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론과 훌]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등록날짜 [ 2015-12-10 09:58:27 ]

개인의 자유와 권리 요구만 커지고 갈등은 심화

증오와 편 가르기에서 벗어날 지혜가 꼭 필요해

 

 

프랑스의 대표적인 계몽주의 사상가이자 작가인 볼테르는 ‘관용’의 철학자로 유명하다. 문학적 재능이 탁월해 일찍부터 시, 우화, 소설 등 여러 작품을 발표하고 역사가로도 이름을 날렸지만, 프랑스 사람들의 가슴에는 관용을 대표하는 사상가로 기억되고 있다. 볼테르는 당시 유럽에서 무소불위의 절대 권력을 휘두르던 가톨릭을 비판하고 가톨릭에 의해 가혹하게 탄압받던 기독교 신도를 적극 변호하며 함께 싸웠다. 볼테르는 관용이야말로 차이와 불화를 극복하고 인류 문명의 발달을 일으킬 대표적 사상이라 생각했다. 오늘날 프랑스가 ‘톨레랑스’, 즉 관용의 나라로 알려진 데는 볼테르의 공이 크다.

 

한국사회는 1970년대 경제성장, 1980년대 민주화 투쟁, 1990년대 공산주의 몰락과 세계화로 요약되는 큰 격변 속에서 꾸준히 성장을 거듭해 왔다. 80년대 이전에는 전후(戰後) 가장 짧은 시기에 경제성장을 고도로 이룬 나라로, 그 후에는 민주화와 산업화를 같이 정착시킨 나라로 귀감이 되었다. 비록 1997년 외환외기라는 시련을 경험했지만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명실상부 선진국에 진입할 정도로 성숙해졌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양극화가 점점 심해지고 개인의 자유와 권리에 대한 요구가 커지지만 통치는 권위적이 되어 곳곳에서 갈등과 불협화음이 커지고 있다.

 

정책을 둘러싼 정치권의 대립, 세대 갈등과 계층 갈등, 기업과 경제 분야에서 보이는 다양한 갑질과 착취뿐 아니라 개인 간에도 보복 운전 등 폭력이 빈번해지고 있다. 이념 갈등은 오히려 80년대보다 더 치열해지고 있으며,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여러 개인과 단체가 서로 잡아먹을 듯이 비난하고 있다. 집회 현장에서 반대되는 주장을 가진 사람들이 충돌하는 장면은 익숙한 풍경이 되었다. 언제부턴가 사회가 삭막해지고 증오와 편 가르기가 횡행하고 있다.

 

사회 갈등은 어느 하나의 요인으로 설명하기 어렵지만 이렇게 갈등이 만성화한 원인은 아무래도 ‘관용’의 부족에 있다. ‘관용’이란 상대에게 굴복하거나 조건 없이 체념하는 것이 아니라 차이를 인정하고 타자를 배려하는 정신이다. 상대에 대한 열린 마음과 소통하려는 자세에 관용이 자리를 잡는다.

 

“나는 당신의 의견에 반대하지만 당신의 말할 권리를 위해 싸우겠다.”

 

볼테르의 격언으로 알려진 이 말은 진위 시비는 있지만 관용 정신을 잘 보여준다. 상대가 나와 똑같이 주장하거나 생각한다면 관용이 필요 없다. 관용은 오히려 차이와 갈등이 있을 때 필요한 덕목이며 부조화처럼 보이는 것을 공존하게 하는 선(善)이다. 관용이 많은 사회는 번창하지만 미워하고 싸우는 나라는 망하기 마련이다.

 

유럽인은 오랜 세월 서로 싸우고 대립하느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을 죽이는 전쟁을 계속해 왔다. 볼테르나 존 로크 같은 사상가들이 관용을 부르짖은 것은, 그 같은 살육의 역사를 반성하고 이성적 사고를 바탕으로 한 양심에 대한 최후의 믿음에서 비롯되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심화되는 갈등 양상을 보면 상대 주장은 억압하고, 내 생각만 옳다 믿으며, 폭력을 써서라도 그것을 관철하려는 욕심에서 비롯한다. 하나님의 나라가 아닌 인간 세상에서 갈등과 차이는 어느 정도 불가피하다. 중요한 점은 갈등이 아니라 그것을 풀어 나가려는 관용의 지혜를 갖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오늘날 겪는 여러 어려움을 극복하고 더욱 도약하려면 이제 관용을 정착시켜야 한다. 관용은 말세에 필요한 그리스도인의 덕목이기도 하다.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빌4:5).

김석 집사

철학박사(프랑스 현대철학)

現 건국대 자율전공학부 교수

신문발행국 논설부장
 

위 글은 교회신문 <462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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