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식 선교사
“세계 복음화 위해 주님 쓰시는 도구 되렵니다”

등록날짜 [ 2004-09-25 21:09:58 ]

햇살 뜨거운 가을날 미국출장을 마치고 잠시 짬을 내어 귀국한 김용식 선교사를 만났다. C국에서 11년 동안 기업을 운영해 오고 있는 김 선교사는 그 지역 정부로부터 인정받은 ‘명예촌민’이다. 외국인에게 자국인으로서의 권리를 부여해주는 그러한 큰 명예직을 얻기란 C국에선 극히 드문 일이라고 하는데 조심스럽게 펼쳐내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제가 예수를 만나면서부터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려는 믿음으로 주일만 되면 교회를 두루 찾아다니며 그곳 성도들과 친분을 다져갔습니다.”
정 깊어진 그네들을 만나는 동안 자신이 할 수있는 일이 무엇일까 고민하며 기도하던 김 선교사는 믿음 생활에 도움이 될 만한 복음서적과 테이프 등을 마련해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국내 선교회를 통해 구한 여덟 상자 분량의 자료를 모아 실어나르는 일들이 쉽지는 않았으나 사랑을 듬뿍 담아 건네는 선물을 받아들고 기뻐할 그들을 생각하면 그저 행복하기만 했다.
몇년째 현지인 장애자 90여 명에게 철마다 의복과 음식을 마련해 주는 김 선교사는 특히 명절이 되면 푸짐한 음식을 챙겨주며 사회로부터 소외된 그들을 배려하기도 한다.
학비가 없어 공부하지 못하는 30명의 학생들에겐 자신들의 미래를 위해 준비할 수 있도록 학비를 대주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예수 믿는 한 외국인을 통해 큰 위로와 삶의 희망을 가진 그들이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예수의 사랑을 뜨겁게 만나게 되길 간절히 기도하는 김 선교사.
그는 지난 8월, 주님의 몸된 교회와 복음사역의 사명을 다하기 위한 목적으로 창립된 연세중앙교회 실업인 선교회 회장에 임명됐다. 사업의 이익을 오직 영혼 살리는 주님 일에 가장 귀하게 사용하고 싶은 그에게 적역의 직분이리라.
믿음과 사업 어느 것에도 균형을 잃지 않는 그에게도 지난날 무서운 시련은 있었다. 11년 전, 노동집약 저임금의 매력에 끌려 C국으로 사업기반을 옮긴 후, 한국식 경영에 익숙했던 김 선교사는 C국의 독특한 언어와 관습 등에 잘 적응하지 못했다. 고질병인 당뇨마저 심해져 쓰러지기 직전, 아내와 딸의 “제발 교회 한번 가자”는 간청에 이끌려 1995년 12월, 연세중앙교회 매일철야예배에 참석하였다. 예수를 알지 못 했던 그가 단 며칠만에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압도되었고 예수의 사람으로 바뀌면서 그의 인생이 역전되기 시작했다. 하나님 말씀에 은혜 받고 나니 걱정은 사라지고 항상 마음이 기뻐 일은 거칠 것이 없었다. 그의 모든 생활은 하나님께서 배경되었기에 그렇게 힘들고 어려워 고민을 거듭하던 사업도 말할 것 없이 승승장구였다. 그의 사업 아이템은 인모로 만든 부분가발인데 전량 미국과 일본에 수출할 정도로 품질이 우수하다. 직원은 350명이 넘고 그중 50여 명이 주일예배를 같이 드리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어찌 그리 달고 맛있기만 한지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생활 가운데서도 틈만 나면 본 교회 예배와 성회에 참석해 영적인 고갈을 채우며 외국의 예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가슴에 품은 그의 선교 열정은 62세라는 나이가 오히려 무색하다. 오직 주님의 기쁨이, 주님께서 쓰시는 도구만이 되고 싶은 진실한 소원이 그에게 있기에 주님께서 “가라!” 하시는 곳 어디든지 믿음 갖고 나아가 생명복음 전하고 싶은 김 선교사.
그는 C국, 그 땅을 예수 이름으로 밟고 넘어 이슬람을 향해 예수의 복음 운반할 수 있는 비단길을 활짝 펼쳐내고 싶은 심정 간절하다. 세계복음화를 향해 연세중앙교회 선교인들이 마음껏 예수의 생명을 나눠줄 수 있도록 말이다.

위 글은 교회신문 <64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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