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대곤 목사 칼럼]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
마가복음 강해(16)

등록날짜 [ 2023-10-19 01:33:52 ]

성도에게 고난과 역경 찾아올 때

약속의 말씀 믿음으로 기도하고

주님 의지해 영적생활 승리해야

예수께서 수많은 이적 나타내며

약속대로 온 그리스도이심 선포


마가복음 강해(16)

예수께서 오병이어 이적으로 수많은 사람을 먹이신 후 제자들을 재촉하여 건너편 벳새다로 즉시 가게 하셨습니다(막6:45). 풍성한 잔치를 베푸신 후 서둘러 무리를 흩으시고 제자들을 재촉해 건너편으로 가게 하신 이유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왕으로 삼으려고 생각하고 있음을 아셨기 때문입니다(요6:15). 예수께서는 서둘러 무리를 해산시킴으로써 그들의 잘못된 메시아관을 거부하고 제자들도 그러한 생각에 휘말리지 않도록 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앞서 보내시고 사람들과 작별하신 후 기도하러 산으로 가셨습니다(막6:46). 전능하신 예수님도 육신을 입고 있는 동안 기도하는 데 우선순위를 두셨습니다. 그렇다면 피조물인 우리는 얼마나 기도해야 할까요?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의 도움 없이 자기 힘으로 살 수 있다고 믿는 교만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 속에 살면서도 하나님을 무시하는 어리석은 사람인 것입니다.


제자들은 주님의 명령에 따라 건너편 벳새다로 가려고 열심히 노를 저었습니다. 그런데 거슬러 불어오는 바람과 파도 탓에 괴로움을 당합니다. 우리는 흔히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만 하면 아무런 문제 없이 모든 일이 잘 풀려 형통하리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말씀대로 순종하다가 문제가 생기면 당황합니다. 그러나 성경에도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했지만 어려움을 겪는 사례가 많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조차 이 땅에서 자신을 반대하는 수많은 장애물을 만나야 했습니다.


순종하는 성도에게도 역경은 찾아옵니다. 우리의 대적 마귀가 우리를 삼키려고 늘 시험하며 시련을 주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시련과 역경에 부딪힐 때 결코 이를 이상하게 생각하거나 불평하거나 원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히려 시련과 역경을 만날 때 하나님을 더 의지하고 나의 죄를 찾아 회개하는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어려움을 견디고 기도하며 영적 싸움에서 승리할 때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더 깊이 체험하는 복된 기회가 될 것입니다.


“저물매 배는 바다 가운데 있고 예수는 홀로 뭍에 계시다가 바람이 거스리므로 제자들의 괴로이 노 젓는 것을 보시고 밤 사경 즈음에 바다 위로 걸어서 저희에게 오사”(막6:47~48).


예수께서 산 위에서 기도하시다가 제자들이 풍랑을 만나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시고 그들을 돕고자 바다 위로 걸어오셨습니다. 밤 사경은 새벽 3시부터 6시까지이며 칠흑같이 어두울 때입니다. 어둠 속에서 곤경에 처한 제자들을 보고 찾아오신 주님은 지금도 우리의 모든 형편을 아시고 어려움에 처한 우리를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주님께서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마7:7)이라고 약속하셨으니 우리가 기도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물 위를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보고 유령으로 착각하여 비명을 지르며 두려움에 빠졌습니다. 예수님은 여태 제자들에게 선지자로서 수많은 능력을 보여 주셨습니다. 바로 직전에도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000명이 넘는 사람을 먹이는 이적을 행하셨고 그 모습을 직접 보았으니 ‘예수님이 모세와 엘리사 같은 선지자로서 물 위를 걷는 능력도 있으시구나’라고 당연히 생각해야 할 텐데 금세 망각하고 두려워한 것입니다.


이에 예수께서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 하시며 배에 올라 제자들에게 가시자 바람이 그쳤습니다(막6:50~51). 갈릴리에서 불어온 역풍이 제자들을 방해한 것처럼 우리 인생에서도 하나님 말씀 따라 살려는 의지를 꺾고 괴롭게 하는 마귀역사를 맞닥뜨립니다. 질병, 경제적 어려움, 사람과 갈등 등 마귀역사가 아무리 힘들게 해도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면 풍랑은 잠잠해집니다.


많은 이적과 능력을 나타내신 예수

예수께서 게네사렛 땅에 이르렀습니다. 예수가 배에서 내리는 것을 본 사람들이 온 지방에 다니며 예수의 소식을 전하자 사람들이 병든 자를 침상째 메고 나왔습니다. 예수께서 들어가시는 마을이나 도시나 촌에서 병자를 시장에 두고 예수의 옷에라도 손을 대게 하기를 간구하니 예수께 손을 대면 다 성함을 얻었습니다(막6:53~56). 이렇게 예수께서 구약의 어떤 선지자보다 더 많은 이적과 능력을 나타내는 것을 보면서 떠오르는 구약의 말씀이 하나 있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의 중 네 형제 중에서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너를 위하여 일으키시리니 너희는 그를 들을찌니라”(신18:15).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메시아가 올 것이라고 믿었고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나타나기를 소망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에게 “모세와 같은 선지자를 너희에게 보낼 것인데, 그때 너희는 그 선지자의 말을 잘 들어야 한다”라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보내겠다고 약속하신 선지자임을 백성들이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네가 혹시 심중에 이르기를 그 말이 여호와의 이르신 말씀인지 우리가 어떻게 알리요 하리라 만일 선지자가 있어서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한 일에 증험도 없고 성취함도 없으면 이는 여호와의 말씀하신 것이 아니요 그 선지자가 방자히 한 말이니 너는 그를 두려워 말찌니라”(신18:21~22).


여호와의 말씀을 전할 ‘모세와 같은 선지자’는 수많은 이적과 증거를 보여 줄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마가복음 6장에서는 예수께서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임을 알 수 있도록 구약의 선지자들처럼 고향에서 배척당하시고, 제자들도 동일한 사역을 하고, 침례 요한처럼 인정받으시고, 오병이어 사건으로 모세와 엘리사를 연상케 합니다.


또 모세와 엘리사는 강을 갈라서 건넜지만 예수님은 물 위를 걸으시고, 예수님의 옷깃에만 손을 대면 모든 병이 고침받는 이적을 나타내셨으니 이로써 이전의 어떤 선지자보다 더 크게 쓰임받는 선지자임을 분명하게 보여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바로 신명기에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에게 약속했던 능력으로 와서 하나님 말씀을 전할 선지자, 즉 “약속대로 오신 그리스도”라고 선언하는 것입니다. 이어서 7장에는 그 선지자가 전하는 ‘하나님 말씀’에 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위 글은 교회신문 <820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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