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 이혼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2003년이후 40대 이혼율 10년전 비해 2.3배 증가

등록날짜 [ 2007-05-22 12:08:59 ]

존중과 대화 통해 적극적으로 문제 해결에 힘써야

이혼 통계와 실상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2006년 우리나라 이혼 건수는 12만5600건으로 하루 평균 342쌍이 이혼을 했다고 한다. 이혼율은 2003년 이후 조금씩 감소하는 추세이다. 그러나 최근 통계를 분석해보면 전체 이혼 건수는 줄고 있지만 중년 이후 이혼율이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이혼의 주 연령층이 2002년까지는 30대 후반이었으나, 2003년 이후 40대 초반으로 높아졌다. 2005년 이혼부부 중 20년 이상 함께 살았던 부부의 이혼은 전체 이혼의 18.7%로 10년 전의 8.2%보다 약 2.3배 증가했다.
2006년 통계에서는 55세 이상 황혼 이혼 건수가 1만 2900건으로 10년 전(3600건)의 3.5배에 달했다. 이에 따라 평균 이혼 연령은 남자가 42.6세, 여자가 39.3세로 10년 전보다 4~4.5세 높아졌다. 그리고 이혼부부 63.3%가 20세 미만의 미성년 자녀를 둔 사람들이다. 자식 때문에 이혼을 망설이는 경우가 생각보다 적다는 것이다. 이제 이혼은 사회만의 문제가 아니라 교회 내에서도 심각하게 고민하고 해결책을 찾아야할 과제로 대두하고 있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의 통계자료를 보면 기독교인의 이혼 건수가 다른 종교에 비해 월등히 많다. 전체 이혼 상담자들 중 기독교인이 27%를 차지하고, 불교인 10%, 천주교인 8%로 뒤를 이어, 이혼을 고려하는 기독교인이 상당히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암암리에 이혼을 죄악시 하는 기독교적 전통에 비추어 보면 놀라운 일이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

