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보기도 은혜나눔]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

등록날짜 [ 2023-03-09 18:57:07 ]

세상 의학은 가망이 없다고 했으나

연세가족들의 중보기도를 들으시고

주님께서 반년 만에 종양 해결하셔

중보기도 능력 경험해 신앙도 회복




| 김종업(56여전도회)



지지난해 봄 즈음, 초등학교 6학년인 아들이 갑자기 속이 좋지 않다며 구토를 했다. 체하면 흔히 있는 일이라 동네 병원에 가서 소화제를 처방받아 귀가했다.


그런데 약을 먹고 금세 괜찮아질 줄 알았던 아들은 배에 이어 머리가 너무 아프다며 끙끙 앓았다. 곧 괜찮아질 것이라며 아들을 안심시킨 후 동네 병원에서 두통약을 사다가 먹이기만 했다. 다음 날 아침에도 계속 통증을 호소하던 아들이 “학교에 가지 못할 것 같다”라고 했으나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등교를 시켰다. 몇 달 전부터 꾀병처럼 머리가 아프다고 한 데다 몸이 급격히 자라나는 시기여서 그에 따른 증세이겠거니 여겼다.


어미에게 마음의 준비를 하라니

그런데 며칠이 지나도 여전히 머리가 아프다는 아들의 증세가 아무래도 심상치 않아 보였다. 그러던 중 소스라치게 놀랄 일이 발생했다. 아들의 눈동자가 한쪽으로 돌아가며 사시가 되어 버린 것이다. 급히 종합병원으로 달려갔다. 여러 가지 검사를 실시하던 의사는 내게 “뇌종양인 듯하다”라며 “소아병동이 있는 큰 병원으로 갈 것”을 서둘러 권했다.


‘설마 아니겠지…’ 애써 담담한 척하며 쓰러져 있는 아이를 안고 서울에서 가장 큰 A병원으로 향했지만, 당시 너무 늦은 시간이라 응급실 진료밖에 되지 않았다. 아들은 “눈앞이 흐려 앞이 보이지 않는다”라며 겁에 질려 흐느꼈고 어느새 머리도 잔뜩 부풀어 있는 상태였다. 엄마 품에서 부르르 떨고 있는 어린 아들을 안심시키려 했으나, 엄마인 나도 떨리는 손을 멈출 수 없었다. 눈앞에 드리운 현실이 너무나 두렵고 무서웠다. 뇌종양이라는 병명 자체만으로 숨이 멎을 것만 같았다.


얼마 후 A병원에서는 종합병원에서 촬영한 MRI를 보고 담당의에게 연락해 그의 지시대로 조영 MRI를 찍었다. 곧바로 수술에 들어갈 수 있도록 조처해 주었으나, 코로나19 사태가 한창인 시기여서 바이러스 검사 결과가 나오기까지 6시간이나 더 기다려야 했다. 바싹바싹 피 말리는 시간을 보내야 했다.


결국 그다음 날 수술에 들어갔고, 우선 뇌수를 빼내어 뇌압을 낮춘 후 조직검사를 위해 종양을 조금 떼어내는 정도로 수술을 마쳤다. 조직검사 결과를 확인한 후 어떻게 치료할 것인지 결정한다고 했다. 검사 결과를 기다리던 1분 1초 동안 후회와 한숨으로 얼마나 나 스스로를 자책했는지 모른다. ‘아이가 아프다고 할 때마다 동네 병원만 전전하던 한 달여 시간. 더 일찍 발견했더라면… 난 엄마도 아니다!’ 아들이 이 지경까지 이른 것이 내 탓이라는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죄책감에 짓눌려 괴로워했다.


며칠 후 조직검사 결과가 나왔다. 한 가닥 희망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절망적인 결과였다. 악성종양인 데다 종양의 위치상 수술할 수 있는 부위도 아니어서 세상 의학으로는 어떻게 해 볼 수 없다는…. 설상가상 척추로 전이까지 된 듯해 앞으로 5년을 넘기기 힘들 것이라고…. 굳은 얼굴로 말끝을 흐리는 의사의 진단 결과가 당시 나로서는 실감이 나지 않았다. ‘이제 겨우 초등학생인 아들이 죽는다니 이게 무슨 말인가!’ 황당한 상황에 눈앞이 캄캄해지고 온몸에서 힘이 빠져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을 것만 같았다. 너무나 기가 막히다 보니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절망에서 함께 기도해 준 연세가족

뇌종양이 대체 어떤 병인지 알고자 병에 관한 여러 자료들을 찾아보았다. 그런데 뇌종양과 사투 중인 이들의 수기를 읽어 갈수록, 이 악성종양이 얼마나 무서운 병인지만 제대로 알게 되었고 희망적인 소식은 세상 어디서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벼랑 끝에 선 것처럼 절박하던 그 순간 머릿속에 떠오른 단어는 바로 ‘중보기도’였다. 우리 교회 중보기도실을 비롯해 내가 속한 교구와 여전도회 그리고 아들을 섬겨 주는 초등부 이삭학년에 이르기까지 기도 제목을 올려 중보기도 해 줄 것을 요청했다.


