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전도이야기] 낙심치 않고 포기하지 말아야 할 영혼 구원
한순희(풍성한청년회 6부장)

등록날짜 [ 2013-08-13 09:15:39 ]

재미있게 전도하면 듣는 사람도 흥미 갖기 마련
중요한 점은 영혼 사랑의 중심이 변치 않는 것



소속해 있는 청년회원들이 말하기로는, 전도하는 내 모습이 그렇게 재미있단다.

“반가워요. 워데 가요?”

전남 순천에서 서울에 올라온 지도 10년이 지났는데, 전도하다 보면 고향 사투리가 튀어나온다. 구수한 사투리는 전도대상자 발길을 붙드는 데 매우 효과적이다. 생판 모르는 사람에게도 사투리로 서글서글하게 인사를 건네며 악수를 청한다. 그렇게 손을 잡은 채로 복음을 전하다 보면, 열에 여섯은 “바빠요” 하며 고개를 홱 돌리는 ‘쌀쌀이’, 셋은 이야기를 들어도 복음을 흘리는 ‘건성이’, 그중 하나가 교회에 와서 예수를 만난다. 확률로 따지면 10% 정도. 그 한 사람을 찾으려면 바삐 전도해야 한다. 하나님이 예비하신 한 사람을 찾는 재미가 쏠쏠하다.

하나님을 부끄러워한 게 아니예요
사실 난 소심하고 모난 성격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이만큼이라도 다듬어 주셔서 복음 전하는 일에 쓰임받고 있다.

1999년 6월에 공무원 시험 준비차 서울에 왔다. 고시원 총무로 일하며 공부했는데, 당시 청년회 부장이던 김재영 목사님을 길에서 만났다. 워낙 직선적인 성격이라 길거리에서 누가 전도하거나 전단을 나눠주면 “됐어요!” 하며 매몰차게 거부했다. 그런데 그날은 이상하게도 전도하는 말을 끝까지 들었다. 장장 40분간 듣고 있었으니 참으로 하나님 은혜였다.

두 달 후, 하계성회에 참석해 하나님을 만났다. 은혜를 받고 보니 죄인인 내 모습이 보였다. 슈퍼마켓에서 50원 도둑질한 일부터 떠오르는 대로 회개했다. 그렇게 고집과 죄를 회개하니 하나님께서 성령 충만하게 하시고 방언 은사를 주셨다.

그런데 예수가 나 대신 죽었다는 사실이 머리로는 믿어져도 마음에는 큰 돌 하나가 있는 듯 요동이 없었다. 답답한 마음에 청년회 부장에게 고민을 털어놨다. 김종선 사모님과 상담까지 했다. 사모님께서 “마음속에 의심하는 영이 있다. 예수 피 공로를 붙들어라!”고 말씀하시고 기도해 주셔서 “아멘”으로 화답했다. 그다음부터 주님이 채찍 맞으시고 피 흘리신 아픔이 심령에 절절히 전해졌다. 주님을 부르기만 해도 눈물이 흘렀다.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신앙생활에 돌입했다. 전도할 마음도 조금씩 생겼다. 은혜 받고 나니 “주일에 혼자 오는 버릇 고치라!”는 담임목사 설교 말씀이 양심을 찌르다 못해 괴롭기까지 했다. 허나 열망하는 마음과 달리 교회에 한 명 데려오기는 보통 일이 아니었다.

전도하기로 작정하고도 6개월간 일보 전진도 없었다. 매일 전도하러 나가긴 했지만 말 한마디도 못 하고 서 있다가 그냥 돌아왔다. 반년간 단 한 명에게 말도 못 붙였으니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그날도 아무 열매 없이 노량진 성전 고갯길을 터벅터벅 걷고 있는데 눈물이 흘렀다. “예수 이름이 부끄러워서 전도를 못 하느냐?” 담임목사님께서 영혼 살리라고 애절하게 질책하시는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주님께 하소연하듯 고백했다.

‘주님, 주님의 이름이 부끄럽지는 않은데요, 이상하게 말을 못 걸겠어요.’

눈물은 기도로, 부르짖는 기도로 바뀌었다. 하나님께서 일일이 간섭하시고 복음 전할 준비를 하게 하셨다. 전도하러 나가 보면 부르짖어 기도하게 된다는 말이 맞다.

순종했을 때 하나님께서 역사하셔
결국 6개월 만에 첫 열매가 생겼다. 여전히 한 시간 동안 말 한마디 못 붙이고 서 있었다. ‘에라 모르겠다. 전도를 마칠 시간이 다 됐으니까 내 앞에 누가 오든지 첫 사람을 무조건 잡고 말하자.’ 각오를 다졌다. 반년간 말 한마디 못 한 답답함 그리고 몇 달간 기도로 쌓인 영력을 어느 자매를 붙잡고 터뜨렸다.

