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대곤 목사 칼럼] 참 자유 주신 예수 그리스도
마가복음 강해⑪

등록날짜 [ 2023-08-19 10:04:10 ]

예수님은 평생 죄에 종노릇하며

고통받는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오셔서 참 자유를 주셔

마귀 사단 귀신도 두려워 떠는

예수 이름의 권세로 복음 전해야


마가복음 강해⑪ 

예수께서 천국 복음을 전하신 후 제자들과 배를 타고 갈릴리 바다 건너편 거라사인의 지방으로 가십니다. 큰 광풍을 만나 배가 침몰할 위기에 처하기도 하며 이방인이 사는 거라사에 도착하니 예수께 뛰어나온 사람이 있었습니다.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었습니다(막5:2).


그 사람이 거처하던 장소는 무덤 사이였습니다. 당시 팔레스타인의 무덤은 암석을 옆으로 파서 그 안에 시체를 넣고 굴 입구를 돌로 막아 놓는 형태였습니다.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은 고랑과 쇠사슬에 여러 번 매였어도 모두 끊어 버리고, 산이나 무덤 사이에서 밤낮 소리 지르며 돌로 자기 몸을 상하게 했습니다. 아무도 귀신 들린 사람을 제어할 수 없었습니다(막5:3~5).


사람들에게 버림받고 짐승처럼 살아가는 이 불쌍한 사람을 구원하려고 예수님은 험한 파도를 넘어 오셨습니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이기도 합니다. 하늘의 모든 영광을 버리시고 종의 형체를 취하여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마귀, 사단, 귀신의 종노릇하며 평생 죄악과 고통 가운데 신음하는 모든 사람을 구원하려고 오신 것입니다.


성경은 귀신을 실존하는 영적 존재라고 말하지만, 세상에서는 그저 사람 머릿속에 있는 상상적 존재에 불과하다고 취급합니다. 귀신은 죽은 사람의 혼령이 아니라 타락한 천사들(벧후2:4)입니다. 이들은 자신들을 향한 경계를 늦추도록 실체를 감추고 거짓말하여 속이고 미혹해 사람들의 영혼을 지배해 갑니다. 우리는 귀신 역사를 분별하고 경계해야 합니다.


귀신 역사에 지배당하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만나지 못한 채 죄 아래서 신음하고 아무런 소망 없이 억압과 고통 속에서 영원히 멸망할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 우리도 동일한 처지였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 죄에서 나오고 마귀, 사단, 귀신의 종노릇에서 해방되어 참된 자유와 생명을 얻게 된 것입니다.


귀신 들린 사람이 예수를 보고 달려와서 절하면서 큰 소리로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라고 부르짖었습니다(막5:7). 예수가 유대인뿐만 아니라 전 인류 앞에 가장 높으신, 참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귀신이 고백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경배했다는 의미가 아니라 예수님이 자신들을 멸할 권세를 가지신 분임을 알기에 두려워서 한 행동입니다.


이어 귀신이 “나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원컨대 하나님 앞에 맹세하고 나를 괴롭게 마옵소서”라고 말합니다. 귀신은 이렇게 하나님 앞에서 무서워 벌벌 떠는 존재입니다. 예수께서 이미 그 사람이 달려왔을 때 “더러운 귀신아 그 사람에게 나오라”라고 하셨기에 괴롭게 말라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그에게 “네 이름이 무엇이냐”라고 물으십니다. 그가 “내 이름은 군대니 우리가 많음이니이다”라고 하며 자기들이 머물던 지방에서 떠나지 않게 해 달라고 예수께 간구합니다. 이방인 지역은 사단에게 지배받던 자신들의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근처에 있던 “돼지 떼에게 들어가게 해 달라” 하고 부탁하자 예수께서 허락하십니다. 더러운 귀신이 그에게서 나와 돼지에게로 들어가니 거의 이천 마리 되는 돼지 떼가 비탈로 내리달아 바다에서 몰사했습니다(막5:13). 이방인 지역에서는 귀신이 왕이고 귀신을 누구도 제어할 수 없는데, 하나님의 아들이 오셔서 그 귀신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선포케 하시고 하나님 아들의 권세 앞에 두려워 떠나가는 장면입니다.


귀신 들린 사람은 예수님의 명령으로 군대 귀신이 나가자 정신이 온전해졌습니다(막5:15). 그런데 귀신 들렸던 사람의 된 일과 돼지 떼 몰사 사건을 본 거라사 사람들이 예수께 떠나 달라고 간구합니다. 군대 귀신에게 잡혔던 자가 자유케 되어 정신이 온전해진 것을 보면서 기뻐해야 마땅한데, 오히려 두려워하며 예수께 떠나 달라고 한 것입니다. 이는 이천 마리나 되는 돼지가 죽었으니 예수님이 이곳에서 더 머물다가 자신들의 재물도 사라지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앞섰기 때문입니다. 이기적이고 세상적인 욕심 때문에 축복의 근원이신 예수님을 배척한 것입니다.


수많은 귀신을 능히 떠나보낼 수 있는 권세를 가지신 분이라도 그 지역 사람들이 두려워서 예수님을 거부하고 배척하니까 그 지역에서 복음을 전하지 않고 떠나십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그냥 우리 모두를 구원해 주고 천국에 보내 주시면 되는 것 아닙니까?”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억지로 조종하길 바라지 않으시며, 우리가 하나님 앞에 인격적으로 반응하도록 창조하셨습니다. 그런데 악한 마귀 궤계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 인격적으로 반응하지 못하도록 계속 하나님을 대적하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배에 오르실 때 귀신 들렸던 사람이 예수께 함께 있기를 간구합니다. 예수께서 허락지 아니하시고 그 사람에게 “집으로 돌아가 주께서 네게 어떻게 큰일을 행하사 너를 불쌍히 여기신 것을 네 친속에게 고하라”라고 말씀하십니다(막5:19).


귀신 들린 사람은 예수께서 불쌍히 여겼기 때문에 귀신에게서 자유함을 얻었습니다. 우리가 진짜 복을 받을 수 있는 길은 단 하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셔야 합니다. 이 복이 영적이든 육적이든 하나님 앞에 내가 불쌍한 것을 인정해야 하나님이 보실 때 불쌍하다고 생각되는 자에게 큰 긍휼을 베풀어 주십니다.


귀신 들렸던 자가 가서 예수께서 자기에게 어떻게 큰일을 행하신 것을 이방인 지역인 데가볼리에 전파합니다. 예수께서 그 지역을 떠나셨으나, 은혜받은 자에게 복음 전할 사명을 주시고 그가 가서 전할 때 예수께서 하신 일이 전달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해야 할 선교지는 바다 건너 멀리 있는 곳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장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가까이에 있는 가족과 친구 그리고 직장동료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부터 실천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예수님을 배척하면 배척당하시고, 수용하면 수용하시는 분입니다. 혹시나 나도 모르게 예수님을 배척하고 있지는 않은지 항상 말씀을 통해 발견하고, 예수께서 우리에게 주고자 하는 모든 복을 받기 위해 간절히 구하는 자가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계속>




위 글은 교회신문 <812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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