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려는 생각

등록날짜 [ 2009-05-26 14:25:58 ]

바울은 예수 믿는 자들을 핍박하고 죽이는 것을 유대교회 교리로나 그들의 율법 안에서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기에 스데반을 돌로 쳐 죽이는 일에 찬성하며 그 일을 진두지휘했다. 그런 그가 어떻게 그렇게 달라질 수 있었을까?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바울은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라는 예수의 음성을 듣게 되었고, 그 순간 바울의 잘못된 육신의 생각을 하나님께서 생명을 택하는 방향으로 바꾸었기 때문이다. 멸망할 지식이 영원히 영생의 지식으로 바뀐 것이다. 이처럼 생각이 바뀌면 행동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면 그 행동 속에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쁘신 뜻대로 살아갈 수 있다. 하나님이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뜻대로 살아가는 자에게 참된 소망이 있고 꿈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어떤 일이 있어도 육신의 생각으로 인하여 자신을 절망으로 끌고 가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생각과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끝까지 내 생각이 옳다고 주장하면서 생애를 거기에 내던진다는 것은 무모한 일이다. 바울처럼 예수의 소리가 들려올 때 생명을 향한 방향으로, 살려는 생각으로 나를 돌이켜야 한다. 하나님의 뜻을 벗어나거나, 말씀을 떠나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을 때일수록 더욱 나를 부르시는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일 수 있어야 한다.

위 글은 교회신문 <159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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