나 또한 ‘이대로 아들을 잃는 수 없다’는 생각에 주님께 어느 때보다 간절히 간구했다. “주님! 저는 아들 없으면 안 돼요. 제 아들을 살려 주세요. 주님! 나 어떻게 해야 해요. 주님! 잘못했습니다.” 두서없는 회한의 기도가 흐르는 눈물과 콧물에 뒤섞여 비통한 절규가 되어 버렸다. 아들 앞에서는 울 수 없어 아들이 없는 곳에서 한탄하며 가슴을 찢는 듯한 고통의 울부짖음과 애타는 간구를 주님께 올려 드렸다.


이후에도 중보기도실 총무께 실시간으로 아들의 상태를 알리며 중보기도를 요청했고, 곧 나를 알건 모르건 안타까운 사정을 전해 들은 수많은 성도들이 눈물로 중보기도 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들을 수 있었다. 우리 연세가족들이, 믿음의 지체들이 진실하게 기도하고 있다는 말을 듣자마자 절망으로 일그러져 있던 내 마음에 한 줄기 빛이 들어오는 듯했다.


그런데도 괴로워하는 아들을 대할 때면 매순간이 고통이었다. 아들의 신음소리를 옆에서 들으며 단 한 순간도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아들 역시 수많은 날을 고통에 시달린 탓에 도통 음식을 먹지 못했다. 잘 먹어야 힘든 치료 과정을 견뎌 낼 수 있기에 “잘 먹지 않으면 치료받지 못해. 그러다 네가 잘못되면 어쩌려고 그러느냐”라고 애타게 말하곤 했다. 그런데 아들은 뜻밖의 말을 내게 건네며 믿음의 고백을 했다.

“엄마! 죽어서 천국에 가면 더 좋은 것 아닌가요?”


부모 앞에서 철없는 말을 하는 아들이 야속하기도 했으나, 어려서부터 교회학교에서 들어온 진리의 복음이 아들의 심령에 있다는 것에 감사하기도 했다. 애써 미소를 지으며 “그렇지 천국 가면 너무 좋지 …” 말을 이어가지 못하면서 주르륵 눈물이 흘렀다. 이내 아들은 “엄마 울지 마요. 밥도 잘 먹고 치료도 잘 받을게요”라며 못난 엄마를 위로했다. 아들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입술을 꽉 깨물었다. 이후 아들은 내게 약속한 대로 정말 씩씩하게 밥도 잘 먹고 치료도 담대하게 임했다. 돌아보면 이 당시에도 능력의 주님이 이미 일하고 계셨다.


고통을 견딜 힘, 중보기도의 능력

하루는 암 병동 간호사가 내게 말을 건넸다. 며칠 전 우리 아들과 똑같은 증상으로 수술한 고등학생이 있었는데 걱정 근심에 사로잡힌 어머니가 울기만 하니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몰라 안타까웠다고…. 그런데 그 어머니와 달리 담담하게 치료받는 우리 모자를 보고 마치 아무 일 없는 것처럼 지내는 게 신기하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고 나도 모르게 간호사에게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게 됐다. “엄마인 나나 아들 모두 건강해지리라 믿고 있고, 설사 예수 믿는 우리가 잘못되더라도 영원히 행복한 천국에 가는 것이므로 울 필요가 없다”고! “또 우리 교회의 수많은 성도가 애절하게 중보기도 해 주고 있으므로 걱정하거나 무서워 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비신자인 간호사는 “종교가 그렇게 큰 힘이 되는지 몰랐다”라고만 했으나, 정말 신기하게도 처음 뇌종양 진단을 받을 당시와 달리 어느 순간 내 안에 괴로움이나 걱정보다 평안과 소망이 채워져 있는 것에 감사했다.


치료 과정에서 위급한 상황도 수차례 찾아왔으나 고통 그 이상으로 주님께서 기도할 힘을 주셨다. 새벽에 고열이 오르내리며 괴로워하는 아들을 보며, 또 매일같이 응급으로 치닫는 위기를 견디며 마음 졸였으나 괴로워하는 아들을 내려다보면서 밤새 눈물로 회개하고 주님께 매달렸다. 피를 말리고 애가 타들어가는 심정에 내 몸도 버티지 못해 갱년기 증상으로 관절 마디마디가 쑤시고 갑상샘까지 부어올랐으나 ‘항암치료를 받는 아들보다 더 아프겠는가’라는 생각으로, 또 연세가족들이 중보기도 해 주는 힘으로 꿋꿋이 이겨 나갈 수 있었다.


