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전도이야기] 기도해야 열매 맺는다
조혜민(대학선교회 5부)

등록날짜 [ 2011-11-15 14:51:02 ]

서울에 있는 대학에 입학하면서 나 때문에 온 가족이 서울로 오게 됐고, 그 덕분에 흰돌산수양관을 통해 은혜 받은 연세중앙교회에 온 가족이 다니고 있다. 연세중앙교회에 출석해 많은 은혜를 받았지만, 특히 충격을 받은 것은 전도에 관한 것이다.

사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 전도를 많이 한 편이었다. 내가 만난 주님은 섬세하시고 인격적인 분이셨기에 이렇게 좋은 분을 나만 알고 있을 수 없어서 친구들에게 교회 가자고 권유를 많이 했다. 예수님에 대한 소개는 교회 목사님께서 해주시리라 생각했기에 그저 교회만 데리고 가면 되는 줄 알았다. 학년이 높아지면서 나름 영혼 구원의 열정은 점점 커졌다. 친한 친구들에게 교회 가자는 권유는 강요로 바뀌었고, 내 성화에 못 이긴 친구들은 “네가 그렇게 보채니까 딱 한 번만 가주지만, 다시는 교회에 가자고 하지 마라”며 교회에 따라왔다.



당시 교회에 한번이라도 친구를 데리고 오면 전도상을 주어서 거의 10년간 전도상을 받았다. 그리고 중학교 1학년 때는 한 달에 12명을 전도한 적도 있고, 2학년 때는 전도대상을 타고 자전거를 부상으로 받아 교회 친구들의 부러운 시선을 받은 적도 있다.

그러나 그렇게 전도한 수많은 친구 중에 1년 이상 교회에 다닌 친구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출석부에만 적힌 친구들의 이름은 내 마음을 씁쓸하게 했다. 모두 일회용 전도였지만, 나는 그것도 옳은 전도라고 생각했다. 그 친구들이 예수님을 안 믿는 이유는 이 세대의 타락 때문이며 세상문화 때문이라고 한탄했다.

그러다가 연세중앙교회에 와서 담임목사님의 설교 말씀을 듣고서야 내가 그렇게 전도를 많이 했지만 왜 열매를 맺지 못했는지 이유를 알았다. 설교 말씀을 통해서 드러난 나의 실체는 적나라했다. 전도한 친구를 위해서 눈물로 기도해 본 적도 없고, 스스로 열심을 하나님을 향한 사랑의 표현인 줄 알았던 영적 소경이 바로 나였다. 소경이 소경을 인도할 수 없는 것처럼 전도의 열매를 맺지 못한 것이 어쩌면 당연했다.

내가 전도한 친구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교회에 왔겠지만, 교회에 첫발을 디뎠을 때 그들의 영혼은 얼마나 설레었을까. 그러나 내가 중보기도 해주지 않아서 흉악의 결박을 풀지 못해 교회에 계속 오지 못하게 되었을 때 그들의 영혼은 또 얼마나 슬피 울었을까. 그런 영적인 실상을 깨닫고 나니 몹시 충격을 받았다. 내가 한 전도는 하나님의 방법이 아니었다는 것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하나님께 죄송했고, 내가 여태까지 뭐했나라는 허무함과 부끄러움이 가득했다.

그러니 한동안 전도를 못 하고 망설였다. 어떻게 해야 전도를 잘할 수 있을지 고민하며 힘들어하던 나에게 주님께서는 좋은 전도 대상자를 붙여주셨다. 바로 대학교 친구다.

내가 연세중앙교회에 다닌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기독교 동아리에서 만난 사이인데, 그 친구는 태어나서 교회를 한번도 가본 적이 없다고 했다. 한번도 교회에 다니지 않은 친구가 학과 친구 권유로 기독교 동아리에 들어온 것이 신기했다.

지방에서 올라온 이 친구가 기독교 동아리에 가입한 것을 보니, 교회 다닐 생각이 있는 아이겠구나 싶어서 내가 다니는 교회에 같이 가자고 권유했다. 학교에서 우리 교회까지 왕복 3~4시간이 걸리기에 친구는 교회에 다니게 되면 학교 근처에 있는 교회에 다닐 생각인 것 같았다. 사실 신앙생활 잘하는 친구들도 은혜로운 우리 교회를 사모하지만, 거리가 멀다는 이유로 학교 근처에 있는 교회에 다녔다. 그런데 교회 나가는 것조차 망설이는 이 친구가 연세중앙교회에 온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계속 우리 교회에 오라는 권유를 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이 친구가 주일이면 우리 교회에 예배드리러 오기 시작했다. 먼 거리를 오가는 것을 힘들어하면서도 예배시간에는 초롱초롱한 눈으로 목사님을 바라보는 친구를 보고 있자니 내가 더 긴장됐다. ‘친구가 목사님의 강력한 메시지를 잘 받아들여야 할 텐데. 오해하면 안 될 텐데’ 노심초사하며 마음속으로 친구에게 믿음이 생기기를 기도했다.

감사하게도 이 친구는 먼 거리에 있는 우리 교회에 나오기 위해 전날 밤새도록 과제를 한다고 했다. 피곤할 텐데도 예배시간에 조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그 친구를 향한 중보기도 속에는 어떤 외식이나 거창한 말이 없다. ‘주님 도와주세요. 주님 도와주세요’라는 말만 되풀이해도 몇 분이 훌쩍 지났고 눈물이 났다. 그래서 한동안 휴지 없이는 기도하지 못했다.

친구의 믿음은 날이 갈수록 깊어졌고 월요일에 중요한 과제 제출이 있을지라도 주일 저녁 기도모임까지 하고 갔다. 지난 시험기간에는 기도해야 한다고 나보다 먼저 예배당에 들어가 눈물로 기도하는 모습을 보니 희열과 경이로움이 밀려왔다.

이 친구를 보면서 한 영혼을 품고 기도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다. 전도는 일회적인 것이 아니다. 데리고 오는 것을 시작으로 천국 갈 때까지 그 영혼을 기도로 양육하고 책임지는 것이다. 이제는 어떤 친구도 놓치고 싶지 않다. 하나님의 자녀가 될 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중보기도 할 것이다.

사진 김태웅


조혜민(대학선교회 5부) 

위 글은 교회신문 <265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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