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산책] 서로 다른 화폭에 담긴 그리스도의 탄생
‘기독 명화 감상’

등록날짜 [ 2017-11-01 08:42:47 ]

예수께서 태어나신 밤, 천사들은 들판에서 양 떼를 지키던 목자들에게 구주가 탄생하셨다는 기쁜 소식을 전한다. 그 소식을 들은 목자들은 구유에 누인 예수님을 찾아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한다.

많은 화가가 예수 탄생과 목자들의 경배 장면을 화폭에 담았다. 그중 엘 그레코와 카라바조의 작품을 살펴보자.


<사진설명> [엘 그레코와 카라바조가 그린 <목자들의 경배>] 엘 그레코가 현실을 초월한 천사들을 등장시켰다면 카라바조는 현실 그대로의 예수 탄생을 화폭에 담아 거룩함을 연출했다.

초월적 현실을 캔버스에 구현한 화가
엘 그레코(El Greco, 1541~1614)는 17세기 매너리즘 시대에 활동한 중세 스페인을 대표하는 3대 화가 중 한 명이다. 매너리즘 화가 대부분이 왜곡되고 과도한 장식성을 담아 기괴한 효과를 주었지만, 엘 그레코는 자유로운 붓놀림과 빛나는 색채를 사용해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독창적인 스토리를 화폭에 담아 사랑받았다. 스무 살에 이탈리아에 가서 베네치아파 화가인 티치아노와 틴토레토에게 풍부한 색채를 배웠고, 1577년에 스페인 톨레도로 이주한 후에는 신앙을 담은 소재를 선택해 독창적인 작품을 남겼다. 선명한 색과 그늘진 배경의 대조, 긴 얼굴 표현 같은 특징이 있다.

엘 그레코가 그린 <목자들의 경배>는 화면 한 폭에 천상과 지상을 모두 담았다. 그림을 삼등분하면 하단 2/3에는 지상의 목동들을 그렸고, 그 위 1/3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선포하는 천사들을 그렸다. 상단 왼쪽에 빨간 옷을 입은 천사가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눅2:14)라고 적힌 종이를 가지고 있다. 양을 치던 목자에게 나타난 천사가 예수의 탄생을 알리고 찬양한 가사다.

그림 속의 많은 사람은 각각 다른 포즈를 취하는데 그중 눈에 띄는 것은 그림 우측의 노란색 옷을 입은 목동과 바로 위에 같은 색 옷을 입은 천사다. 둘은 손동작, 발의 모습, 예수를 바라보는 황홀한 표정까지 닮았다. 또 목동의 머리 위로 하얀 구름이 피어나 잠시 전 들판에서 구세주의 탄생을 알린 천사를 떠올리고 있는 듯하다.

여기서 엘 그레코의 뛰어난 감각이 나타나는데 목동과 천사의 옷 색깔과 제스처, 목동 머리 위에 피어오르는 구름을 통해 상단의 천사와 하단의 목동을 자연스럽게 연결해 주고 있다. 화가는 이 독특한 방법을 사용해서 다른 시간에 일어난 두 장면을 자연스럽게 한 화폭에 담아 설득력을 갖게 한다.

사실만 그려 거룩함을 연출한 화가
카라바조(Michelangelo Merisi da Caravaggio, 1571~1610)는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바로크 미술의 거장이다. 빛과 그림자의 대비를 잘 표현했는데 이런 명암법은 마치 무대 조명을 받는 것처럼 평면인 화폭에 입체 효과를 주었다. 또 성경의 여러 사건을 화폭에 담았는데 인물을 무조건 고귀하고 이상적으로 표현하려는 당시 경향과 달리 매우 사실성 있게 표현했다. 카라바조는 평범한 인간의 일상 모습에서 거룩함을 표현하려 했다.

이는 카라바조가 그린 <목자들의 경배>에도 잘 나타나 있다. 예수 탄생을 그린 많은 그림 중에 가장 성서에 가깝다. 그림 측면에서 사선으로 들어오는 빛이 마리아와 갓 태어난 예수 그리스도를 비춘다. 등장인물의 몸짓이나 자태가 연극 무대에서 조명 받은 느낌을 주고 사물의 전체적인 윤곽과 선을 강조했다. 당나귀 머리보다 아래에 있는 마리아와 예수, 냄새날 듯 지저분한 말구유, 목자들의 초라한 옷차림, 천사가 들려준 소식을 확인하며 경이에 찬 눈으로 경배하는 목자의 모습. 이 모두는 낮고 천한 자에게 기쁨을 주려는 하나님의 뜻과 이 사건이 인간과 동떨어지지 않고 우리 주위에서 일어난 사건처럼 생생하게 전달된다.

당시 바로크 미술은 역동적인 구성과 빛이 화면에 흘러넘쳤다. 화가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그린다고 마음먹으면 금빛 구름과 천사 무리가 예수를 감싸고 경배하는 행렬을 등장시켰다. 그러나 카라바조의 그림에는 이런 사항이 아무것도 없다.

그림의 의도는 화면 중앙에 나타난다. 마리아와 아기 예수는 서로 뺨을 맞댄 모습이다. 고대 로마시대부터 뺨을 맞대는 것은 죽은 사람과 이별한다는 의미다. 마리아와 뺨을 맞댄 아기 예수의 모습은 훗날 다가올 수난의 어두운 예감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허름하게 그린 양치기 목자들은 순수한 믿음을 뜻한다. 그 표정에서 이들이 바치는 예배의 경건함을 극대화시켰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
예수의 탄생을 그린 두 그림을 보면 천사나 목자 모두 구세주의 탄생을 감격하고 경탄한다. 창세부터 누구의 탄생이 이렇게 감격스러울까? 인류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사건이기에 화가들도 하나님의 구속 사역에 감격하며 붓을 든 것은 아닐까.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요6:38~39).

예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이유는 우리에게 생명을 주기 위해서다. 하나님의 뜻은 인류 모두 구원해 천국에서 영원히 함께하는 것이다. 내 안에 그 생명이 있다면 부득불 예수를 전해야 한다. 2017년도 얼마 남지 않았다. 우리에게 생명 주시려고 이 땅에 오신 주님의 마음 가지고 복음 전하여 영혼을 살리자.

/박소영 기자





 

위 글은 교회신문 <549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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