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대곤 목사 칼럼] 확실한 믿음의 대상 ‘예수 그리스도’

등록날짜 [ 2023-08-05 23:13:49 ]

바다 위 광풍 같은 위기가 닥쳐도

천지만물 주관하는 예수님 앞에

도와주실 것 믿음으로 기도하면

어떤 불가능도 해결받을 수 있어


마가복음 강해⑩ 

마가복음 4장에서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가 겨자씨 한 알과 같다고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또 가라사대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어떻게 비하며 또 무슨 비유로 나타낼꼬 겨자씨 한 알과 같으니 땅에 심길 때에는 땅 위의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심긴 후에는 자라서 모든 나물보다 커지며 큰 가지를 내니 공중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만큼 되느니라”(막4:30~32). ‘겨자씨’는 당시 가장 작은 것을 나타내는 유대인의 관용적 표현이었습니다. 겨자씨는 크기가 매우 작지만 심어서 자라면 3~4미터까지 성장합니다. 작은 겨자씨가 자라나 새 떼가 그 가지에 깃들 만큼 커지듯, 하나님 나라도 지극히 작은 것에서 비롯된다는 의미입니다.


지극히 작은 겨자씨처럼 예수님 당시에 ‘복음’은 아주 작아 보였습니다. 갈릴리의 목수, 가문과 학문의 배경이 전혀 없는 하등 등급 사람이던 예수를 바리새인과 유대의 지도자들은 무시했습니다.


마가가 복음서를 기록할 당시에도 성도들은 예수 믿는다는 이유로 고난과 핍박을 받으며 자기 믿음 하나 지키기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예수의 복음이 전 세계에 퍼질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미움과 조롱을 당하다가 결국 십자가에서 죽을 만큼 기억되지 않아야 할 그 ‘예수’의 복음이 얼마나 보잘것없어 보였겠습니까?


그러나 “십자가에 달려 죽은 그 사람을 하나님의 아들로 섬기느냐?”라고 조롱하던 예수의 복음이 오늘날 온 세상에 전파되어 우리도 예수 믿는 대열에 동참하게 되었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이라던 갈릴리 촌사람인 제자들을 통해 하나님께서 놀랍게 역사하심으로 복음은 예루살렘을 넘어 빠른 속도로 펴져 나갔고 아직도 복음 전도와 부흥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 죄 사함의 복음은 보잘것없어 보였지만 그 생명력이 어마어마하여 땅끝까지 전파되었습니다.


“그날 저물 때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저편으로 건너가자 하시니”(막4:35).


예수께서 바닷가 배 위에서 설교를 마치신 후 이미 날이 저물어 가고 있을 때입니다. 하루 종일 병 고치고 복음 전하는 일에 몰두하신 후 밤에도 새로운 사역을 하려고 다른 장소로 쉬지 않고 이동하는 모습입니다. ‘저편’은 가버나움에서 갈릴리 바다를 가로질러 동남쪽에 있는 ‘거라사’를 가리킵니다. 거라사는 갈릴리 동편의 데가볼리 지방에 속한 이방인 지역입니다. 이방인 지역에 가서도 복음을 전하고 병자를 고치도록 출발하자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모시고 지시하신 장소로 향합니다.


예수님은 복음 증거에 전력하셨습니다. 일정은 언제나 빡빡해서 식사할 겨를도 없을 만큼 바쁘셨고(막3:20), 아침 늦게까지 주무실 여유도 없이 기도하다가(막1:35) 틈이 생길 때만 조금씩 주무시면서 강행군을 이어 갔습니다.


복음을 전하느라 쉴 틈 없던 예수님이 고물, 즉 배 뒤쪽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는데, 바람이 거세고 파도가 산처럼 우뚝 솟아 부딪히면서 배가 물속으로 잠길 것 같았습니다(막4:37). 갈릴리 바다는 해수면보다 200미터 이상 낮고 주변 사방에 높은 산들이 둘러싸고 있어서 갑작스러운 돌풍이 자주 일어납니다. 베드로나 야고보 등은 갈릴리에서 오랫동안 어부 생활을 했기 때문에 광풍이 불어올 것을 예측했으나, 예수님의 명령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이러한 광풍은 인생의 위기에 비유될 수 있습니다. 사람마다 편차는 있지만 인생에서 크고 작은 위기를 맞는데 예수 믿는 성도도 예외는 아닙니다.


제자들도 배에 주님을 모시고 있었지만 광풍이라는 위기를 만났습니다. 배가 침몰할 위기를 맞자 당황한 제자들은 배 뒤편에서 곤히 주무시는 예수님을 깨우면서 도와달라고 소리칩니다. 바로 예수님께 도움을 청하며 ‘기도’한 것입니다. 우리도 곤경에 처했을 때 최선의 방법은 ‘기도’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을 일하시게 할 통로이며, 어떤 불가능한 문제라도 해결받을 수 있는 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환난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시50:15)라고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막4:39).


예수께서 광풍을 명하여 잔잔케 하신 후 제자들을 책망하셨습니다.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막4:40). 예수님은 제자들의 실수나 허물에는 너그러우셨으나 믿음이 없는 행동에는 가차 없이 책망하셨습니다.


예수께서 행하신 수많은 이적을 보고 그의 말씀을 들었지만 당시 제자들은 예수가 누구신지 정확히 알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바람과 바다라도 순종하는 권세를 가진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했다면 하나님의 아들과 함께 있으므로 두려워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제자들이 아직 복음을 받아들이지 못해 좋은 땅이 되지 못하고 가시떨기 밭처럼 세상 염려에 흔들리는 믿음 없는 모습입니다.


마가는 풍랑을 만난 제자들처럼 거대한 핍박과 고난에 직면한 로마 성도들에게 천지만물을 주관하시는 예수님을 알고, 믿고, 의지하고, 기도하면 그 어려움을 능히 이겨 낼 수 있다고 분명하게 말합니다. 오늘날 예수 믿는 우리도 죄 사함으로 영원한 천국과 영생을 주신 예수님이 누구신지 분명히 안다면, 예수께서 나의 모든 것을 책임지신다는 믿음이 있기에 두려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당시 두려워하던 제자들이 예수께서 부활, 승천하시고 성령님이 오셨을 때는 모든 세상 염려와 물질의 유혹 심지어 목숨까지 초월해 가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우리도 기도하고 성령 충만해서 하나님의 뜻대로 예수를 나의 구세주로 믿는 믿음을 소유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우리와 함께 계시고 우리를 도와주시는 권세 있는 분이십니다. 그러한 주님께 기도해서 날마다 응답으로 살고 세상의 어떤 풍랑을 만날지라도 믿음을 지키고 천국 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계속>



위 글은 교회신문 <810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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