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말씀] 독생자라도 양보할 수 없는 영혼 구원

등록날짜 [ 2016-11-09 10:10:53 ]

기독교인이 하는 모든 행위는 영혼을 구원하기 위한 것
오직 영혼 살리는 사역에 자기 삶을 아낌없이 투자해야


요한복음 3장 16~21절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진리를 좇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은 하나님께로 오는 것이요, 사랑은 살리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요 사랑입니다. 하나님 말씀 안에 명령이 있고 생명이 있으니, 하나님 말씀은 영원히 멸망할 자를 살려 내십니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요6:63)

하나님의 말씀은 영이요, 영이신 하나님이 말씀으로 나타났으며, 말씀이 나를 살리기 위해 나를 점령해 오고 설득하고 있으니, 우리는 하나님 말씀을 듣고 살려고 해야 합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로 사는 존재
하나님은 인류를 모두 사랑하십니다. 하나님 사랑의 절정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셔서 죄와 저주와 질병에서 인간을 영육 간에 살리시고 고치시고 영원히 함께하는 것입니다(요3:16). 이 세상에 살아가는 수많은 아버지와 어머니는 자식을 낳으면 무조건 예뻐합니다. 그리고 책임감이 절대화되면서 마음과 생각 속에서 한시도 잊어버리지 않습니다. 그만큼 자식을 향한 사랑이 큽니다. 자식을 사랑해서 잘 키우고 훌륭한 사람으로 만들고 싶은 것은 모든 부모의 마음입니다. 이런 부모의 마음을 아는 자식은 별로 없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육체 속에서 나타나는 양심의 사랑이 아무리 클지라도 우리를 멸망에서 영생으로 바꾸어 줄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멸망에서 영생으로 바꿔 주려고 사랑하셨습니다. 모든 세상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창1:26~28).

또 영적으로는 하나님 말씀으로 살아갑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마4:4).

이같이 인간이 하나님의 은혜로만 영육 간에 산다고 하는 사실을 믿는 것이 하나님을 아는 일이요, 그가 자기 영혼이 영원히 사는 길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피 공로로 산다고 하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육체는 하나님은혜로 세상에서 살고 있으나 영혼은 영원히 멸망을 피할 길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영적인 사랑을 알지 못하여 그 사랑의 절정인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영원히 멸망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을 사랑하는 일은 의무 수준을 넘어서 사랑하지 아니하면 안 되는 절대적 신앙 양심의 발로입니다.


복음 전도는 인간에게만 주신 권리
우리에게 예배를 드리고 찬양하고 말씀을 들으며 영적인 새로운 생명이 약동하고, 성령 충만하며, 주를 위해 살겠다는 각오와 의지, 더 나아가 전도해야 겠다는 생각이 없다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우리가 예배를 드리는 목적은, 먼저 우리 자신이 마귀, 사단, 귀신에게 끌려 미혹당하여 망하는 일이 없도록 하려는 것이요, 다음은 세상에 나가서 멸망할 사람들을 주님께 인도하여 전도자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생활이고 예배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허락하신 영혼 구원의 역사는 천사에게도 만물에게도 동물에게도 허락하지 아니하셨습니다. 오직 우리에게만 허락하셨습니다. 제자들이 전부 그 일을 하다가 죽었습니다. 초대 교인들이 그 일을 하다가 죽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복음을 들고 왔다가 얼마나 많은 사람이 피 흘려 죽었는지 모릅니다.

기독교인의 영혼 구원 사랑은 천사라도 침범할 수 없는, 인간에게만 준 권리입니다.

기독교는 사랑의 실천을 영혼 구원으로 나타냅니다. 우리가 구제해도 영혼 구원을 위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병을 고쳐도 영혼 구원을 위하여,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도 영혼 구원을 위하여, 세상 지식을 얻는 학업도 영혼 구원을 위하여, 명예를 얻는 일도 영혼 구원을 위하여, 교회를 짓고 예배드리는 일도 영혼 구원을 위하여 해야 합니다.

