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칼럼] 신앙인은 애국자입니다

등록날짜 [ 2016-06-13 19:12:16 ]

분단된 우리 현실이 6월이면 더욱 마음을 아프게 해

민족 구원을 위해, 나라를 위해 기도의 사명 불타야

 

 

6월입니다. 국가적으로 호국보훈의 달입니다. 제가 사역하는 침례신학대학교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국립대전현충원이 있어 가끔씩 방문할 때가 있습니다. 현충원에 가면 아들의 묘비 앞에서, 때론 남편과 일가친척의 묘비 앞에서 아픔을 부여안고 흐느끼거나, 깊은 상념에 젖어 있거나, 기도하는 유족들을 항상 볼 수 있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군에 복무할 때 순직했던 동료 군인의 죽음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현충원에 안장한 후에 휴가를 내어 그 묘비 앞에 섰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남과 북, 같은 동족이 왜 이토록 처절하게 총칼을 겨누며 그토록 오랜 세월을 대립하며 지내는지, 슬픔이 슬픔을 더합니다. 6월이면 분단된 우리의 현실이 더욱더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평화의 나라를 소망하는 이사야의 예언이 생각납니다.

그가 열방 사이에 판단하시며 많은 백성을 판결하시리니 무리가 그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지 아니하리라”(2:4).

 

우리 민족의 화해가 이루어지기를 소망해 봅니다. 동양의 예루살렘이라 불리던 평양에 복음의 꽃이 다시 찬란하게 피어날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이 직장을 휴직하지 않고, 학업을 중단하지 않고, 젊음의 한 부분을 민족의 대립 현장 대신에 화합과 발전의 장에서 헌신하는 그 날을 기대해 봅니다.

 

이토록 오랜 세월 깊고 독해진 감정의 골을 누가 치유하겠습니까?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개입과 치유가 우리 민족을 회복시킬 것입니다. 남과 북의 관계는 이제 하나님이 개입하셔야 합니다. 우리의 힘과 능력으로 하나가 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이념, 경제, 정치로 나뉜 둘을 하나로 통일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개인과 개인의 관계 회복도 하나님이 개입하실 때 풀어지기도 합니다. 민족 간의 질긴 대립의 장벽도 하나님께서 허물어 주셔야 합니다. 6월은 우리나라와 민족을 위한 기도의 사명을 다시 일깨웁니다.

 

북한은 하나님 대신에 공산주의 이념이라는 우상 숭배에 빠져 있고, 지금 우리의 현실은 자본주의의 울타리 안에서, 자유의 이름으로 온갖 우상숭배와 도덕적 타락을 방조하고 미화하는 상황입니다. 종교다원주의, 동성애가 인권이나 소수자 차별금지란 해괴한 이름으로 치장되는 중입니다.

 

우리 사회는 사단의 올무에 걸려들고 있습니다. 타락이 자유이고, 방종이 권리처럼 인식되는 이 시대는 소돔과 고모라의 재현입니다. 이제는 그리스도인이 빛과 소금의 사명을 더욱 분명하게 감당해야 할 시점입니다. 외면적인 대립 못지않게 내면적으로 밀물처럼 들어오는 악한 영들의 침투를 단호하게 물리쳐야 할 때입니다.

 

악한 영들과 타협하는 것은 하나님을 떠난 우상숭배와 같습니다. 빛과 어둠은 공존할 수 없습니다. 영적인 힘이 있어야 어둠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우리 민족을 위해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신앙인은 애국자입니다. 모세도, 바울도 자기 민족의 구원을 위해서 하나님께 생명을 걸고 절박한 기도를 했습니다. 모세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합의하시면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않사오면 원컨대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주옵소서”(32:32).

 

다음은 바울의 기도입니다.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찌라도 원하는 바로라”(9:3).

 

하나님께서 의인을 찾으셨듯이, 이제는 기도하는 자를 찾으십니다. 민족의 구원을 위해서 모세처럼, 바울처럼 기도하는 신앙인이 곧 애국자입니다. 아멘.

김선배 교수

침례신학대학교 신약학

위 글은 교회신문 <483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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