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전 목사와 함께하는 ‘성서의 땅을 가다’(113)] 요르단 수도 암만은 롯의 후손 암몬 족속이 살던 땅
요르단 편

등록날짜 [ 2018-07-25 16:26:53 ]

암몬인은 롯과 둘째딸 사이에서 나온 후손
비잔틴시대 때는 기독교 중심지 됐었지만
아랍인 침략 후 지금까지 이방인의 땅 돼
랍바성 성채, 비잔틴 교회 터 등 유적 많아


윤석전 목사: 롯의 후손 암몬이 살던 암몬 지역으로 가 보겠습니다.

요르단 수도 암만은 B.C. 13세기경부터 암몬 자손의 거주지였다. 당시 암몬 사람들은 현재 헤라클레스 신전 터에서 밀곰(몰렉)을 숭배했다(왕상11:5,33;왕하23:13). 도시 이름이 ‘암몬’에서 ‘암만’으로 이어진 배경만 봐도 이곳에 암몬의 역사가 서려 있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하나님을 무시했던 암몬인은 롯과 그의 둘째 딸 사이에서 나온 자손이다. 조상의 불미스러운 출생 탓에 암몬인은 이스라엘 공동체에서 배제됐고, 구약시대 내내 이스라엘과 적대 관계로 지냈다. 하나님께서 비잔틴시대 때 기독교 중심지가 되는 축복을 주셨지만, A.D. 635년 아랍인이 침략한 후 지금까지 암몬 땅은 이슬람 사원이 자리 잡은 이방의 땅이 됐다.

<사진설명> 오늘날 암만시 현 요르단 수도다. 암몬은 B.C. 8세기 앗시리아에 침략당해 멸망하지만, B.C. 3세기 프톨레마이오스 2세에 의해 복원되고 왕의 이름을 따 도시 이름을 ‘필라델피아’로 바꾼다. A.D. 630년 아랍이 이 지역을 정복한 후, 도시 이름이 다시 ‘암만’이 됐다.


<사진설명> ① [암몬 지도] 암몬은 롯과 그의 둘째 딸 사이에서 나온 아들 ‘벤암미’의 자손이다. 조상의 불미스러운 출생 탓에 암몬인은 이스라엘 공동체에서 배제됐고, 이스라엘과 오랫동안 전쟁을 벌였다.  ② [데가볼리 지도] ‘10개의 도시’란 뜻. 헬라의 알렉산더 대왕에 의해 식민지화 한 10개 도시다. B.C. 8세기 앗시리아 멸망당한 암몬은 400년간 폐허 상태였다가 B.C. 3세기 헬라 필라델포스 왕에 의해 복구됐고, 그의 이름을 따서 개명됐다. B.C. 63년 필라델비아는 데가볼리의 하나가 돼 비약적으로 발전한다. A.D. 4~7세기 비잔틴시대에는 교회가 융성했으나 A.D. 630년 아랍이 침략하자 도시 이름을 ‘암만’으로 되돌리고 쇠퇴의 길을 걸었다.



<사진설명> ③ 길르앗 야베스 침공 사건 암몬은 강수량이 적고 토지가 척박해 상대적으로 비옥했던 길르앗 지역을 자주 침범했다. 사울왕 당시(B.C. 1025년경) 암몬 왕 나하스가 길르앗 야베스를 침공했는데, 사울왕이 직접 군대를 이끌어 전쟁에서 승리한다.




윤석전 목사:
암몬 족속은 어디에 살고 있었나요?

오택현 교수: 암몬은 롯과 그의 둘째 딸 사이에 나온 ‘벤암미’라는 아들의 후손입니다(창19:38). 암몬은 랍바성에 도읍을 정하고 북으로 얍복강, 남으로 아르논강을 경계로 살던 민족입니다. 성경 역사를 보면 암몬과 이스라엘은 항상 적대 관계였습니다.

윤석전 목사: 암몬의 기원은 어떤 의미를 주나요?

우택주 교수: 암몬의 기원은 이스라엘의 기원과 비교해서 이해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족속은 아브라함, 이삭, 야곱으로 이어집니다. 암몬 족속은 롯의 두 딸이 소돔성에서 도피한 후 대(代)가 끊길까 염려해서 아버지 롯에게 술을 먹이고 취한 틈에 두 딸이 차례로 들어가서 얻은 자식 중 둘째 딸이 얻은 아들의 자손입니다. 이스라엘과 비교하면 출생 자체가 천박하고, 그 의도가 아주 불순해서 적절한 상속을 이어 받을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 약속의 기업을 받을 자격이 충분하고 암몬 족속은 이 같은 부적절한 관계로 탄생한 백성이기에 가나안 땅, 약속의 땅, 하나님의 기업을 이어받을 수 없습니다.

