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론과 훌] ‘자유’ 잊어 가는 자유대한민국

등록날짜 [ 2018-03-30 15:25:51 ]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교수를 작년에 정년퇴임한 이영훈 교수가 어느 날 강의실에서 학생들에게 물었다. “여러분은 자유인인가?” 손을 든 학생이 절반이었다. 한 번 더 물었다. 망설이다 손을 든 학생까지 합하여 3분의 2였다. 자유인이 아닌 학생이 많아 이 교수는 당황했다고 한다.

며칠 뒤 다른 강의실에서 학생들에게 종이 한 장씩 나눠 주고 ‘한국인은 언제부터 자유인인가’에 대해 쓰게 했다. 대략 50명이었다. 3분 2의 학생이 민주화 시대가 열린 1987년부터라고 하였다. 불과 2~3명이 1948년 대한민국 건국을 꼽았다.

오늘날 한국 젊은이들은 자유인으로서 정체성이 뚜렷하지 않다. 젊은이들에게 1987년까지는 장기집권, 군사정권, 부정부패, 대외종속, 민족분단이 판을 치는 음울한 시대로 기억한다.

극소수 계층만이 자유를 특권으로 누렸다고 우리의 현대사를 알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당신은 자유인인가?”라고 물으니 절반의 젊은이가 난처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다. “자유는 무슨 자유”, “나는 흙수저야”, “헬, 조선” 하면서 냉소를 짓기도 한다.

우리나라 건국헌법은 국민을 자유인으로 선언했다. 굴곡진 길이 있었지만, 우리나라 국민은 자유인으로서 삶을 영위했다. 올해로 대한민국 건국 70주년을 맞는다. 그런데도 젊은이들이 자유인으로서의 정체성이 소극적이거나 부정적인 이유는 무엇인가.

위와 같은 의문에서 이영훈 교수는 초·중·고등학교 사회과와 도덕과 교과서를 모두 검토해 보았다고 한다. 의문은 쉽게 풀렸다. 그런 교과서로 배우면 그런 사고를 갖게 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얻었다.

이영훈 교수는 “초등학교 교과서들에서 우리 조상이 소년기에 읽은 『동몽선습(童蒙先習)』이나 『소학(小學)』의 현대판이라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세계사적으로 ‘근대’라고 부르는 문명의 기초 요소가 없기 때문이다. ‘사적 자치의 주체’로서 개인, 개인의 자유와 독립, 그 기초 조건으로서 신체의 자유와 재산권, 자유인의 정치적 통합으로서 민주공화국, 자유인의 경제체제로서 시장경제, 자유인의 국제질서로서 자유통상 등은 교과서 어디에도 그림자조차 비치지 않았다고 한다. 교과서 어디에도 ‘대한민국’이란 네 글자를 찾을 수 없다. 아이들에게 이 나라는 이름이 없다. 이 나라가 자유인의 공화국인지, 나라의 기초 이념이 무엇인지, 언제 어떻게 세워졌는지 최소한의 설명도 없다. 그저 애국가, 태극기, 무궁화, 이순신으로 상징되는 민족 문화, 전통, 위인으로만 감각되고 있을 뿐이라고 했다.

중·고등학교 교과서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18~20세기 세계 지성사의 주류를 이끈 자유 이념의 역사, 그 속에서 우리 한국인의 역사는 어떠한 길을 더듬었는지에 관한 성찰은 완벽하게 없었다고 한다.

이영훈 교수는 ‘자유’를 완벽하게 없앤 공교육 12년 과정은 재앙적 교육이라고 했다. 자유의 기초 조건은 노동이고, 모든 노동은 고귀하고, 직업에는 귀천이 없고, 법적으로 성년이 되면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 독립해야 한다고 가르치지 않으니, 대다수 젊은이가 갈 길을 찾지 못해 헤맬 수밖에 없다고 한다.

1948년 8월 15일 오전 11시 대한민국 독립을 세계에 선포하는 식전이 중앙청 광장에서 열렸다. 초대 대통령 이승만은 다음과 같이 연설했다.

“민권과 개인 자유를 보호할 것입니다. 민주정체(民主政體)의 요소는 개인의 근본적 자유를 보호하는 것입니다. 국민이나 정부는 항상 주의해서 개인의 언론과 집회와 종교와 사상 등 자유를 극력 보호해야 될 것입니다. (중략) 우리는 개인 자유활동과 자유판단권을 위해서 쉬지 않고 싸워 온 것입니다.”

‘개인의 근본적 자유’가 무엇인지 알아들은 국민이 당시 얼마나 되었을까. 조선 왕조가 망한 지 겨우 38년이었다. 그때까지 이 땅에 ‘개인’은 없었다. 조선은 정통 성리학적 세계관 속에서 상하 신분이 엄격한 사회였다.

이영훈 교수의 저서 『세종은 과연 성군인가』가 지난 5일 출간되었다. “조선의 양반들은 세종을 ‘해동의 요순’이라고 찬양하였다. 세종을 성군으로 받드는 현상은 21세기 오늘날에도 여전하다. 나는 세종이 노비제를 확립했고, 기생제를 창출했고, 사대주의 국가체제를 정비했음을 들어 그에 대해 의문을 표한다.”

학교에서 배우지 못한 사실들이 나열됐다. 오늘날 세종을 성군으로 받드는 가장 큰 이유는 ‘훈민정음’ 창제에 있다. 어리석은 백성에게 쉽고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문자가 없음을 안타깝게 여긴 세종이 세계적으로 뛰어난 표음문자인 훈민정음을 만들었다. 한글 창제는 중국과 구분되는 조선의 정체성, 곧 민족주의의 발로였다. 이것이 정설이다. 과연 그러한가.

2015년 정광 교수가 『한글의 발명』을 출간했다. 이영훈 교수도 이 책을 읽고 “역시 그러했군” 하면서 무릎을 쳤다고 했다. 이런 책들을 통해 우리가 얼마나 큰 오류와 허구 속에 살고 있는지 깨닫게 된다. 대한민국 국민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이때 떠오른 인물이 건국 대통령 이승만이다.

‘개인의 자유’를 외치던 이승만은 ‘동양 최초의 기독교 국가 건설’을 꿈꾸었다. 그 꿈은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으로 현실이 됐다. 이승만의 건국 이념에는 미국 독립선언문에 포함된 내용이 많다. 미국 독립선언문은 영국 청교도 정신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청교도 정신은 루터의 신앙개혁에서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앙개혁은 성경 속에서 그 답을 찾은 결과였다.



/정한영 안수집사
신문발행국



 

위 글은 교회신문 <569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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