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콤 펜윅 한국 교회 전도기 ②] 나는 부족하나 주님이 함께하시기에

등록날짜 [ 2010-11-16 22:22:40 ]

한국이라는 나라 전혀 몰랐으나 부르심에 순종
선교는 오로지 주님만 의지하는 것임을 깨달아

1889년 7월, 한국으로 가라는 부르심을 받았을 때, 소중한 내 친구 헤론(J. W. Heron) 박사의 아내가 한국에서 복음을 전했다는 이유로 감옥에 갇혀, 조만간 교수형을 당할 것이라는 소문을 들었다. 이것은 큰 기삿거리가 되었고, 캐나다 신문들은 그 소식을 널리 전했다.

나도 다른 많은 사람과 다름없이 한국이라는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 그것이 지중해에 있는 어떤 섬인 줄로만 알았다. 지도를 보고서야 내가 생각한 섬은 코르시카고, 한국은 아시아 지역 끝에 붙은 반도로서, 한 면은 서해에 접해 있고 다른 면은 동해에 접해 있으며, 위도 35도에서 43도에 자리 잡은 나라인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선교가 뭔지 전혀 몰랐다. 그냥 막연하게, 하나님이 이교도들에게 가서 복음을 전하기를 바라신다고만 알았다.

선교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얼굴을 검게 그을린 근엄한 선교사가 야자수 아래서 성경을 들고 서 있고, 곁에는 특이하게 생긴 원주민이 양산을 받쳐 들고 서 있으며, 주위에는 그에게 복음을 들으려는 많은 사람이 모여 있는 장면이 떠올랐다. 선교사가 가는 곳은 으레 무더운 지역인 줄로만 알았다.

그러므로 한국이 연중 석 달 동안 눈이 120㎝나 내리는 나라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선교사들이 가는 곳은 모두 호랑이가 득실거리는 밀림인 줄로 알았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한국에 호랑이가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별로 놀라지 않았다. 한국은 아프리카와 인도를 합친 지역쯤 되리라고 생각했다.

한국에 가기로 한 뒤에 나라가 온통 산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말을 들었고, 나중에 와서 보니 사실이었다. 또 호랑이가 있다는 말도 사실이었다.

그러나 이런 흥미로운 사실들을 빼놓고는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전혀 몰랐다. 사실 선교 단체들과 편지를 주고받았고, 한국에 가 본 적이 없는 저자들이 쓴 한국 관련 서적 두 권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도대체 한국이 어떤 나라인지 명확히 알 수가 없었다.

부르심의 과정
하나님이 나를 흑암에서 그 아들의 찬란한 빛으로 불러내실 당시, 나는 사업을 하고 있었다. 철물 도매업이었다. 당시 나는 직원 40명을 거느린 창고 책임자였다. 나중에는 멀리 해안 지방에 자리 잡은 지사 겸 직판장 총책으로 승진했다. 그 무렵 나는 저녁 시간을 이용하여 성경을 공부하고 평신도로서 기회가 닿으면 어디든 가서 복음을 전하였다. 나이아가라 사경회에서 멀리 이방인들에게 가서 복음을 전하라는 부르심을 받았을 때, 나는 예전처럼 변명했다. “주님, 저는 사업가에 불과한 사람입니다. 그것은 주님이 더 잘 아십니다.” 그러나 주님은 “가라!”고 하셨다. “하지만 주님, 저는 정규 교육을 받지 못했습니다. 목사도 아닙니다. 신학교에 가 본 적도 없습니다.” 주님은 다시 “가라!”고 하셨다. “하지만 가고 싶지 않습니다.” 나는 대답했다. “갈 마음이 생기도록 해주기를 바라느냐?” 주님은 말씀하셨다. “아닙니다. 그런 마음을 갖게 되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나는 대답했다. 사흘째 되는 날 나는 이렇게 말했다. “주님, 가고 싶지 않습니다. 그런 마음을 갖게 되기를 바라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만약 제게 그런 마음이 생기를 원하신다면 뜻대로 하십시오.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날 저녁 인도에서 온 윌더 형제에게 사막에서 물을 애타게 찾으며 죽어가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윌더 형제는 이렇게 말했다.

“그 사람에게 화려한 유리 주전자에 물을 담아 화려한 유리잔에 따라 주면 감사하게 받아 마실 것이다. 그러나 더럽고 쭈그러진 양철통에 물을 담아 주더라도 감사하게 받아먹고 생명을 보존할 것이다.” 그렇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물이다. 이 간단한 예화를 듣고 난 뒤 마음속에 의지가 생겼다. 교육을 받지 못했느니 신학을 공부하지 않았느니 하며 변명하던 과거의 태도를 단숨에 몰아냈다. 적어도 찌그러지고 누추한 양철통 정도는 되어 생명수를 전달할 수는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두려움은 여전했다. 이 점에서도 윌더 형제는 이렇게 말했다. “어떤 사람이 배에 올라 노를 젓기 시작했습니다. 한참 노를 저은 뒤에 배가 아직 선착장에 그대로 머물러 있는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일어나서 고물로 가 보니 배가 선착장에 묶여 있었고, 따라서 지금까지 헛고생해 가며 노를 저었던 것입니다. 칼을 꺼내 밧줄을 끊고 노를 저으니 배가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내 경우와 꼭 맞아떨어지는 이야기였다. 선교는 어차피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주님께서 함께하시면 모든 문제의 밧줄은 끊어질 것이다. 그 후 한국으로 부르신 그분의 뜻에 순종할 수 있게 되었다. <계속> 

『한국에 뿌려진 복음의 씨앗(말콤 펜윅 저)』에서 발췌

위 글은 교회신문 <217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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