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전도이야기] 20년간 변함없이 쏟아부은 영혼 사랑의 마음
김경미 (풍성한청년회2부)

등록날짜 [ 2013-10-01 10:11:18 ]

병 고치려고 여수에서 상경… 예수를 만난 후 변치 않아
직장에서도 삶에서도 오직 영혼 살리려는 마음으로 가득


<사진설명> 김경미 자매는 하나님께 받은 사랑을 더 많은 사람에게 전하려고 오늘도 전도에 나선다.

청년회에서 부장을 지낸 지 10여 년이 흘렀다. 매해 직분을 맡아 청년들을 섬기다 보니 그들과 함께 울고 웃는 사이 어느덧 시간이 빠르게 흘렀다. 이제는 장년분들에게 “힘드시죠. 인생 참 빠릅니다. 예수 믿으세요” 하고 이야기할 수 있는 나이에 이르렀다. 전도대상자 나이에 맞춰 다가가지만, 하나님이 살아 계심이 생생해 누구에게나 애달프게 전도한다. 사람이 하는 일이라면 열정이 식기 십상이나, 주님께 받은 은혜가 전도할 자리로 나를 이끈다.

질병은 사라지고 믿음은 들어서고
20여 년 전, 여수 금오도에서 살던 중 자궁에 물혹이 생겨 정신을 잃기를 여러 차례. 병원에서는 자궁을 들어낼지도 모른다는 판정을 내렸다. 시집도 안 간 딸을 살리고자 어머니는 하나님께 부르짖었다. 어머니는 딸의 병을 고쳐 보고자 섬에서 나와 수원흰돌산수양관을 향했다. 친언니에게 흰돌산수양관에서 많은 병자가 나았다는 소리를 듣은 터라 해가 뉘엿뉘엿 지는 설날 저녁, 아픈 몸을 이끌고 수양관에 이르렀다.

사실 수양관에 오기 전에는 믿음이 없었다. 수술 날짜를 잡아두고 설날성회에 참석했기에, ‘내가 여기서 병 안 나으면 우리 집은 예수 그만 믿어야 한다. 당신이 살아 계시면 보여 달라’고 하나님께 따질 정도로 몸과 마음에 통증이 심했다. 당시만 해도 담임목사님이 새벽 2시까지 설교 말씀을 전하던 시기라, 끝날 줄 모르는 설교에 속은 부글부글 끓지, 몸은 아프지 성전 바닥에 두 다리를 쭉 뻗고 앉아 버렸다. 어머니가 병 나아야 한다며 붙들지 않았으면 견디지 못했을 터였다.

그런데 셋째 날부터 말씀이 들리기 시작했다. “네가 믿든 못 믿든 예수 안 믿으면 지옥 간다”라는 말씀이 왜 그렇게 두렵고 떨림으로 믿어졌는지. 울며불며 기도하고 회개하니 세상이 달라 보였다. 예수가 저절로 믿어졌다. “나는 하나님이고 너를 만들었고 너를 불렀다”는 하나님의 음성이 마음에 가득 들어차자, 예수로 말미암아 죄 사함받고 천국 간다는 사실이 기쁘고 감사했다. 불과 하루 전만 해도 불신과 짜증이 가득했으나 하나님 음성이 들리는 순간 마음에 믿음이 들어섰다.

이후 서울 노량진에 사는 친언니 집에서 언니와 함께 신앙생활을 했다. 매일 말씀 들으러 가고 철야하며 기도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신 사실이 강렬하게 믿어졌기에 수술 날짜를 잡아 놓은 병에 대해 아무 걱정이 안 생겼다. 이미 나았다는 믿음이 생기니 그렇게 괴롭히던 통증도 싹 사라졌다. 병원에 갈 생각조차 없어졌다. 몇 년 후 종합검진을 받았는데, 자궁에 아무 이상이 없다는 판정을 받았다.

전도할 군사로 훈련받다
성회를 마치고 언니 집으로 돌아오다가 영등포역에서 나오는 많은 사람을 보고 “하나님, 제가 저 사람들한테 전도하겠습니다” 하고 속으로 외쳤다.

당시에는 청년들이 교회 충성을 도맡아 했다. 수양관 증축 공사가 한창이라 토요일이면 청년회 전원이 모여 수양관에서 기도원 건축을 돕고, 성회 시기에는 식기 씻기나 청소를 서로 하려고 나섰다. 주중에는 전도를 생활화해 직장을 마치면 을지로입구역으로 매일 전도를 나갔다.

