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론과 훌] 이미지 시대와 미혹

등록날짜 [ 2010-08-17 07:37:26 ]

사회가 어려울수록 겉만 중시하는 경향 많아
정의 가장한 ‘위선’에 속지 않을 믿음 있어야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란 말이 있다. 남을 통해 소문을 듣기보다 뭐든지 내가 직접 눈으로 보는 게 믿을 만하다는 뜻이다. 타인에 대한 신뢰와 상관없이 우리는 뭐든지 내가 직접보고 경험한 것은 참이고, 남이 전해준 것은 불확실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사물을 관찰하거나 인지할 때 우리 두뇌는 여러 한계를 보인다는 것이 많은 실험과 연구로 증명되고 있다.

사막에서 흔히 관찰되는 신기루 현상이나 어떤 사태를 전혀 엉뚱하게 판단하는 착각이 종종 발생하지만 자아의 통합적 기능 때문에 우리는 자신이 본 것이 확실하다고 믿는다. 사람을 대할 때도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그 사람에 대한 인상을 순식간에 형성하고 이것에 기초해 그 사람의 됨됨이를 평가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나중에 지속적인 관계를 갖다 보면 자신의 인상이 초두효과에 의해 잘못 형성되었음을 깨닫기도 한다. 이미지는 우리를 자주 속이지만 그 영향력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이런 경향은 매스미디어가 발달하고 시각 매체의 중요성이 커지는 현대사회에서 더 가속화된다. TV, 영화, 사진 등의 중요성이 커지고 인터넷을 통해 보기 좋게 가공된 정보가 쉼 없이 생산되면서 현대인은 이미지의 영향에 점점 더 노출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이미지를 통해 대중을 지배하고 조작하면서 특정한 여론을 만들려는 움직임도 생겨난다.

현대사회에서 이미지 조작을 가장 많이 활용하고 이미지에 의존하는 집단이 연예인과 정치인일 것이다. 두 집단은 언제나 불특정한 다수 대중을 상대하고, 대중의 지지와 사랑을 받아야 자신의 존재가 인정되는 운명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마케팅과 기획 산업이 발달하면서 이제 체계적이고 전문적으로 이미지 관리를 해주는 대행업체들도 많이 생기고 있다. 모든 것이 상품화되는 자본주의사회에서 자신의 이미지를 가꾸는 것이 그 자체로 죄악은 아니지만, 문제는 이미지가 종종 현실을 호도하거나 진실에 다가가지 못하게 만들면서 대중의 우민화를 더 부채질한다는 것이다.

한 방송국에서 심리실험을 한 적이 있다. 어떤 여자아이의 여러 사진을 두 집단의 대학생에게 보여주고 그 아이에 대해 평가하게 해보았다. 한 그룹에게 제시된 사진은 여자아이가 부잣집 정원, 호텔 레스토랑, 비싼 놀이 공원 등에서 노는 장면을 찍은 것이다. 또 다른 그룹에게 제시된 사진은 똑같은 여자아이가 지저분한 뒷골목, 허름한 식당 등 좋지 않은 환경에서 노는 모습을 보여준다. 여자아이는 똑같은 옷을 입고 거의 똑같은 표정을 지었지만 그 배경에 무엇이 찍혔느냐에 따라 두 그룹은 전혀 상반된 평가를 내놓았다. 첫째 그룹은 아이가 쾌활하고, 사교적이며, 똑똑해 보인다는 식으로 긍정적 평가를 주로 내놓았다. 반대로 둘째 그룹은 아이가 우울하고, 소극적이며, 지적인 능력도 높지 못할 것이라고 대답했다. 물론 대학생들은 나름대로 아이의 인상을 판단했겠지만 여기서 결정적 중요성을 발휘한 것은 사진의 배경이다. 상식적으로 판단할 때 사진의 배경과 그 사람의 실제 모습은 전혀 상관성이 없지만 대학생들은 이것을 아이의 주거환경으로 보면서 성격과 능력까지 단정한 것이다. 이 실험은 이미지가 사람의 판단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잘 보여준다.

정치인 중 이미지의 중요성에 주목하고 그것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대표적인 인물이 존 F. 케네디였다. 그는 자신을 영화배우처럼 보이게 하려고 노력했으며, 몸이 약하고 지병도 많았지만 대중 앞에 설 때는 언제나 활기찬 연설과 웃는 모습과 자신감을 보이고 뉴프론티어의 젊은 기수로서 자신을 부각시켰다. 대통령 전용기를 세련되게 디자인하고 ‘에어포스원’이라는 코드네임을 처음 사용한 것도 케네디였고, 수없이 고치고 다듬은 그의 연설문은 명문으로 여전히 회자하고 있다. 케네디는 자유민주주의의 수호자이자 무기력이 지배했던 미국을 깨우고 도전과 열정으로 미국을 일으킨 대통령의 표본처럼 미국인들 기억에 남아 있다. 하지만 가정해서 케네디 대통령이 그렇게 비극적으로 암살되지 않았더라면 미국인들이 그처럼 케네디를 영웅처럼 생각하고 신화화하면서 좋아했을지는 의문이다. 정치학자들의 평가를 따르면 실제 케네디의 정치적 업적은 많지 않다. 오늘날도 많은 정치인이나 연예인은 가공된 자신의 이미지를 대중에게 내세우고 때로는 실제 모습과 매우 다르게 포장하지만 대중들은 위의 대학생들처럼 이미지에 쉽게 속아 넘어간다.

우리는 이미지가 얼마나 실제 현실을 왜곡하는지 알아야 하고 외양을 넘어 진실을 보려고 해야 한다. 예수 당시에도 많은 바리새인이 자신의 업적을 과장하고 거룩한 사람처럼 행세했지만 예수는 이들을 회칠한 무덤에 비유하면서 통렬하게 비판했다. 또 성경은 사탄도 거룩한 천사처럼 자신을 보인다고 말하면서 겉으로 드러난 이미지에 현혹되지 말 것을 말한다. 갈수록 미혹과 속임수가 판을 친다. 사회가 어려울수록 정의와 선을 가장한 위선자들이 득세하며 종교적으로 혹세무민하는 사악한 집단도 늘어난다. 미혹되지 않으려면 나 자신에게 속을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외양적 이미지가 아닌 본질을 보기 위해 더욱 깨어 있어야 한다. 미혹되지 않는 것은 진리를 찾는 신앙인에게 더욱 필요하다.

위 글은 교회신문 <204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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