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말씀] 땅끝까지 내 증인이 되라

등록날짜 [ 2018-11-15 13:35:28 ]

복음 전도는 자신은 죽을지라도 예수 몰라 멸망하는 영혼을 살리고 말겠다는 열정
핍박과 어려움 따르지만 나를 통해 많은 영혼 살리려는 주님 뜻 무산되어선 안 돼
 
사도행전 1장 8절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은 천지 만물을 지은 조물주이십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고 기르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택하여 부르시고 이스라엘을 번성케 하시고, 이스라엘을 통하여 하나님의 섭리를 나타내셨습니다. 곧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구세주로 보내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
예수 그리스도는 죄로 멸망하는 인간의 구원주요, 우리를 그의 피로 거듭나게 하신 아버지이십니다.
“그가 그 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좇아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약1:18). 
이스라엘은 택하셨으나 우리는 그가 직접 피를 쏟아 낳으셨습니다. 우리를 낳은 예수의 이름을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1:12).
하나님은 이 같은 큰 은혜를 베풀고자 아들을 보내셨으니, 이는 죄인인 인류가 환영해야 할 최상의 기업입니다.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피 흘려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옛사람의 죽음, 곧 죄를 도말(塗抹)하셨고 영원한 생명을 주는 더할 나위 없는 축복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섭리요, 예수 그리스도의 일이요, 마귀와 죄에게는 영원한 파멸입니다. 
세상은 어두움에 속하여 이 엄청난 사실을 알지 못하나 믿음에 있는 우리는 능히 아나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 속한 증거입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요14:16~17). 
이 같은 사실을 아는 자는 믿음에 있고, 믿음에 있는 자는 구원을 얻고 부활의 능력을 소유하게 됩니다. 이 러한 영광스러운 생명의 기업을 알지 못하여 세상과 어두움에 속하여 방황하는 자에게 복음은 반드시 전파돼야 합니다. 한 사람도 지옥 가지 않도록 성령이 임하시면 권능을 가지고 전해 줘야 합니다. 
한 사람도 예수께서 피 흘려 속죄한 은혜를 알지 못해서 지옥 가는 것을 용납해서는 안 된다고 최후에 주님께서 간곡하게 부탁하셨습니다. 제자들에게 부탁한 그 부탁은 오늘날 내게도 하신 부탁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예수 믿고 내게 성령이 임했다면 반드시 권능이 있는 줄로 믿고 나가서 나를 만나는 모든 자에게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복음 전도는 바로 성령받은 사람이 행해야 할 책임입니다.
 
복음 전도와 성령의 역사
사랑은 하나님의 성품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요, 성령의 역사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섭리를 나타내시고, 예수 그리스도는 사랑의 섭리를 성취하시고, 성령은 사랑의 섭리를 땅끝까지 전파하십니다. 
그리스도의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이루어진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성령과 함께 생애 마지막 순간까지 불신자가 있는 한 전해야 합니다. 사랑은 멸망과 파멸을 방관할 수 없고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자기 목숨을 대신 주어서라도 살리려 하기에 사랑은 아무도 막을 수 없고, 제한할 수 없습니다. 
제자들은 자기 목숨을 다하기까지 그 사랑을 다하였으니 이것이 복음 전도입니다. 성령의 역사는 그리스도인을 감동하여 수많은 고난 가운데서도 멸망하는 인간을 살리기 위해 복음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복음은 어떤 핍박을 받을지라도 전해야 하는, 우리 주님의 최후 지상 명령입니다. 
본문은 주님이 이 땅에서 육신으로 계실 때 승천을 앞두고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들려주신 말씀입니다. 만약에 제자들에게 이렇게 부탁했는데 제자들이 그 말씀을 듣지 않았다면 지구에서 복음 증거는 없었을 것입니다. 또 우리는 다 이 땅에 태어나서 죄가 무엇인지, 죄의 결과로 지옥에서 어떤 고통을 영원히 겪어야 되는지 전혀 모른 채 밥이나 먹고 육신의 욕구와 충족을 위해서 몸부림치며 살다가 죽는 순간에 지옥으로 떨어졌을 것입니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실 때 500여 명이 모여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 380명이 “만약 우리가 예루살렘에 들어가서 예수를 좇았다는 소문이 퍼지면 총독 빌라도의 군대에 붙들릴 텐데  과연 살아남겠느냐?” 하고 다 흩어져 버렸습니다. 120명만 남아서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전혀 기도에 힘썼고, 그때 성령이 임했습니다.
성령이 임하자 두려움이 사라집니다. 예루살렘에 나가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사건을 말할 자신감이 생깁니다. ‘저들이 우리가 전하는 말을 들을 때 회개하고 무릎 꿇고 예수 믿게 될 것이다. 복음 전하다가 죽더라도 전하자.’ 이런 생각이 바로 성령의 생각입니다. 
복음이 증거되어서 우리에게까지 오는 데 엄청나게 오래 걸렸습니다. 왜냐하면 복음 전도에는 수많은 핍박과 방해가 따르기 때문입니다. 복음 증거는 쉬운 것이 아니라 이만큼 방해를 받는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 일러스트 박철호