그리고 교회에 돌아와서는 매일 성경공부와 기도를 했다. 영적인 욕심이 넘쳐서 남들이 성경 말씀을 열 장씩 보면 나는 스무 장씩 보려고 했고, 교역자들처럼 살고 싶어서 그분들 기도하고 전도하는 삶을 따라 하려 노력했다. 군부대, 농촌선교, 독거노인, 구치소 등 성회가 열리는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다니며 예수를 전했다. 다른 청년들보다 늦게 예수를 만난 터라 더 열심을 냈다. 그때 경험한 일들이 지금도 전도에 밑거름이 된다.

노량진 성전 때에는 휴대전화가 없어서 전도 대상자에게 삐삐로 연락했다. 공중전화 앞에 직분자들이 전화하려고 줄 서서 기다리던 기억이 난다. 그래도 초청자를 교회에 데려오는 일에 지장은 없었다. 한번은 전도주일에 하나님께 세 명을 데려오겠다고 약속했다. 그런데 한 사람이 약속을 못 지켜 두 명만 성전에 앉혀 놓고 한 사람을 더 전도하러 나갔다. 하나님 앞에서 약속을 지키지 못한 일이 죄송했기 때문이다.

예배 시작을 몇 분 남겨두고 버스정류장에서 전도하는데, 어떤 자매를 만났다. 친구와 약속이 어긋나 집에 가려던 참이라고 하기에 그 자리에서 전도해 예배에 데려왔다. 하나님께서는 사모하는 마음에 응답하셔서 이처럼 예비한 사람을 만나게 하셨다. 그때 전도한 자매는 여전히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어 교회에서 볼 때마다 몹시 기쁘다. 전도하고 회원들 챙기느라 잠도 얼마 못 자고 먹는 것도 부실했지만, 그때만큼 행복한 적이 없었다.

전도하는 기쁨이 충만하다 보니, 회사에서 일할 때도 사람들과 전도할 발판을 마련한다. ‘하나님께서 보시는데 내가 믿는 자로서 말하고 행동해야지’라는 생각에 누구를 만나든 친목을 잘 다져 놨더니 전도할 대상자가 늘 생긴다.

식지 않는 구령의 열정
지난해 말, 스무 살 때부터 근 20년 가까이 알고 지낸 언니에게서 연락이 왔다. 언니는 스물세 살인 딸이 있다. 평소 조카처럼 여기던 그 아이가 심적으로 힘들다고 했다. 육 개월 동안 말 한마디 안 하는 딸을 보다 못한 언니는 내가 생각났단다. 언니는 예수를 안 믿으면서도 “네가 교회에 데리고 가서 이야기 좀 해 봐라”고 하며 나한테 조카를 맡겼다. 워낙 언니가 나한테 잘했지만, 나도 친언니처럼 대하며 신뢰를 쌓아 두니 이렇게 전도할 기회를 주시는구나 싶었다.

금요예배마다 조카를 데려와 예배하고 우리 집에서 재웠다. 말하기를 어려워하던 아이는 어느 순간 마음 문을 열어 떠듬떠듬 자기 이야기를 꺼냈다. 새벽 5시까지 계속 늘어놓는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그러다 보면 피곤이 몰려와 힘들지만 ‘한 영혼이 사는데 이쯤이야’ 하며 예수 심정으로 섬겼다.

어느덧 수개월이 지나고 조카에게서 문자가 왔다. “이모, 목사님 설교 말씀이 들리기 시작했어요”라고 말이다. “예배하기 힘들다, 목사님 무섭다”고 불평하던 조카는 올해 하계성회에서 은혜 받으며 많이 좋아졌다. 새가족청년회 직분자들 역시 잘 섬겨 줘서 감사하다. 요새는 이 아이가 믿지 않는 부모에게 전도도 한다. “이모, 어떻게 하면 엄마가 교회 나올까” 하고 묻는 조카가 얼마나 예쁜지 모른다.

전도는 상대방을 살리기도 하지만 내 영이 먼저 살아난다. 전도하려고 움직이지 않으면 구령의 열정이 생기지 않는다. 만나는 이마다 전도하려고 시도해야 믿지 않는 이들이 안타까워 부르짖어 기도할 수 있고, 복음 전할 주님 심정이 생긴다.

그래서 부원들에게 일단 전도하는 자리에 나오게 한다. 이들은 아직 “예수”라는 말 한마디 전하기 어렵지만 전도지를 쥐어 주면서 “예수 믿으세요” 말하라고 권한다. “오늘 다섯 장 다 주기 전에는 집에 못 가요.” 우스갯소리로 말하지만, 그 속에는 전도할 수 있게 끌어 주고픈 애타는 마음이 담겼다. 나도 믿음의 선배들이 보여 준 구령의 열정을 보며 담대함으로 전할 수 있었듯이 믿음의 후배들에게 구령의 열정을 전달해 주고 싶다.

/정리 오정현 기자

위 글은 교회신문 <355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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