사화복의 절대적인 사실을 모르게 만들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게 만들어서 인간을 영육 간에 영원히 망하게 하려는 미혹입니다.

내 생각대로 내가 불순종하는 것 같지만 실상은 하나님의 원수요, 인간의 원수인 마귀역사라는 사실을 분명히 깨달아야 합니다. 마귀는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자라고 성경에 분명히 말했습니다(요10:10).

성령의 역사가 아니면 누구를 막론하고 하나님이 우리 인간의 아버지가 되시고 그 아들이 우리의 구세주가 되시는 엄청난 일들을 알지 못합니다. 성령으로만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으로 우리가 하나 된 은총을 입게 됩니다.

우리 인간의 가정도 부모 자식의 관계를 현실 속에서 체험하는 증거이니 곧 악한 부모도 자식에게 좋은 것을 주려 하고, 악한 자식의 마음에도 평생 부모에게 최고의 효도를 해 보고픈 심정이 불타는 것이 그것입니다. 이것이 부모와 자식 간의 천륜의 관계입니다.

그러나 부모와 자식의 관계가 아무리 천륜의 관계라 할지라도 탕자의 비유에서와 같이 순종하는 자식만이 아버지의 집에 거합니다(요14:2, 눅15장). 그러므로 하늘에서나 땅에서나 가정의 불순종은 영원히 있을 수 없습니다. 불순종은 곧 자식이 부모를 거역하는 일이며, 그 거역이 가정의 평화를 파괴합니다. 하늘에서도 에덴동산에서도 평화를 파괴한 시작은 불순종이었습니다. 이는 분명히 마귀의 산물입니다.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엡2:3).

순종이란, 자식이 아버지를 사랑하여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불순종한다면 원수는 네 집안 식구라 하였습니다(마10:36). 우리 인간이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생각하거든 하나님께서 주신 첫 계명인 주 안에서 부모에게 순종해야 하며 주 안에서 자녀를 사랑해야 합니다(엡6:1-4).

부모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께 불순종이요, 타락 중의 타락입니다. 또 하나님께서 가정 안에 주신 법을 파괴한 것이니 이는 곧 사단적 행위입니다. 영생이란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요, 행복이란 부모에게 순종하고 부모의 사랑을 받는 것을 말합니다(눅15:11-32). 이것이 부모에게는 즐거움이요, 자녀에게는 행복입니다. 또 하나님과 함께하는 신령하고 영원한 계명입니다.

위 글은 교회신문 <385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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