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론과훌] 전쟁 불사론

등록날짜 [ 2010-06-07 07:37:07 ]

정황상 전면전이 일어날 가능성은 없지만
혹시 모를 사태 위해 철저한 대비책 마련해야

천안함 사건을 계기로 전쟁 불사론이 고개를 들었다. 이는 6.2 지방선거와도 교묘히 맞아떨어지면서 선거의 주요 쟁점이었다. 공개석상에서는 누구도 노골적이고 직접적으로 전쟁을 하자고 외치지는 않았지만 각자 이해관계에 맞게 이를 이용하거나 역이용했고 이는 선거 결과에 반영됐다. 이제 선거가 끝났고 9일 나로호 발사, 11일부터 다음 달 12일까지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이 이어지니 전쟁 불사론은 지금 이상으로 영향력 있는 화두로 회자할 것 같지는 않다.

주변국은 한반도의 안정을 바란다
필자는 천안함 사건 조사 결과가 발표된 이후 내내 “정말 전쟁이 나는 것 아니냐?”라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함께 일하는 동료들로부터 각계각층의 여러 사람까지 같은 질문을 여러 번 반복해서 받았다. 그때마다 우리 국민의 잠재의식 속에 짙게 깔린 전쟁에 대한 공포를 체감할 수 있었다. 내가 “아니오”라고 대답했을 때 질문자의 얼굴에 순간적으로 스쳐가는 안도의 빛을 보면서 더 그렇게 느꼈다.

전후 세대이기는 하지만 나 역시 누구보다도 전쟁에 대한 공포를 무의식 속에 안고 살아왔다고 할 수 있다. 어린 시절에 받은 반공교육이 그렇거니와 군 생활 내내 공동경비구역(JSA)에서 북한 인민군을 몇 미터 앞에 두고 수 없는 수색과 매복, 정찰을 반복하면서 돌발적인 교전 가능성에 대한 두려움을 항상 안고 살았다. 군대 시절 실제 비상이 한 번 걸린 적이 있었는데 동료들 얼굴에서 핏기가 가시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처한 현실의 위중함을 실감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한반도 전쟁 가능성은 우리가 가지는 전쟁 공포감에 비해 높다고 할 수 없다. 북한이 남한을 상대로 전술적인 차원에서 저강도 분쟁을 일으킬 가능성은 상존하고 있지만 전면전을 벌일 능력과 의지가 있는지는 의문이다. 전면전 도발은 북한 정권의 전멸을 의미하고 북한은 세계지도에서 사라질 것이다. 남한이 북한을 상대로 전면전을 벌일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이미 끝난 체제 경쟁 게임에서 모든 것을 건 전면전을 누가 생각하겠는가?

주변국 역시 마찬가지다. 중국은 한반도의 안정을 누구보다 바라고 있다. 남북한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전략적 이익을 위해서이다. 동북아의 불안은 신장위구르 자치구와 티베트, 몽골 등의 분리 독립을 자극하는 촉매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역시 한반도 안정을 바란다. 중동 지역에 사활을 건 미국에게 동북아의 불안은 또 하나의 무거운 짐이기 때문이다. 또 중국과 미국은 한반도에서 충돌하기를 조금도 원치 않는다.

전쟁은 누구도 원치 않는다
6.25 전쟁이 일어났던 것은 미국이 애치슨 라인에서 한반도를 제외했고 김일성이 이를 가지고 스탈린을 설득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김일성은 전쟁을 일으키기 수년 전부터 스탈린에 전쟁 물자 지원을 요청했지만 스탈린은 미국과의 전쟁이 제3차 세계대전으로 비화할 것을 두려워해 거절했다.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중국 후진타오 주석이나 원자바오 총리에게 대 남한 전쟁을 말이라도 꺼내 보는 상황이 가능할까?

그럼 북한이 핵을 배경으로 단독으로 전쟁을 불사한다는 시나리오는 어떨까? 6.25전쟁 당시 압도적인 우세에도 스탈린의 지원약속을 받은 후에야 전쟁을 감행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국력이 월등한 남한과 미국을 상대로 혼자 전쟁을 벌인다는 게 가능할까?

결론적으로 전쟁 발발 가능성은 매우 적다. 누구도 전쟁을 원치 않는 상황이다. 하지만 가장 위험한 것은 승리에의 유혹이다. 그것도 단기전 승리의 유혹이다.

1, 2차 세계대전이 그랬고, 구소련의 멸망을 재촉했던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이 그랬고, 미국을 수렁에 빠뜨린 베트남전과 이라크전이 그랬다. 모두 상대를 단기간에 이길 수 있으며 전쟁은 몇 달 안에 끝날 것이라고 기대하며 전쟁에 돌입했다. 하지만 모두 오판(誤判)이었다. 전쟁 분위기에 휩쓸리면서 단계적인 확대 국면에 빠지자 의지와 무관하게 모두 전쟁으로 휘말려 들어갔다. 몇 달은커녕 몇 년 혹은 십 년 넘게 지속된 전쟁에서 수만 명에서 수천만 명이 숨졌다. 승자건 패자건 모두 극심한 국력의 쇠퇴와 국가의 멸망을 겪어야 했다. 현대사만 보더라도 초강대국조차 약소국을 상대로 함부로 전쟁을 입에 올리고 감행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위 글은 교회신문 <195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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