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전 목사와 함께하는 ‘성서의 땅을 가다’(127) l 레바논 편(4)] 지중해 무역 장악해 번영했지만 교만해져 멸망한 ‘두로’

등록날짜 [ 2018-12-20 20:26:07 ]

히람왕, 이스라엘에 의도적으로 접근

다윗왕 궁전과 솔로몬 성전 지을 때

특산물 백향목으로 짓게 도와줘


백향목 수출로 엄청난 부 축적했지만

두로 왕, 스스로 신이라 칭할 정도로

교만과 타락으로 하나님 눈 밖에 나

주변국가에 많은 적 만들어 몰락 자초


윤석전 목사: 시돈과 함께 성경에 자주 등장하는 두로(Tyre)는 다윗왕부터 솔로몬 시대까지 이스라엘과 상당히 좋은 관계를 유지했으나 두로가 항구를 중심으로 부유해지자 교만해졌습니다. 하나님께 책망받고, 시돈과 함께 저주의 땅으로 지목받은 그곳으로 가 보겠습니다.


시돈 항구에서 남쪽으로 달리면 레바논의 넷째 항구 도시 두로가 있다. B.C. 8세기 두로는 무역도시로 전성기를 맞는다. 지금도 남아 있는 당시 수로(水路) 흔적은 두로의 발전 정도를 짐작하게 한다. 전성기 두로는 지중해 무역을 장악했다. 바닷길로 백향목을 이스라엘에 수출했다. 지금도 두로는 백향목 서식지다. 레바논 백향목은 특별한 내구성 덕분에 다윗왕의 궁전과 솔로몬 성전을 건축하는 데 쓰였다.



▲ 두로항 두로는 고대 페키니아(Phoenicia)의 도시다. B.C. 8세기에 전성기를 맞아 지중해 무역을 장악했다. 시돈과 더불어 옛 레바논의 부(富)를 상징하는 도시였다.




◀ 두로 히람왕 석관 앞에서 ‘성서의 땅을 가다’ 촬영 중인 윤석전 목사.



윤석전 목사: 두로는 어디에 있나요?


이원희 목사: 레바논 지역 주요 도시들이 항구이듯, 두로도 항구입니다. 레바논 항구 도시 중 가장 남쪽에 있습니다. 오늘날 이스라엘 북쪽 경계선에서 불과 20km 떨어져 있지만, 국경을 통과할 수 없어서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를 거쳐 남쪽으로 내려와야 합니다. 두로는 원래 섬이었는데, 퇴적물이 쌓여 지금은 육지가 됐습니다.


◀ 고대 지도 두로는 현재 레바논에서 넷째로 큰 항구도시이며, 예루살렘 서북쪽 약 226㎞ 지점, 시돈에서 남쪽으로 약 40㎞ 거리다. 이스라엘 국경에서는 불과 20㎞도 되지 않는 짧은 거리이지만, 이스라엘에서 레바논으로 넘어가는 국경이 없어 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나 요르단을 거쳐 갈 수 있다.





윤석전 목사: 두로는 성경에 언제 처음 등장했나요?


이원희 목사: 두로는 B.C. 2750년경에 세워졌습니다. 성경에는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을 정복하고 각 지파에 땅을 분배해 줄 때 처음 나옵니다. 그 이후 다윗과 솔로몬 때 히람왕(B.C. 980~947)과 함께 언급됩니다.


윤석전 목사: 왕정 시대에 이스라엘은 두로와 얼마나 가깝게 지냈나요?


차준희 교수: 이스라엘이 두로와 가까운 관계를 맺은 것은 다윗왕 때입니다. 다윗이 왕이 되고 예루살렘을 정복한 후에 가까워졌고, 솔로몬 때 성전을 건축하면서 밀접한 관계를 유지합니다. 이후 페니키아 지역 시돈 왕 엣바알의 딸 이세벨이 북이스라엘 아합왕(B.C. 873~B.C. 852)과 결혼하고 그 딸 아달랴가 남유다 여호람(재위 B.C. 852~B.C. 841)의 왕비가 되자, 두로는 북이스라엘과 남유다에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이후 페니키아 지역 두로와 시돈은 부유하고 교만해져 많은 적을 만들어 결국 멸망합니다. 이것을 보면, 두로는 인간의 교만이 죄의 원천으로 강조되는 좋은 예라 하겠습니다.


윤석전 목사: 신약에도 두로가 언급되나요?