 
죽어 가는 영혼을 방관할 수 없는 복음 전도
복음 때문에 핍박을 받았다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고 하늘에 속한 자이기 때문입니다.
“저희는 세상에 속한고로 세상에 속한 말을 하매 세상이 저희 말을 듣느니라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였으니 하나님을 아는 자는 우리의 말을 듣고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한 자는 우리의 말을 듣지 아니하나니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이로써 아느니라”(요일4:5~6).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터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자인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내가 너희더러 종이 주인보다 더 크지 못하다 한 말을 기억하라 사람들이 나를 핍박하였은즉 너희도 핍박할 터이요 내 말을 지켰은즉 너희 말도 지킬 터이라 그러나 사람들이 내 이름을 인하여 이 모든 일을 너희에게 하리니 이는 나 보내신 이를 알지 못함이니라”(요15:18~21).
우리가 어떤 핍박을 받을지라도 복음을 전해야 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에게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이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누구를 위하여 일하면 당연히 품삯을 받듯 주를 위해서 일하는 자도 상이 있고 면류관이 있으니 감사해야 할 일입니다(계2:9~10).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마5:11).
설령 우리에게 보상이 없을지라도 복음을 전해야 하는 것은 우리가 전하지 아니하면 수많은 영혼이 멸망하기 때문입니다. 왜 이처럼 위대한 생명의 복음 전하는 일에 핍박을 할까요? 왜 죄와 저주와 고통으로 멸망하는 인간에게 이같이 값지고 귀한 소식을 전하는 일을 환영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부터 제자들과 초대교회 수많은 사람이 잔인한 핍박을 받으며 최후를 마쳐야 했을까요? 이것은 마귀역사요, 무지에서 비롯된 불행입니다.
스데반은 예수를 알지 못하여 핍박하는 자들이 안타까워 복음으로 설득해 구원받게 하려고 적지에 뛰어들어 가슴 터지듯이 복음을 전하다가 잔인하게 죽임을 당했습니다. 
이와 같이 복음 전도는 자기는 쓰러져 죽을지라도 무지하여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원수 된 자들을 구원하려는 열정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듣고 가진 성도는 복음을 전하라는 주님 명령을 거절할 이유가 조금도 없습니다.
주님이 명령이 내게서 멈추게 해서는 안 됩니다. 내가 주님의 명령을 거절한다면 나를 통해 수많은 영혼을 살리고자 하는 주님의 뜻이 무산되고 맙니다. 그 책임과 심판을 무엇으로 피하겠습니까. 그러므로 나를 만나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해서 내가 하나님께 속했음으로 확인하기 바랍니다.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거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20:23~24). 
 

위 글은 교회신문 <599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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