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 기도의 불신은 믿음 없음의 증거

등록날짜 [ 2016-04-13 17:51:22 ]

전 성도 40일 그리고 10일 작정 기도회에 참석하면서 그동안 쌓인 불신과 싸워야 했다. ‘기도해 봤는데 안 되더라는 부정적인 생각이 발목을 잡았다. 기도 시간에 맞춰 교회에 가기는 했지만 기도에 쉽사리 집중할 수 없었다.

 

기도의 불신은 어린 시절부터 시작됐다. 아빠는 평소에 사람 좋고 남에게 싫은 소리를 잘 못 했다. 하지만 술만 마시면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전화해서는 따지고 욕을 퍼부었다.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으면 전화기를 마당에 집어던지고 장독부터 시작해 세간을 박살냈다. 건넌방 이불 속에서 숨죽여 있던 나는 울면서 간절히 기도했다. 우리 아빠도 예수 믿고 술 좀 끊게 해 달라고. 그러나 그런 일이 수년째 이어지다 보니 어린 마음에 기도해도 안 되나 보다는 생각이 슬며시 자리 잡았다.

 

간절하게 기도한 일이 하나 더 있다. 엄마는 15년 넘게 재생불량성 빈혈을 앓았고, 계속되는 잇몸 출혈에 정기적인 혈소판 수혈로 심신이 지쳐 갔다. 어느 날, 엄마의 상태가 심상치 않았다. 의사들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평소 엄마는 죽을 때 찬송 소리가 들리면 좋겠다고 해서, 엄마 머리맡에 앉아 30분이고 1시간이고 찬송가를 불렀다. 엄마는 끝내 일어나지 못하셨다. 엄마가 돌아가셨다는 슬픔과 함께 허탈감이 찾아왔다.

 

내가 엄마를 위해 기도한 시간은 그렇다 치더라도 엄마가 평생 눈물로 새벽 기도하던 그 응답들은 어디 갔나? 평생 고생만 하다가 이렇게 죽을 수 있나!’

 

원망과 불신앙이 교회 밖으로 나를 밀어냈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온 나라가 IMF 외환위기에 처했다. 게다가 그해 적조현상이 심해 아빠가 하시던 굴 양식도 망했다.

 

대학생이 되어 서울에 왔지만 학교 다닐 형편이 아니었다. 일 년은 휴학해 학비와 생활비를 벌고 다시 일 년은 복학하기를 반복했다. 그즈음 전도를 받아 우리 교회에 왔다. 설교 말씀을 들으며 처음으로 눈물을 흘렸고 하나님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도 알았다. 신앙생활에 욕심도 생겼다.

 

그런데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으면 월세, 생활비, 학비를 못 낼 형편이라 삼일예배와 금요철야예배를 드릴 수 없었다. 그래서 하나님께 다른 애들은 부모님이 주시는 용돈으로 학교 다녀요. 하나님이 제 아버지시잖아요. 저도 하나님이 주시는 용돈으로 학교 다니고 신앙생활 하고 싶어요라고 눈물로 기도했다.

 

그러자 고향에 계신 아빠가 마음을 추스르고 일어서셨다. 매달 용돈도 보내 주셨다. 내 생애에 처음으로 경험한 기도의 응답이었다.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기쁨보다 하나님이 정말 살아 계신다는 것, 그래서 내 기도에 응답하셨다는 기쁨이 더 컸다.

 

작정 기도회 5일째 성전에 앉아 기도에 마음 쏟지 못할 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까마득히 먼 거제도 산달 섬에서 서울 연세중앙교회까지 오게 하신 것은 다 엄마의 기도 덕분이 아니겠는가. 덩달아 동생도, 아빠도 우리 교회에서 말씀 듣고 은혜받으니 엄마가 기도한 것은 이미 응답 완료되었다.

 

기도가 응답되지 않는 까닭은 하나님이 무능해서가 아니라 온전히 내 문제다. 응답받을 만한 믿음이 없거나, 죄로 말미암아 기도가 상달되지 못했거나, 아직 응답받을 때가 아니어서 그렇다. 기도의 불신은 믿음 없음의 증거이고 죄다. 이번 작정 기도회에 참석해 잘못된 불신앙을 청산하고 하나님을 더 깊이 알아가고 싶다. 세상 풍파가 덮쳐 온다 해도 절대 흔들리지 않는 믿음의 사람으로 세워지도록 남은 기간도 열심히 달려야겠다.

김은혜 집사

(75여전도회)

위 글은 교회신문 <475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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