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 신앙이 종교로 변질되지 않도록

등록날짜 [ 2017-05-09 11:05:09 ]

외롭고 힘든 시절에 더 뜨거웠던 믿음
다시 영혼의 봄날이 찾아오길 기대해


아무 연고 없는 동해안 최북단 작은 시(市)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당시는 예수님을 영접한 지 3년 채 안 되던 시절인데 지금 돌이켜 봐도 주님과 꿀같이 달콤한 열애를 나누었다.

외롭던 내가 위안받고 기댈 수 있는 것은 오직 신앙생활이었기에 주님과 더욱 가깝게 지냈다. 퇴근하면 교회로 달려가 예배드리고 기도했다. 예수 안 믿는 동료들에게 종교생활이 지나치다고 비난받았지만, 예수 믿는 사람으로서 확고한 인정과 지지도 받았다.

“그래, 교회는 저렇게 다녀야 하는 거야!”

하루를 마치면 모든 걸 깨끗이 정리하고 똑바른 자세로 잠자리에 들었다. 잠자는 사이 주님이 오시면 들림받을지도 모르니 주님의 신부로서 나를 단장한 것이다. 그만큼 주님께 설렜다.

몇 년 후 고교 동창이 군무원으로 발령받아 함께 자취했다. 통뼈에 덩치도 있는 친구는 근무환경이 24시간 3교대여서 같이 지내는 시간은 그리 많지 않았다.

하루는 잠을 자고 있는데 갑자기 방문이 열리면서 전등이 켜졌다. 정신을 차려 보니 험상궂은 청년 3~4명이 신발을 신은 채 방 안을 살폈다. “누구요?” 묻자 우두머리 격인 이가 내 얼굴을 쳐다보더니 “야, 가자” 하고는 일행과 함께 나가 버렸다.

며칠 후 친구가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들은 동네 불량배들인데 자신과 마찰이 있었고 보복 차원에서 밤에 들이닥친 것이라고. 그런데 찾는 사람은 없고 누워 있던 사람 얼굴이 얼마나 환하게 빛나던지 아무 짓도 못 하고 그냥 나왔다고 자신에게 말하더란다. 그날 그들은 흉기를 갖고 있었기에 다치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라고 했다. 함께해 주신 주님께 얼마나 감사한지…. 그때는 그렇게 주님 은혜에 폭 빠져 살았다.

음식이 숙성하면 이롭지만, 변질하면 해치는 독이 된다. 이처럼 내 신앙(信仰)도 아주 조금씩, 그러나 분명하게 종교(宗敎)로 변질되어 갔다. 친구가 좋았고 세상 문화가 좋았다. 365일 술에 절어 살았다. 퇴근 시간에 나를 만나면 ‘그날은 술에 죽는 날’이라는 우스개 소문도 돌았다. 그 즈음 직장 상사에게 칭찬 아닌 칭찬을 들었다. “이봐! 교회는 저렇게 다니는 거야!”

남을 배려하고 가리는 것 없이 종교생활을 한다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에게서 현명한 종교인으로 인정받으며 평온한 직장생활을 이어 갔다.

신앙생활이 종교생활로 부패하던 중 언제부턴가 피곤이 몰려오고 서 있는 것조차 힘들었다. 시골 작은 병원을 거쳐 서울대학병원에 다녀왔다. 육신과 영혼의 종말이 가까이 왔다는 사실을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세상 재미가 무슨 소용인가’ 깨닫고 주님께 돌아가야만 한다는 울림이 가슴속에서 계속됐다. 세상과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벗어나도 노예근성을 버리지 못하였듯, 나 역시 아직도 과거 악습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독 오른 복어와 가시 돋친 고슴도치처럼 말에서, 표정에서, 온몸에서 독기를 뿜어 대고 수많은 가시로 주위 사람들에게 상처를 입혔다. 그래도 쓰러지지 않는 것은 죄 많은 자를 더 사랑하신다는 주님의 말씀을 의지하기 때문이다.

외롭고 힘든 시절, 그때가 내 영혼의 봄날이었다. 온몸에서 예수의 향기를 날렸다. 지금, 다시 그 음성을 기다린다.  “이봐! 예수는 윤웅찬이처럼 믿는 거야!”

/윤웅찬 집사
13남전도회

 

위 글은 교회신문 <527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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