차준희 교수: 사도행전 12장 20절에 “헤롯이 두로와 시돈 사람들을 대단히 노여워하나 저희 지방이 왕국에서 나는 양식을 쓰는고로 일심으로 그에게 나아와 왕의 침소 맡은 신하 블라스도를 친하여 화목하기를 청한지라”라고 합니다. 당시 유다 왕이었던 헤롯 아그립바 1세(재위 A.D.37~44)는 해변 도시 두로와 시돈에 곡물을 공급하다가 끊습니다. 그러자 두로와 시돈 사람들이 먹을 것이 없어 헤롯왕에게 아첨하는 사건이 기록돼 있습니다.


◀ 백향목은 고산 지대에서 자라는 귀한 목재로, 이스라엘 외에도 이집트까지 수출된 두로의 대표 수출품이었다. 





윤석전 목사: 역대상 14장에 두로 왕 히람이 다윗에게 백향목을 보낸 내용이 나오는데 어떻게 보냈나요?


이원희 목사: 당시 백향목은 두로의 대표적인 수출품이었습니다. 백향목은 고산 지대에서 자라는데 백향목에서 나오는 송진이 미라(mirra)를 만들 때 쓰여 이스라엘 외에도 이집트에 백향목을 수출한 것으로 알려집니다. 에스겔 26장 14절에 “네가 그물 말리는 곳이 되고 다시는 건축되지 못하리니”라고 예언했듯 백향목 수출을 통해 번성했던 나라는 타락하여 몰락하게 됩니다.


윤석전 목사: 두로가 순식간에 몰락하는 것을 보면 우리는 언제든지 가지고 있을 때 감사하고 하나님과 관계를 끝까지 유지해야겠습니다. 두로 왕 히람의 무덤으로 가 보겠습니다.



▲ 네크로폴리스(Necropolis) ‘죽은 자의 도시’라고 부르는 이곳은 성문 앞에 공동묘지를 조성하는 로마 관습을 따라 만들어졌다. 두로의 네크로폴리스는 세계에서 가장 크고 부유한 공동묘지로 알려졌으며, 로마와 비잔틴 시대 유적이다.



두로에서 남동쪽으로 6km 정도 달리면 두로 왕 히람(Hiram)의 무덤이 길가에 있다. 현재는 인적이 드문 곳에 석관(石棺)으로 남아 있지만, 당대 그의 위세는 예사롭지 않았다. 많은 사람에게 존경받는 왕이었던 그는 교만하여 멸망했다. 히람왕 무덤 부근에는 ‘죽은 자의 도시’라고 부르는 네크로폴리스(Necropolis)가 있다. 허물어진 돌담 아래에 건조 지대 특성을 담은 석관이 즐비하다. 번영한 도시국가 두로는 석관에 누인 시체처럼 패망하고 만다. 알렉산더에게 무너진 두로는 뒤이어 로마의 속국으로 전락했다. 로마가 세운 개선문을 통과해 솔로몬 당시에 건설했던 수로 유적을 지나면 로마 마차 경기장에 들어선다. 이곳에는 헬레니즘 문화의 흔적도 남아 있다. 화려한 로마 문화가 과거를 대변하고 있는 지금의 두로에는 무역도시 두로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다.


윤석전 목사: 두로 왕 히람의 무덤 특징을 설명해 주세요.


이원희 목사: 성경에 나오는 무덤은 자연환경에 따라 그 형태가 다릅니다. 터키 무라 지역은 바위를 깎아 굴을 만들어 시신을 넣었고, 사막의 베두인은 시체를 놓고 돌을 덮은 후 양쪽에 비석을 세웁니다. 비석이 두 개면 성인 어른, 한 개면 여자 성인, 아무것도 없으면 어린아이라는 뜻입니다. 땅에 묻는 방식은 성경에서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두로 왕 히람은 큰 석관에 넣었는데 이는 바위가 많고 건조한 지역에서 흔한 형태입니다.


윤석전 목사: 히람왕은 다윗과 솔로몬 때 이스라엘과 상당히 좋은 관계를 유지했는데 어느 정도였나요?


이원희 목사: 다윗이 왕이 되고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통치자가 됐을 무렵, 히람왕이 의도적으로 접근해 백향목으로 궁전을 짓게 도와줍니다. 팔레스타인 지역을 무역로 삼아 남쪽 지역과 교역하려고 새로운 권력자와 교분을 맺으려는 목적인 것입니다. 솔로몬 때는 성전 건축 자재와 기술자를 보내 주면서 곡물을 요구합니다. 일종의 연계무역인데, 두로가 해변이어서 곡물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받으시고 나의 원을 이루어서 나의 궁정을 위하여 식물을 주소서”(왕상5:9).


윤석전 목사: 두로에 있는 유적을 소개해 주세요.