이와 같이 기독교인이 하는 모든 행위는 위로 은혜 베푸신 하나님께 감사하려고, 아래로 멸망하는 영혼을 구원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즉 위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아래로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려는 것입니다. 영혼을 구원하는 전도 사업은 하나님께서 천사에게도, 천지 어떤 피조물에게도 허락하지 아니하였고, 오직 인간에게만 허락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영혼 구원 사업은 천지간에 제일 큰 기업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영혼 구원의 기업을 주신 것은 천하보다 한 영혼이 크기에, 최고로 위대한 기업을 자기 자녀에게 주신 것입니다. 기독교의 전도는 이방 종교와 같이 사람을 많이 모아 과시하려는 목적이 아니요, 오직 죄에서 질병에서 저주에서 살리려는 것입니다.

세상 정욕은 욕구 충족이라는 이기적인 사랑을 배출합니다. 이 같은 이기적인 사랑은 자기 욕구 충족에 있으나 예수 그리스도의 영적인 사랑은 자기 목숨을 다하여 영혼을 살립니다.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거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 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20:23~24).


일러스트 / 박철호


영혼 구원이 가장 가치 있는 일
세상에 사랑의 종류가 다양할지라도 인정, 애정, 감정 안에 있습니다. 이것이 정욕이요, 육체라고 하는 한계 안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사랑은 자기 육체와 혈육을 위한 것이요, 자기 육체와 혈육을 사랑하기 위해서 물질과 명예와 부귀영화를 애타게 구하나 자기 육체만 낡아져 갈 뿐입니다.

세상 수많은 무덤이 부귀영화를 구하다 간 흔적입니다. 인간의 목숨은 돈이나 부귀영화보다 월등하게 귀하고 천하에서 제일 큰 것이로되 인간의 목숨을 투자하여 목숨보다 더 작은 것, 자기 목숨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을 위하여 값진 자기 목숨을 투자하는 것은 가장 어리석은 소치요, 최후에 비참한 결과를 가져오고야 맙니다(눅16:19~31, 눅12:13~21).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마16:25~26).

기독교인이 자기 삶, 곧 자기 목숨을 투자할 만한 일은 인간의 목숨보다 영원히 큰 영혼을 살리는 일입니다. 지금 여기에서 설교하는 목사도 영혼을 살리겠다고 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없다면 아무것도 아니요, 지금 이곳에 앉아 있는 여러분은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사 일방적으로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바로 한 사람도 멸망치 않고 영생 얻기를 바라는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인간의 죗값을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에 매달아 잔인하게 죽인 하나님 아버지의 정신은 아들의 죽으심이 하나도 헛되지 않기 위해서 모든 사람이 그 피의 은혜로 구원받기를 지금도 애절하게 기다리고 계십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소원하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우리가 구제를 해도 그 사람의 영혼을 살리기 위하여 해야 합니다. 누구를 만나서 어떤 이야기를 할지라도 항상 우리 속에는 멸망할 그 사람을 살리겠다는 아주 구체적이고 확실한 지식을 믿음으로 소유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 믿음이 절대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가지고 병을 고쳐도 영혼 살리기 위하여 하는 것이요, 예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도 목적은 영혼을 살리는 것입니다. 교회를 짓고 예배를 드리는 모든 일이 영혼 구원을 위한 것입니다.

전도자는 사람을 찾아 모으는 노예가 아닙니다. 오직 영혼을 살리는 생명에 자기 삶, 자기 목숨을 투자하는 사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잔인하게 죽으신 희생은 인간의 죽음을 대신하신 일이니,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의 전도와 같이, 사도 바울과 제자들의 전도와 같이 멸망하는 영혼을 살립시다. 죄와 저주와 지옥에서 건져 냅시다.


 

위 글은 교회신문 <502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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