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론과 훌] 벼랑 끝 몰린 北, 진정한 비핵화 의지 있나

등록날짜 [ 2018-04-20 17:48:44 ]

국제사회 ‘무조건적’ ‘즉각적’ 폐기 원하지만
북한은 ‘단계적’ ‘장기적’ 조치 주장
나라마다 비핵화 방식과 입장 달라
회담 실패 경우도 미리 대비해야


북한이 직접 미 백악관에 비핵화 협상 의지를 확인한 것으로 미 언론들이 전했다. 청와대 정의용 안보실장이 김정은의 비핵화 논의 의사를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달한 지 한 달 만이다. 지난해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ICBM 개발에 몰두하며 비핵화가 절대 불가하다는 입장에 선 것을 비춰보면 진전이라고 할 수 있지만 비핵화 논의가 곧 회담 성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비핵화에 대한 미국과 북한의 기본 생각이 다르고, 비핵화 방식과 절차에 대한 입장도 다르기 때문이다. 또 비핵화를 논의하겠다는 김정은의 의사 표시가 비핵화를 실제로 행동에 옮기겠다는 의미도 아니다.

다음 달 혹은 6월 초로 예정된 미·북 정상회담이 사상 처음이라는 상징성 때문에 지금 북한 비핵화 논의도 과거에 없던 새로운 시도인 듯한 착시현상이 일부 있는 듯하다. 하지만 새로운 것은 없다. 지난달 비공개 북·중 정상회담에서 김정은이 비핵화에 대해 밝힌 “계단성, 동보적 조치”도 과거의 재판(再版)이다. 김정은이 말한 계단성은 ‘단계적’, 동보성은 ‘행동 대 행동’을 의미하는 것으로 지금은 사문화된 2005년 9·19 공동성명에서 시도된 바 있다. 당시 6자 회담 참가국들은 ‘말 대 말’, 행동 대 행동‘의 원칙에 따라 북한의 비핵화 조치에 따라 단계적으로 경제지원과 체제 보장 등 상응하는 조처를 하기로 합의했다. 또 합의사항의 구체적인 이행을 위해 2007년에는 1단계 이행조치인 ‘2·13 합의’와 2단계 조치를 담은 ‘10·3 합의’까지 도출해 냈다. 하지만 김정일은 비핵화 협상을 지루하게 끌어가며 시간을 번 뒤 핵실험을 거듭하며 모든 합의를 뒤집었다. 미·북 정상회담이 열려 북한의 비핵화에 대한 합의가 이뤄지더라도 완전한 비핵화 달성은 지극히 어렵다는 것을 보여주는 역사적 사례다. 이 때문에 김정은이 비핵화 협상 의지를 밝혔다고 해서 섣부르게 장밋빛 환상에 사로잡혀 대북제재를 완화하거나 틈을 주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또 미·북 정상회담이 열려 비핵화 합의가 나오더라도 과거처럼 섣부르게 대북지원에 나서서도 안 된다. 지루하게 협상하고 합의한 뒤 합의를 깨고 같은 요구로 다시 지루하게 협상해 합의하고 또 깨면서 상대를 지치게 만들어 요구를 관철시키는 게 북한의 협상 전술 중 하나다.

미 트럼프 행정부는 단계적 조치를 거부하고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방식(CVID)’으로 모든 북한 핵을 폐기해야 한다는 입장을 확고히 하고 있다. CVID 방식은 2003년 3월 열린 1차 6자 회담에서 북핵 문제 해결 방안으로 미국이 처음 제시한 정책목표다. 핵 폐기 과정에서 보상은 없으며, 핵 폐기가 이뤄진 후에야 대북 경제지원과 관계 정상화 등을 논의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김정은이 언급한 단계적 동시적 조치에 대해 “그런 방식은 모두 실패로 끝났다”고 미 국무부는 잘라 말했다. 그러면서 미 트럼프 행정부는 여기에 ‘6개월에서 1년 이내’라는 시한까지 더했다. 북핵 폐기를 최단 기간에 끝내 9·19 공동성명 때처럼 북한에 다시는 속지 않겠다는 것이다.

미·북 간의 비핵화 논의에서 과거와 다른 점이 있다면 북한이 미 본토를 위협할 핵무기와 ICBM을 거의 손에 넣었다는 점이다. 1994년 제네바 합의나 2005년 9·19 공동성명 때만 하더라도 북한은 핵 개발 초기였거나 개발 중이었다. 이제 김정은은 여기서 조금만 더 시간이 주어지면 실질적으로 핵 무력을 최종 완성하고 핵을 무기로 경제발전과 체제 안정을 보장받을 수 있다고 믿고 있다. 핵-경제 병진 노선을 공식 추진하고 있는 김정은으로서는 ‘핵을 가진 강성대국’ 고지가 바로 저긴데 여기서 말 수는 없는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도 이를 간파하고 있어 리비아 방식 핵 폐기보다도 더 시한을 짧게 잡고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이번 달 27일 남북 정상회담이 판문점에서 열린다. 이어 미·북 정상회담까지 예정돼 있어서 북핵 문제 해결과 한반도 평화에 대한 기대감은 어느 때보다 높다. 하지만 실패 가능성도 높다. 김정은은 “조선반도(한반도) 비핵화는 선대의 유훈”이라고 했다. 김정일 생존 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외웠던 “조선반도 비핵화는 김일성 주석의 유훈”이라는 주문을 김정은도 반복하고 있다. 김일성과 김정일은 비핵화를 외치면서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약속도 깨고 핵 개발을 계속했다. 김정은도 2012년 2·29 합의를 깼다. 레드라인을 연거푸 넘었지만 미국은 적극 대응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미국이 심상치 않다. 북한뿐 아니라 중국까지 거세게 압박하고 있다. 김정은이 이번 기회를 놓치면 더 강력한 대북제재와 군사적 압박에 놓이게 될 것이다. 실패에도 대비해야 한다.



/이웅수 집사
KBS 보도국 기자
신문발행국 논설위원



 

위 글은 교회신문 <571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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