윤석전 목사: 암몬의 생활 터전은 좋지 않았는데, 어떤 환경이었는지 말씀해 주세요.

오택현 교수: 요단강 동쪽에 있는 다른 소국들과 지리면으로 비교하면 가장 척박합니다. 주변 모압 땅은 강수량이 풍부하고 토지도 비옥한데, 암몬 땅은 강수량이 적고 토지도 척박했습니다. 수도 랍바에서 동쪽으로 10km만 가면 사막입니다. 사막과 인접한 지역이고, 사막에 돌아다니는 유목민들이 자주 랍바를 침범했습니다. 성경을 보면 암몬은 비옥한 길르앗 지역에 눈독을 들이고 자주 침범했습니다. 대표적으로 입다 사건과 사울 시대에 암몬 왕 나하스가 길르앗 야벳을 침공한 사건 등이 있습니다.

윤석전 목사: 암몬과 이스라엘 족속 관계는 어땠나요?

우택주 교수: 두 민족은 사촌지간이지만 우애 있게 지내지 못하고 전쟁을 벌입니다. 가나안 땅에 처음 정착했을 때를 사사(士師)시대라고 합니다. 사사시대 때 암몬이 이스라엘을 침공해서 위기에 처한 적이 있고(삿11), 사울왕을 세워 나라를 처음 만들었을 때도 비옥한 길르앗을 침공한 일이 있습니다(삼상11). 다윗왕 시절에는 좋은 관계를 유지했지만 암몬 왕 나하스가 죽은 후 그의 아들 하눈이 왕이 되자 또 전쟁이 벌어졌습니다(대상19). 암몬과 이스라엘은 전쟁을 하고 화평을 맺기도 하면서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윤석전 목사: 둘이 자주 전쟁을 벌인 이유는 무엇인가요?

우택주 교수: 암몬 족속이 살던 땅에 ‘왕의 대로’라고 하는 중요한 교역로가 있었습니다. 그 길을 서로 차지하기 위해 암몬과 이스라엘이 빈번히 전쟁을 치르지 않았나 추측합니다.

윤석전 목사: 구약시대 이후 암몬 지역에는 어떤 일들이 일어났나요?

오택현 교수: 암몬은 B.C. 8세기 앗시리아에 침략당해 멸망합니다. 랍바성도 함락돼 이후 400년간 폐허 상태로 남아 있게 됩니다. B.C. 3세기 헬라시대 때 이 지역의 중요성을 간파한 헬라 왕 프톨레마이오스2세 필라델포스(Ptolemaeos II Philadelphus, 재위 B.C. 285~246)가 랍바성을 중심으로 대대적인 복구 작업을 합니다. 이 지역이 복원되자 필라델포스왕의 이름을 따서 필라델피아로 지역명을 바꿉니다. B.C. 63년 로마가 이 지역을 점령한 후에는 로마의 위성도시였던 데가볼리(Decapolis, 10개의 도시국가연합)의 하나가 돼 비약적으로 발전합니다. 암몬 시절보다 헬라시대나 로마시대로 넘어오면서 훨씬 발달해 요르단 동쪽 중심 도시로 상당한 문명 발전을 이룹니다. A.D. 4~7세기 비잔틴시대에는 교회가 융성했다가 A.D. 630년 아랍이 이 지역을 침략하자 도시 이름을 ‘암만’으로 되돌리고 쇠퇴의 길을 걸어 오늘에 이르게 됩니다.

윤석전 목사: 다시 한 번 암몬을 가보겠습니다.

요르단 수도 암만은 구약시대 ‘왕의 대로’ 중앙에 있던 랍바성을 중심으로 발전했다. 다윗왕 때 이스라엘은 암몬과 대전투를 치렀다. 이때 다윗왕은 자신의 부하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취하려고 우리아를 위험에 빠뜨려 죽이라고 지시해 하나님이 보시기에 큰 악행을 저질렀다. 우리아는 랍바성 성벽을 기어오르다 전사한다.

그 당시나 지금이나 암몬 땅은 여전히 이방인의 땅이다. 하지만 구약시대 중요한 사건이 일어났던 현장을 걷는 일은 성경 속 사건을 담고 긴 세월을 이겨 온 유물들이 인간 삶과 연결된 하나님의 궤적을 대변해 주기에 믿는 자들에게 의미 깊다.


<사진설명> [랍바성] 고고학자들이 암만시 중앙에 있는 해발 850m ‘자발 알 칼에이’ 산의 중심부에서 B.C. 4000~5000년경의 성채 유적을 발견했는데, 이 성이 구약시대 다윗왕이 점령한 ‘랍바성’으로 추정된다.


