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론과 훌] 이산가족 상봉 연기한 북한의 속내

등록날짜 [ 2013-10-01 10:09:21 ]

정치적, 경제적으로 실리가 없다고 판단한 듯
이산의 아픔에 더 깊은 상처만을 내고 말아


지난 9월 21일(토), 북한은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성명을 통해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불과 나흘 앞두고 돌연 ‘무기’ 연기한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꿈에도 그리던 혈육을 60여 년 만에 만난다는 기대에 부풀어 밤잠을 설쳤을 이산가족들은 망연자실했다. 개성공단 재가동으로 모처럼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기대감이 상승하는 분위기에도 찬물을 끼얹었다.

국내외에서 쏟아질 비난을 예상했을 법한데도 이를 강행한 북한의 돌발행동 배경을 두고 설이 분분했다. 북한이 밝힌 이유는 두 가지 정도다. 첫째는 현재 남북관계 개선은 자신들의 선의로 주도한 일인데 박근혜 정부가 자신들의 성과라고 주장하며 대결책동을 벌인다는 것이었다. 둘째는 이석기 사건을 언급하며 남한이 진보 민주인사들을 ‘용공’ ‘종북’으로 몰아 ‘마녀 사냥극’을 벌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는 납득하기 어려운 해명이다.

북한은 지난해 말부터 핵과 미사일 실험을 강행하며 군사적 도발 국면을 끌어왔는데 이에 대해서는 한마디 해명이나 유감 표명조차도 없었다. 또 이석기 사건에 대해서는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준비하는 과정에서는 전혀 언급이 없었다. 더구나 이산가족 상봉이나 한국 내 공안사건을 대남 압박 수단으로 사용한 것은 전례 없는 일이다. 북한이 내세운 이유가 본심이라고 보기 어려운 점이 여기에 있다.

북한의 본심은 이산가족이 아니라 금강산 관광이었다. 북한은 애초 지난 8월 이산가족상봉 실무접촉을 수용하며 금강산 관광 재개 회담을 함께 제안했다. 이산가족 상봉을 미끼로 금강산 관광 재개를 노렸지만, 한국 정부가 두 사안을 분리해 대응하기로 하자 북한이 성과를 내기 어렵다고 판단한 듯하다. 한국 정부가 관광 재개 회담 날짜도 상봉 직후인 10월 2일로 제안하자 북한이 체제에 부담을 주기만 하는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강행할 명분이나 실리를 찾지 못했음이 분명하다.

이 때문에 북한은 처음부터 이산가족 상봉에는 적극적인 의지를 내비치지 않았다. 숙소 문제가 이를 말해 준다. 북한이 상봉자 숙소로 제안한 해금강호텔과 현대생활관은 적합하지 않다. 해금강호텔은 5년간 투숙객을 받은 적이 없고 현대생활관은 이산가족 상봉 행사에 사용된 적이 없다. 한국 정부가 제안한 금강산호텔과 외금강호텔은 예약돼 있다며 거부했다. 남북한 상봉자들이 80~90대에 이르는 고령인데 이들의 건강 문제를 북한이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는 방증이다.

북한은 나아가 이산가족을 볼모로 6자 회담 재개까지 압박했다. 지난 9월 18일(수) 중국에서 열린 ‘6자 회담 당사국 간 1.5트랙(반관반민)대화’에 김계관.리용호 외무성 부상과 최선희 외무성 부국장 등 북핵 라인을 총출동시키며 6자 회담 재개에 적극적 의지를 내보였지만 미국과 한국 정부는 ‘북한이 비핵화와 관련해 성의 있는 사전조치를 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해 성과가 없었다.

결국 북한에게 이산가족 상봉은 ‘돈이 되는’ 금강산 관광 재개나 6자 회담을 위해 협상력을 극대화하려는 수단에 불과했다. 이산의 아픔을 진정으로 달래 주려 했다면 조건 없이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치렀어야 했다. 상봉 행사 무산의 모든 책임을 한국 정부에 떠넘기면서 북한은 또 한 번 ‘최고 존엄’을 언급했다. 조선 중앙통신은 한국 언론이 일본 아사히신문을 인용해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 부인 이설주의 추문 관련 의혹을 보도한 것을 문제 삼았다. “우리의 최고 존엄을 비방 중상”했다며 “값비싼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위협하며 불만을 쏟아 놓았다.

북한은 돈 되는 분야에서만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정치적.경제적으로 실리가 없다고 판단한 인도주의적 행사는 갖가지 이유를 들어 외면해 아물지 않은 이산의 아픔에 또 깊은 상처를 내고 말았다.


/이웅수 집사
KBS 보도국 국제부 팀장
신문발행국 논설위원

위 글은 교회신문 <355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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