▲ 히포드롬(Hippodrome) 알렉산더에게 패망하고 후대에 로마 속국으로 전락한 두로에는 로마 유적지가 많다. 두로의 히포드롬은 길이 480m, 폭 160m의 세계 최대 규모 로마식 마차 경기장으로, 관중 3만 명을 수용할 수 있었다. 오늘날에는 국제적인 페스티벌, 음악회가 열리는 공연장으로 이용한다.



이원희 목사: 두로에는 유적이 내륙과 항구에 모두 있습니다. 내륙 큰 도시에는 로마식 마차 경기장 히포드롬이 있고, 항구로 가는 길을 따라가면 솔로몬 시대 수로가 있습니다. 해안에도 로마 유적이 많습니다.


윤석전 목사: 예언서를 살펴보면, 두로의 부귀영화를 말하면서 두로의 심판을 예언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두로는 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나요?


차준희 교수: 에스겔 28장 2~5절에 “네 마음이 교만하여 말하기를 나는 신이라 내가 하나님의 자리 곧 바다 중심에 앉았다 하도다 네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 같은체 할찌라도 너는 사람이요 신이 아니어늘 네가 다니엘보다 지혜로와서 은밀한 것을 깨닫지 못할 것이 없다 하고 네 지혜와 총명으로 재물을 얻었으며 금, 은을 곳간에 저축하였으며 네 큰 지혜와 장사함으로 재물을 더하고 그 재물로 인하여 네 마음이 교만하였도다”라고 말합니다. 난공불락의 성읍 두로는 뛰어난 책략과 교육으로 엄청난 부를 축적했습니다. 하지만 이것에 현혹돼 스스로 신이라는 말까지 합니다. 부와 교만 때문에 하나님이 필요 없는 상황이 됐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너를 구덩이에 빠뜨려서 너로 바다 가운데서 살륙을 당한 자의 죽음 같이 바다 중심에서 죽게 할찌라 너를 살륙하는 자 앞에서 네가 그래도 말하기를 내가 하나님이라 하겠느냐 너를 치는 자의 수중에서 사람뿐이요 신이 아니라”(겔28:8~9). 부족함이 없다고 느끼는 사람은 결국 교만해져 하나님조차 필요 없게 됩니다. 하나님은 교만을 반드시 무너뜨리십니다. 풍족이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닙니다. 부족할 때 겸손하고 경건해질 수 있습니다.



▲ 히람왕의 석관 히람왕은 다윗, 솔로몬과 친밀한 교제와 동맹을 맺었다. 다윗 궁전, 솔로몬 성전을 지을 때 목재, 석재, 기술자를 제공했다. 두로 왕 히람의 무덤은 큰 석관 상태인데, 바위가 많고 건조한 지역에서는 흔한 매장 형태다.



윤석전 목사: 성전 건축을 지원해 준 대가로  솔로몬이 준 갈릴리 지역 성읍을 히람왕은 왜 못마땅히 여겼나요?


이원희 목사: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바다 사람인 히람왕은 내륙 성읍보다는 항구를 원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에는 마땅한 항구가 없었습니다. 또 하나는 두로 지역에 있는 성읍에 비해서 솔로몬이 준 성읍 20곳은 비옥도가 떨어졌습니다. 히람왕은 이 땅을 ‘가불 땅’이라 했는데 ‘쓸모없는 불쾌한 땅’이란 뜻입니다. 이스라엘에서 가장 좋은 땅을 주었지만, 히람왕은 자기네 땅보다 훨씬 못했기에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윤석전 목사: 두로에는 천연자원이 풍부했다는데, 식량을 자급할 능력은 없었나요?


차준희 교수: 두로에는 백향목을 비롯한 천연자원이 부족하지 않았습니다. 또 무역이 활발했기에 이방 나라에서 좋은 것들을 들여왔습니다. 유일한 문제는 곡물이었습니다. 히람왕이 솔로몬과 무역할 때 요구했던 것도 곡물이었고, 신약 시대에 헤롯 아그립바 1세에게 두로 사람들이 수모를 당한 것도 곡물 지원이 중단됐기 때문입니다. 가장 중요한 무기인 식량을 수입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기에 식량이 이 나라의 아킬레스건이었습니다.


윤석전 목사: 사울이 교만했을 때 하나님은 그를 왕 자리에서 끌어내렸습니다. 웃시야도 제사장을 월권해 스스로 교만하다 망했습니다. 오늘날 수많은 사람이 교만해서 망합니다. 두로 역시 교만 탓에 망했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마4:4). 하나님 말씀을 제일 큰 부유로 생각하며 살기 바랍니다. 


<계속>


위 글은 교회신문 <604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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