<사진설명> [로마 원형 극장]  암만 시내에 위치하며 고대 필라델피아 유적 중 보존이 잘된 건축물이다. 경사진 언덕을 파서 만든 원형극장으로 6,000명을 수용할 수 있다. 현재도 각종 행사에 사용된다.

<사진설명> [비잔틴 교회 터] 암만은 A.D. 4~7세기 비잔틴시대에 교회가 융성했으나 A.D. 630년 아랍이 이 지역을 침략한 후, 쇠퇴의 길을 걸어 오늘에 이른다.


<사진설명> [헤라클레스 신전] 로마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A.D. 161~180년) 때 건축된 건물로 암몬 사람들은 이곳에서 밀곰(몰렉)을 숭배했다. 레위기에 의하면 밀곰의 제사에는 아이들이 희생 제물로 바쳐졌다(레18:21).


윤석전 목사: 성경 속에 암몬성에 관한 구체적인 정보가 있나요?

우택주 교수: 구약성경 사무엘하 12장을 보면 다윗왕이 암몬과 전쟁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요압 장군이 암몬의 왕성 랍바를 취하고 다윗에게 사자를 보내 랍바 곧 물들의 성을 취하였다’(삼하12:26~27). 성경을 읽은 학자들이 ‘왕성’과 ‘물들의 성’이라는 지리적 정보가 담겨 있는 것을 보고 이것이 암몬성 위치나 구조를 가르쳐 주는 것이라고 추측했지만 ‘왕성’은 왕이 사는 곳, ‘물들의 성’은 얍복강에서 흘러오는 식수(食水)를 지키는 요새라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윤석전 목사: 암몬성은 현재 어떤 상태인가요?

오택현 교수: 암몬성 연구 중 가장 중요한 점은 ‘랍바성’이라고 부르던 구약시대 삶의 흔적을 찾아보는 일입니다. 고고학자들이 그 점에 주안점을 두고 연구를 많이 했는데, 주로 암만시 중앙 해발 850m ‘자발 알 칼에이(Jabal al-Qal’a)’산을 중심으로 발굴을 시도했습니다. 이 산 중심에서 B.C. 4000~5000년경 성 흔적을 발견했는데, 그 성이 구약시대 다윗왕이 점령했던 랍바성이 아닐까 추정합니다. 그 성을 연구해서 구약시대의 흔적을 찾았고, 그때의 역사를 밝히는 데 중요한 근거가 됐습니다. 대도시 암만도 구약시대의 이 성을 중심으로 확장된 것이 아닐까 추정합니다.

윤석전 목사: 성경을 보면 암몬 족속의 성채에 바산 왕 옥의 철 침상이 있다는데 자세히 설명해 주세요.


우택주 교수: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을 점령하기 직전에 요르단 동편 지역을 여행하면서 얻은 정보가 아닐까 추측합니다. 성경에 암몬성 랍바에 가면 길이 5규빗, 넓이 4규빗짜리 바산 왕 옥이 쓰던 철 침상이 있다고 기록돼 있습니다(신3:11). 암몬이 바산 왕과 전쟁해서 전리품으로 가져온 것으로 추측합니다. 그 당시 철이 희귀해 곡괭이나 전쟁 무기를 만들었는데 철로 침대를 만들었다고 하니 왕이 얼마나 호화롭게 자기 삶을 치장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 얘기가 성경에 기록된 것은 나중에 다윗왕이 암몬성을 점령한 후에 전리품을 취득하면서 이야기를 전해준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윤석전 목사: 성채 안에 유적이 있나요?

오택현 교수: 가장 오래된 것으로 고대시절 랍바성 성채가 남아 있습니다. 또 로마 시대에 만들었다는 헤라클레스 신전이 있는데 거대한 기둥이 무척 인상적입니다. 또 비잔틴시대 교회 흔적과 그 이후 이 지역을 지배한 이슬람 사원 흔적이 암만 성채에 시대별로 잘 나타나 있습니다.

윤석전 목사: 지금도 중동 지역에는 형제국들이 화염을 불사르면서 무섭게 다투고 있습니다. 이 세상은 모두 다 하나님의 자녀요, 한 사람의 후손으로서 한 식구입니다. 그런데 왜 수많은 분열과 싸움이 일어납니까? 다 사랑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내 안에서 하나 되어라’ ‘성령으로 하나 되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모두 예수 안에서, 성령 안에서 예수 십자가의 피의 공로로 거듭난 자녀로서 세계 모든 민족이 믿음으로 하나 돼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히 살길 원합니다. 


<계속>

 <윤석전 목사 탐사기행 ‘성서의 땅을 가다’는 www.ybstv.com에서 시청할 수 있습니다.>




 

위 글은 교회신문 <584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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