“할렐루야, 자매님, 예수 믿으세요?”

생판 모르는 사람에게 무슨 짓을 한 건지! 다짜고짜 교회에 가자는 말을 꺼냈다. 그 자매도 순간 당황하더니 뜻밖에도 “어느 교회 다니세요?”라고 물었다. 놀랍게도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사람이었다. 최근에 전주에서 올라왔다는데, 자기 어머니께서 서울에 가면 꼭 연세중앙교회에 다니라고 하셨단다. ‘어떻게 이렇게 만나지?’ 감사가 절로 터져 나왔다. 내 인생 첫 전도 열매가 맺히는 순간이었다.

고시원 총무로 일할 때 하루는 고시원 문으로 낯익은 얼굴이 들어왔다. 순천에서 같이 학창시절을 보낸 동창이었다. 그리 친하지 않아 인사만 하고 지냈다. 하나님께서 전도하라는 감동을 계속 주셨지만 뭉그적거렸다. 하나님께서 감동하신 지 한 달이 넘어도 좀처럼 입이 떨어지지 않다가 친구가 집에 내려간다는 소식에 다급해졌다. 예수를 전할 기회가 없을까 봐 두려웠다. 밥 한번 먹자고 해서 만나서는 대뜸 교회에 가자고 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고 했던가. 알고 보니 친구는 신학대학교까지 다니다 사정이 있어서 두 해 정도 교회에 나가지 않고 있었다. 고시원 방에서 밤마다 술로 지새우며 언젠가는 하나님께 나아가야지, 나아가야지 하며 울었단다. 하나님이 감동하실 때는 다 이유가 있구나, 싶었다. 그 후 성회에 참석해 큰 은혜를 받고, 우리 교회에서 청년회 부장으로 쓰임받다가  지금은 타 교회에서 간사로 사역하고 있다. 우리 교회에 다닌 십여 년 동안, 하나님께서 감동하실 때 순종해서 얻은 전도 열매가 참으로 많았다.

지난 6월 중순에 전도해서 정착한 형제가 있다. 집이 김포공항이 있는 가양동 부근이다. 아직은 믿음보다는 교회 청년들과 친교하는 일이 재미있어 모이는 편이다. “우리, 통닭 시켜 먹으려고 하니까 빨리 와요!” 이렇게 불러서 통닭을 먹고 함께 금요예배를 드린다. 토요일에는 전도하러 갈 때 동참한다. 이제는 게임방에서 만난 친구들을 정리했다. 교회 친구들과만 재밌게 논다. 이렇게 전도는 처음엔 혼자 사람을 데려오지만, 교회에 정착하게 하는 일은 청년회원들과 같이 연합하여 하게 된다.

요즘 평일에는 개봉역 부근에 나가 외국인을 대상으로 전도한다. 말이 통하지 않아도 주님 은혜로 여러 명을 전도했다. 주일에도 일해야 하는 그들이지만 예배에 나오게 마음을 쏟는다. 사실 외국인을 만나면 왕방울만 한 눈만 봐도 무섭다. 하지만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면, 우리나라 사람들보다 이야기를 잘 들어 준다. 어찌 보면 우리나라 청년들보다 더 순수해서 감사하며 복음을 전한다.

전도는 재밌다. 열매가 없을지라도
요즘은 노량진에 나가서 전도하는 일이 마냥 즐겁다. 한 사람 한 사람 만나서 대화를 해 보면 모두 예수가 필요한 사람들이다. 만나는 이마다 예수를 전해야 하니 소심한 성격을 버리고 털털하고 당당한 성격으로 바뀌게 된다. 그러다 보니 노방전도가 관계전도보다 편안하게 느껴질 정도로 좋아졌다. 내가 복음 전하는 일에 재미를 느끼니까, 듣는 사람 편에서도 복음을 재미있게 듣는 모습을 본다.

올해는 청년회 부장 직분을 맡았다. 같은 부원 직분자들과 자주 전도하러 간다. 입도 못 떼는 이들이 눈에 띈다. 예전 내 모습을 보는 듯해 안쓰럽기도 하다. 하지만 10여 년간 전도하면서 얻은 교훈이 ‘열매가 없어도 낙심치 말라'다. 전도하려는 중심이 서 있고, 포기하지 않으면 영혼 구원의 역사는 반드시 일어나기 때문이다.

/정리 오정현 기자

위 글은 교회신문 <349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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