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회계연도를 시작하며] 예수로 얻은 구원의 큰 영광을 위하여!
등록날짜 [ 2013-02-26 09:25:08 ]
동양 최초 예수교 국가를 꿈꾸며
이승만은 감옥에서 <제국신문>과 <신학월보> 등에 수많은 논설을 남겼다. 그 외에도 노트에 여러 가지 형태의 자유로운 잡기(雜記)를 썼다. 이것 역시 김영선을 비롯한 간수들이 특별한 호의를 베풀었기에 쓸 수 있었다. 당대 문사(文士)인 이승만의 글에 적지 않은 독자가 매료되었다. 그중에는 고종 황제의 아들을 낳은 엄비(嚴妃)도 있었다.
정치범으로 투옥해 기독교인이 된 이승만은 정치와 종교의 관계에 관심을 기울였다. 『이승만의 구한말 개혁운동』을 쓴 이정식은 이승만의 옥중 논설이 보여주는 주제를 “기독교로 나라 세우기 논리”라고 표현했다,
기독교로 나라 세우기, 혹은 기독교 입국론(立國論)을 보여주는 논설로는, 1903년 9월 <신학월보>에 실린 「두 가지 편벽됨」을 들 수 있다. 이승만은 이 글에서 ‘인간의 곤경은 하나님의 기회’라는 복음적인 신앙관을 보여준다.
“사람이 극히 어려운 지경을 만나면 곧 하나님께서 감화시킬 기회라 하나니 비교하건대 논꼬에 물이 마르고 뜨거워 고기가 살 수 없게 된 후에야 스스로 새 물길을 얻어 강과 바다를 찾아갈지라. 이 세상은 우리의 잠시 사는 논꼬 물이라. 다소 태평안락한 데 사는 사람들도 바다같이 영원히 마르지 않을 생수를 찾기에 게으르지 않을진대, 하물며 물이 마르고 흙탕이 되는 도탄 중에 어찌 새 물줄기를 찾지 아니하리오.”
이승만은 당시 조선 상황을 “물이 마르고 흙탕이 되는 도탄”이라고 표현하며 고통스러운 시대 상황을 적절하게 비유했다. 말라 가는 흙탕에 사는 물고기가 살려면 자연히 새로운 물을 찾아가야 한다. 새 물줄기가 바로 기독교라고 이승만은 단언한다.
“대한 사람의 새 물줄기는 예수교회라. 이 교회가 날로 흥왕함은 더 말할 것 없으려니와 아직도 저 불쌍한 사람들에게 다 기회를 주어 우리와 같이 생활 샘으로 나오지 못하게 함은 실로 다 우리 믿음이 부족함이요 사랑이 부족함이라”
혁명을 꿈꾸다가 감옥에 들어온 이승만은 새로운 혁명을 꿈꾼다. 그것은 예수교로 일어나는 혁명이다. 오백 년 유교 국가인 조선에 예수교라는 새로운 물줄기를 끌어들이는 혁명의 꿈이 죄수 이승만의 가슴에서 꿈틀거렸다.
<사진설명> 1904년 한성감옥에서(왼쪽에서 3번째가 죄수 이승만). 당시에는 어린이들도 감옥에 있었기 때문에 청년 이승만은 옥중학교를 운영하여 한글과 한문을 가르쳤다.
나라가 새로워지려면 백성이 새로워져야 한다. 백성을 새롭게 하려면 교화(敎化)해야 한다. 이승만이 사용한 ‘교화’라는 말은 교육보다 높은 차원의 종교.도덕적 뜻을 지닌 말이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힘으로 백성을 다스리고 변하게 해야 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이승만은 백성의 교화를 주도하는 교회는 정부가 근원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승만이 교화를 강조한 것에서 감옥생활과 기독교 개종이 그에게 일으킨 변화를 뚜렷이 볼 수 있다. 감옥 안에서 이승만의 싸움은 ‘바깥’을 향했다. 이승만의 투쟁은 개혁 조치를 시행하고 의회를 설치하는 등, 정치제도를 개혁하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감옥에서 기독교인이 된 후, 스스로 심령의 변화를 체험한 뒤에 이승만은 ‘안’에서 출발해야 함을 깨달았다. 기독교 교화로 동족의 영적.정신적.도덕적 자질 향상을 무엇보다 우선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 결과, 이승만은 조국을 동양 최초 예수교 국가로 만들겠다고 결심했다.
이승만이 노트에 쓴 ‘입국이교화위본’(立國以敎化僞本 - 교화로써 나라를 세울 것)은 백성을 교화한다는 개념을 뚜렷이 보여준다.
“오늘날 선비가 참으로 나라를 위한 계책을 세우려고 한다면 반드시 먼저 백성을 위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진실로 백성을 위하려고 한다면 반드시 먼저 백성으로 하여금 나라를 위하는 마음을 갖게 해야 하며, 진실로 백성으로 하여금 나라를 위하는 마음을 갖게 하려면 반드시 먼저 그들을 교화해야 한다.”
백성의 마음이 교화되어야 하는 이유는 오랫동안 속박과 수탈을 당하여 정신이 굳어지고 이기적이 되어서 사사로운 이익만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이승만은 백성의 상태가 “나무 인형과 풀 인형처럼 느낌이 없고 움직임이 없는 데 그치지 않고 나아가 승냥이와 이리, 뱀과 전갈같이 그 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해독이 더욱 심한 상태에 이르렀다”고 진단한다.
윗글은 이승만이 주장한 ‘교화’가 기독교적 성격을 띤 것을 분명히 드러낸다. “백성의 마음은 기독교로만 새로워질 수 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변화되어 만물의 주관자요 심판자이신 하나님을 의식하며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죄, 하나님의 통치와 심판, 내세의 형벌과 상급 등 성서에 나오는 개념들이 분명히 드러나 있다. <계속>
위 글은 교회신문 <327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