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산책] 주님을 사랑한 목사의 고백과 베토벤 9번 교향곡의 만남
‘클래식 친해지기’

등록날짜 [ 2018-01-09 06:51:46 ]

지난 성탄절, 우리 교회 성도들은 지옥 갈 수밖에 없는 인류의 죄를 사해 주고자 고의로 십자가를 지고 죽으시려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 그 피의 은혜에 감사하여 전 교인 성탄 감사 찬양을 기쁨으로 올려 드렸다. 연합찬양대가 편곡하여 찬양한 ‘기뻐하며 경배하세’를 자세히 소개하고자 한다.


이 찬송 가사를 쓴 헨리 반 다이크 (Henry van Dyke, 1852~1933) 목사는 프린스턴 대학과 프린스턴 신학교를 졸업하고 뉴욕에서 목사로 십여 년간 시무하다가 프린스턴대학교로 돌아가 영문학과 교수로 오랫동안 재직했다. 후에 네덜란드와 룩셈부르크 대사를 지내기도 했던 그는 많은 훌륭한 저술을 남겼다. 이 찬송시는 그가 1907년 매사추세츠주에 있는 윌리엄스대학에 설교하러 가서 총장 관저에 머물 때 그 지방의 아름답고 광대한 산악을 바라보며 영감을 받아 지은 것이다. 윌리엄스대학의 총장에게 이 찬송시를 주면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이 찬송 가사는 베토벤의 9번 교향곡 마지막 악장에 나오는 ‘환희의 송가’(Ode to Joy)의 곡조에 맞춰 불러야 합니다.”

Ⅰ.
기뻐하며 경배하세 영광의 주 하나님
주 앞에서 우리 마음 피어나는 꽃같아
죄와 슬픔 사라지고 의심 구름 걷히니
변함 없는 기쁨의 주 밝은 빛을 주시네

Ⅱ.
땅과 하늘 만물들이 주의 솜씨 빛내고
별과 천사 노랫소리 끊임없이 드높아
물과 숲과 산과 골짝 들판이나 바다나
모든 만물 주의 사랑 기뻐 찬양하여라


Ⅲ.
우리 주는 사랑이요 빛과 진리이시니
삶이 기쁜 샘이 되어 바다처럼 넘치네
아버지의 사랑 안에 우리 모두 형제니
서로 서로 사랑하게 도와주시옵소서


Ⅳ.
새벽별의 노래 따라 힘찬 찬송 부르니
주의 사랑 줄이 되어 한 맘 되게 하시네
노래하며 행진하여 싸움에서 이기고
승전가를 높이 불러 주께 영광 돌리세


헨리 반 다이크 목사는 위대한 시인 실러(Schiller, 1759~1805)가 쓴 ‘환희의 송가’ 가사를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며, 그 시에서 표현된 기쁨보다 훨씬 더 생기 넘치고 영원한 크리스천의 기쁨을 원대하게 표현하고 싶었을 것이다. “기뻐하며 경배하세”로 시작되는 이 찬송시는 첫 절에서 하나님께 경배하는 성도들의 기쁜 마음을 피어나는 꽃으로 비유했다. 2절에서는 하나님이 지으신 자연과 인간이 함께 만들어 내는 찬양의 기쁨을, 3절에서는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따라 우리 모두 형제 되어 사랑하는 기쁨을 노래하고 있다. 마지막 절에서는 이 기쁨의 찬양으로 주님께 영광 돌리는 승리의 삶을 다짐하며 선포하고 있다. 한국어로 번역되는 과정에서 영어 원문의 시적 어감을 모두 옮길 수 없어 애석하긴 하다. 그래도 하나님이 창조하신 아름다운 자연 안에서 살아가는 성도들의 기쁨, 신뢰, 희망을 표현한 영어 찬송시의 걸작으로 평가된다.

여기서 찬송 가사와 곡조의 어우러짐에 관해 잠깐 생각해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요즘 우리가 사용하는 찬송가집에는 가사와 곡조가 짝을 이루어 하나의 곡으로 인쇄돼 있다. 따라서 찬송 가사와 곡조를 분리해서 생각하기 어렵다. 그러나 과거 영국, 유럽, 미국 등지에서 출판된 찬송가집(hymnal)은 찬송 가사들만 모은 것이었다. 찬송가 곡조는 따로 곡조집(tune book)이라는 이름으로 출판되었다. 찬송시는 가사 음절 수에 따라 분류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위의 찬송시 첫 줄 음절 수는 8음절과 7음절이 합해진 것이다. 그러므로 줄마다 음절 수는 8.7.8.7. D로 간단히 표기될 수가 있다.(숫자 뒤에 붙은D는 double의 첫 문자를 의미한다. 이는 앞 숫자 8.7.8.7.이 후에 똑같이 반복된다는 뜻이다. 즉, 이 찬송 가사의 전체 음절 수는 8.7.8.7.8.7.8.7이다.) 이런 찬송 가사의 음절 수는 보통 각 찬송의 오른쪽 상단에 적혀 있다. 따라서 다른 내용의 찬송시라도 음절 수만 같고 시의 강세가 같은 위치에 온다면 같은 곡조에 맞추어 부를 수 있다.

우리가 즐겨 부르는 찬송 “나 같은 죄인 살리신”이나 “주 예수 이름 높이어” 등 영국 찬송시들이 처음 세상에 발표될 때는 지금 우리가 아는 곡조가 아닌 다른 곡조에 맞추어 불렀다. 그 후 시간이 지나면서 지금의 곡조와 결합되었고, 나중의 곡조가 처음 곡조보다 더 사랑을 받게 되면서 점차 시와 곡조의 결합이 바뀌게 된 것이다. 찬송 가사에 실린 감정을 가장 적절하게 표현할 수 있는 곡조를 만날 때 그 찬송 가사가 더 빛나고 성도들의 사랑을 받게 되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다.

위의 찬송처럼 모두 아는 곡조를 미리 정해 놓고 가사를 만든 경우는 흔하지 않지만, 이 예야말로 찬송 가사와 곡조가 환상적으로 결합된 경우일 것이다. 베토벤이 말년에 완전히 청각을 잃고 그야말로 하나님의 영감을 받아 작곡했다고 할 수밖에 없는 불후의 대작 ‘합창’ 교향곡의 주요 곡조가 이렇게 전 세계에 울려 퍼져 주일마다 온 세상의 크리스천이 하나님께 올려 드리는 기쁨의 찬송(Hymn of Joy)이 될 것은 베토벤 자신도 감히 꿈꾸지 못했을 것이다.

/박은혜
연세중앙교회 오케스트라 바이올리니스트

 

위 글은 교회신문 <559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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