이혼의 원인분석
먼저 원인을 살펴보자.통계청에 따르면, 2000~2006년 이혼사유 중 성격차이가 40.1%에서 49.7%로 9.6%나 늘어났다. 이혼자 3218명을 대상으로 이혼사유를 조사한 결과 성격차이가 62.1%로 나타났다. 이어 경제적 이유(16.4%), 가족 간의 불화(13.0%), 배우자의 부정(7.3%), 정신·육체적 학대(4.3%), 건강 문제(0.6%), 기타(13.1%) 때문에 이혼한 것으로 돼 있다.
제일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성격차이는 구체적인 문제라기보다는 특별한 사유 없이 갈등이 지속될 때를 막연하게 일컫는 경우가 많다. 이혼의 가장 큰 원인은 잘못된 부부관과 의사소통의 문제에서 찾을 수 있다. 특히 나이든 부부가 헤어질 때는 문제가 잠재해 있다가 일정한 상황이 되면서 외면화되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아이들 때문에 참고 살던 중년 여성들이 자녀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거나 대학교에 입학하고 나면, 쌓였던 갈등이 폭발해 이혼을 결심하는 사례가 그것이다.
여성들의 사회적 지위가 낮았을 때는 결혼생활의 불만이 있어도 참고 사는 경우가 많았으나 최근에는 여성들의 사회활동이 활발해지면서 경제적인 문제 때문에 이혼을 망설이는 경우가 줄어들고 있다. 그리고 가족이나 자식을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던 것을 미덕으로 여기던 전통적 가치관 대신 개인의 삶을 중요시하고, 노년의 행복을 새롭게 누리려는 의식의 변화도 황혼 이혼의 증가에 일조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황혼 이혼이 전적으로 여성들에 의해서 주도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간의 가부장적 가치관에서 희생을 강요당한 것이 주로 여성이었던 것에 비추어 볼 때 남성보다는 여성의 가치관 변화가 더 크게 작용한다고 말할 수 있다. 2000년 이후 우리 사회에 노령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이제 자식이나 배우자에게 기대기보다 자신의 노년의 삶을 나름대로 개척하려는 경향이 일반화되고 있다. ‘인생은 60부터’라는 말이나 노년층 취업이 늘어나는 것이 그것을 반영한다. 위에서 언급한 구체적 통계들은 이러한 추세를 확인해준다. 그렇다면 이런 문제들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바람직한 해결책
차이를 존중하라. 우선 가장 중요한 것은 부부사이의 관계를 재정립해야 한다는 것이다. 심리학자들에 의하면 원활한 부부관계를 위해서는 남녀의 차이를 인정하고 상대방을 자기 생각대로 길들이지 않으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일반적으로 결혼 생활의 위기감은 남편보다 아내가 더 많이 느낀다. 남성이 상황을 대처할 때 사실적 차원을 중시한다면 여성은 감성적 차원에 민감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갈등에 대한 대처 방식도 다른데 의외로 이러한 차이를 간과하거나 사소하게 생각하면서 은연 중에 복종을 강요하는 경우가 많다.
심리학자들에 의하면 부부갈등이 심할 때 남성은 심한 말이나 폭력을 행사하는 반면, 여성은 이혼을 생각하거나 아니면 옛 애인이나 다른 이성을 생각한다. 성경에 나오는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창2:24)의 의미를 잘 생각해야 한다. 둘이 한 몸을 이루기 위해서는 먼저 서로의 차이를 존중하고 상대의 인격을 배려해야한다. 그리고 부부 간의 완벽한 의사소통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부부가 아무리 친밀할지라도 서로 상이한 세계에서 살 수 밖에 없고 그들이 교환할 수 있는 의사소통에 의해서 일부만을 노출시킬 수 있다고 한다. 이것은 모든 인간관계에 적용할 수 있는 원칙이다. 인간은 언제나 상대방을 이해하는 것 같지만 자아가 중심이 되기 때문에 오해를 갖기 마련이고, 자신을 중심에 두고 상대를 따라오게 하는 것이 자연적인 본성이다.
부부가 한 몸을 이루기 위해서는 먼저 차이를 인정하고 둘의 관계를 상호 보완하는 애정관계로 생각을 해야지 한쪽이 중심이 되려고 한다면 갈등이 불거지기 마련이다. 효과적인 의사소통 방법이 중요하다. 부부 간에 많은 얘기를 나누는 것도 중요하지만 특히 결혼 생활을 변함없이 유지하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의사소통의 방법과 실천이 절대적이다.
심리학자들에 의하면 부부지간의 소통이 잘되기 위해서는 긍정적인 대화법이 중요하다. 구체적으로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기, 앙심을 품거나 비아냥거리지 말고 긍정적인 말하기, 과거의 일을 들추지 않기, 상대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기, 물리력을 사용하지 않기 등이 그것이다. 살다보면 갈등이 생기게 마련인데 그 경우 대화방법이 중요하다.
『부부가 함께 말하기와 듣기』의 저자 존 고트맨은 이것을 액티브 리스닝 (Active Listening)이라고 명명한다. 쉽게 말해 상대의 자존심을 상하지 않게 하면서 자신의 얘기를 잘 전달하는 것인데 긍정적인 표현을 사용하여 대화를 하는 것이 핵심이다. 예컨대 “당신은 전혀 집안일을 도와주지 않았어. 내가 다 했지. 당신은 게을러”라고 말을 한다면 이 말을 듣는 상대방은 그것을 인정하기보다 반발하게 된다. 이럴 때는 “나는 너무 많은 집안일로 지쳐 있어요. 도움이 필요해요. 당신이 좀 도와주세요”라고 말하는 것이다. 전자가 상대를 비난하는 말이라면, 후자는 도움을 요청하는 말이다. 그리고 상대의 말에 대답을 할 때도 상대의 말을 일단 인정하는 것이 액티브 리스닝의 원칙이다. 부부싸움을 하지 않으려고 하기보다는 합리적인 의사소통의 방법을 찾는 것이 현실적인데 감정이 그때그때 해소되지 않으면 더 큰 파국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행복한 결혼생활을 한다고 보고한 부부들도 면접연구에 따르면 많은 말다툼을 벌인다고 한다. 다툼이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합리적인 방법으로 의사소통을 하느냐 일방적인 자기 말만 하느냐가 행복한 부부관계와 불행한 관계를 나누는 관건이다.
마지막으로 의식적으로 대화를 많이 하는 것이 필요하다. 심리학자 카랄레스는 남편과 아내가 말을 많이 할수록 부부관계는 더욱 성장하게 된다고 하면서, 부부가 자신의 의사표시를 많이 하는 것이 서로에게 만족을 준다고 하였다. 대화를 하지 않는 부부는 서로에 대한 신뢰와 자존감이 낮은 경우가 많다.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려 하지 않고, 내버려 두는 것이 겉으로 보기에는 평화를 가져다주는 듯 보이지만 진정한 애정을 보장하지 못한다.
사랑의 반대는 미움이 아니라 무관심이다. 대화는 의식적으로 해야 하며, 가끔은 원만한 대화를 위해 의도적으로 분위기를 바꾸는 것도 필요하다. 풀어야 할 문제가 있을 때 집안에서 얘기하기보다는 분위기 좋은 카페에 가서 데이트를 즐기듯이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인데 환경이 바뀌면 대화의 분위기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통계에 의하면 행복한 기혼자는 이혼자보다 4년 이상 더 오래 산다고 한다. 행복한 부부관계가 가정의 평화를 보장하고 사람의 수명까지 연장하는 것이다.

위 글은 교회신문 <111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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