수술하기 힘든 부위라 항암치료를 위해 약물이 투여되었다. 약물 부작용으로 청력 손실, 신장 약화, 구토, 면역력 저하 등이 일어날 수 있다고 했다. 첫 항암치료 후 아들은 코에서 냄새가 난다며 아무것도 먹지 않으려 했지만 그래도 감자를 쪄서 가져다주면 잘 먹어 다행이었다. 항암치료를 받는 다른 환자들은 물조차 받아들이지 못해 토하느라 정신을 못 차린다는데 이 또한 중보기도의 힘이라 믿었다. 시력도 차차 회복되어 혼자서 화장실에 갈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몇 달에 걸친 항암치료를 마친 후 어느 날, 담당의가 기쁜 소식을 알렸다. “예후가 아주 좋습니다! 항암치료로 거의 완치할 수 있을 듯해요!” 나는 순간 “주님이 일하고 계시구나!”라며 앞으로 주님이 어떻게 역사하실지 가슴이 뛰었다. 통원치료를 해도 된다는 권유에 몇 달 만에 퇴원해서 집으로 돌아왔다. 오랜만에 집에 온 게 좋았는지 병원에서 잘 먹지 못하던 아들도 입맛을 되찾은 듯했다.


이후 병원을 오가며 4차 항암치료까지 마쳤고 뇌와 척추의 MRI를 촬영했다. 뇌종양 진단을 받은 지 6개월 만이었고, 검사 결과 놀랄 만한 일이 우리 모자를 기다리고 있다. 뇌 속에 있던 종양이 바싹 오그라들어 흔적만 남아 있고 척추 전이도 없이 아주 좋다는 결과였다. 할렐루야! 종양이 주변에 살아 있을지 모르니 방사선 치료를 2주 정도 더 진행한 후 치료를 종료할 것이며 향후 5년간 재발이 없으면 ‘완치’된 것이라는 의사의 말을 듣고 그제야 내가 살아 있음을 느꼈다.


죽을 병마에도 주님께서 우리 가족에게 믿음을 주시고 여기까지 인도해 주셨음에 감사 또 감사했다. 비록 시신경이 부어 있어 시력은 완벽하게 회복되지 않았지만 이 또한 주님이 많은 분들의 중보기도를 들으셨으니 응답해 주실 것이라고 믿는다.


사랑에 빚진 자로서 중보기도사역 동참

6개월간의 치료 기간이 6년처럼 느껴질 만큼 고달픈 나날들이었다. 나 혼자였다면 얼마 안 가 무너지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 안에 하나인 형제자매들이 한마음으로 진실하게 눈물로 중보기도를 해 주어 우리 가족이 살았다. 아들의 질병을 통해 그동안 습관적으로 종교생활 하던 나의 더러운 죄악들도 발견해 회개할 수 있었다.

나는 참으로 예수의 십자가 피의 은혜에 빚진 자, 중보기도자들의 사랑에 빚진 자이다. 아들이 건강을 되찾으면서 나 또한 영적생활 할 마음을 다잡았다. 새로운 마음으로 예배드리고 충성하고 있다. 다시 초심으로 돌아와 충성하니 감회가 새로웠다.


지난해 사랑하는 담임목사께서 너무나도 연약한 육신으로 우리나라 반대편에 있는 아프리카 토고로 성회를 인도하러 가신다는 결정을 들은 후 다른 연세가족들처럼 나도 너무나 걱정이 되어 ‘300명 기도용사’에 자원했다. 목사님과 동행할 수 없지만 중보기도로 동역하고자 했다. 제1기 기도용사로 임명받은 기간에 담임목사의 복음 사역을 놓고 전심으로 기도했고, 3개월 후 모집한 제2기 기도용사에도 자원해 마음 다해 중보기도 하고 있다. 같은 지역식구들을 내 차로 모시고 다니며 함께 기도용사로 쓰임받아 더욱 감사하다.


비온 뒤 땅이 굳는다고 했다. 시련의 큰 파도에 쓸려 죽을 뻔한 지난날이 나에게 복된 전환점이 되었다. 주님 나라 가기까지 다시는 형식적인 신앙생활을 하지 않으려고 날마다 나를 돌아보며 기도하고 있다. 벼랑 끝에서 나를 붙들어 생명의 길로 인도해 주신 우리 주님께 영광을 올려 드리며 아들이 건강을 되찾기까지 마음 쏟아 중보기도 해 주신 모든 분께 지면을 빌려 말로 다 하지 못할 큰 감사를 전한다. 이 모든 일을 하신 주님께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올려 드린다.          


/동해경 기자



<사진설명> 중보기도사역자들이 요한성전에 모여, 각 부서에서 기도해 줄 것을 요청한 제목들을 가지고 하나님께 간구하고 있다.


김종업(56여전도회)


위 글은 교회신문 <789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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