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전 목사와 함께하는‘성서의 땅을 가다’(159)] 하늘까지 닿겠다는 인간의 교만 심판한 바벨탑 추정지 ‘에사길라’
이라크 편(3)

등록날짜 [ 2019-09-26 11:56:56 ]

하나님이 계신 하늘에 닿기까지 탑 쌓고

강제로 백성의 노동력 착취한 것을 심판

고고학적으로 바벨탑 모형은 지구라트와

사마라의 나선형 첨탑 두 가지로 추정


윤석전 목사: 창세기 11장에 바벨탑 이야기가 나옵니다. 노아 방주 사건 이후 하나의 언어를 사용한 사람들은 하나님을 도전하고 자신의 이름을 높이려고 바벨탑을 쌓았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방관하지 않으시고 언어를 혼잡하게 하셔서 서로 소통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언어가 혼잡해서 의사소통이 안 되자 바벨탑 건설은 중단됐고 사람들은 모두 흩어졌습니다. 하나님을 대적하고자 했던 인간의 교만함을 보여주는 바벨탑 추정지가 바빌론에 있습니다.


언어가 하나이던 창세 시대에 사람들은 자신들의 이름을 높이고 서로 흩어지지 않으려고 하늘에 닿을 바벨탑을 쌓았다(창11:1~4).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셨고, 사람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고, 탑 건축은 중단되었다. 이후 수천 년간 바벨탑 추정지를 찾으려는 연구를 진행했다. 추정지 중 한 곳은 성경에 기록된 바빌론 시날 평지다. 또 다른 추정지는 독일의 로베르트 콜드웨이가 발굴한 이슈타르문과 에사길라(Esagila) 신전 사이 장소다. 시날 평지는 흙으로 구워 만든 고대 벽돌 건축물의 흔적이 남아 있지만 규모가 작아 설득력이 부족하다. 가장 유력한 후보지는 에사길라 신전 터다. 이곳에 남아 있는 거대한 웅덩이를 바벨탑이 세워졌던 장소로 추정하고 있다.


윤석전 목사: 바벨탑에 대한 성경 내용을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우택주 교수: 창세기 11장 1~9절을 보면 그 당시 온 세상 사람의 말은 하나였습니다. 사람들이 동쪽으로 이동하던 중 시날 평지에 정착합니다. 사람들은 벽돌과 역청으로 하늘에 닿는 탑과 도시를 만들어 자신들의 이름을 높이고 흩어짐을 막자고 결의합니다. 하나님은 그 모습을 보시고 인생의 도모를 중단시키기 위해 언어를 혼잡하게 하셨습니다. 말이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되자 탑과 도시의 건설은 중단되고, 사람들은 온 지면으로 흩어졌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창11:7~8).


여호와께서 그곳에서 온 땅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셨다 하여 그 도시의 이름은 ‘바벨’이 되었습니다. 바벨은 아카드어로 ‘신(神)의 문(門)’이라는 뜻에서 유래했고, 히브리어로 ‘혼란’이라는 뜻입니다. 신의 문, 즉 신이 있는 하늘까지 닿겠다는 교만을 하나님께서 심판하신 것입니다.


윤석전 목사: 어느 시대든지 교만은 하나님께서 절대 용납하지 않으시는 역사를 보면서 겸손해야겠다고 각오하게 됩니다. 바벨탑 추정지는 어디인가요?


홍순화 교수: 성경에 기록된 바벨탑의 근거는 창세기 11장에서 언급한 내용대로 ‘시날 평지에 있었다’, ‘벽돌로 쌓았다’는 두 가지뿐입니다. 시날 평지는 이견 없이 바빌론 부근으로 추정되기에 바빌론 부근을 바벨탑 추정지로 봅니다. 가장 많은 학자가 지지하는 곳이 ‘에사길라’입니다. 에사길라는 높은 언덕과 분화구처럼 파인 구덩이가 있는 곳인데, 바빌론의 주신(主神) 마르두크 신전이 있습니다. 이곳에 에테메난키 지구라트가 있었는데 이것을 바벨탑이라 추정합니다만, 아직 발굴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확정지을 수는 없습니다.


또 다른 곳은 현재 비르스 님루드(Birs Nimrud)라고 부르는 도시 ‘보르시파(Borsippa)’입니다. 바빌론에서 남쪽으로 약 20km에 있는 유적이자 유명한 함무라비 왕이 신전을 세운 곳입니다. 이곳은 마르두크의 아들 ‘나부’의 지구라트와 에지다 신전이 있던 곳인데, 42m 높이 지구라트 때문에 17~19세기에는 바벨탑과 혼동했다고 합니다.


윤석전 목사: 바그다드에서 북쪽으로 124km 정도 떨어진 티그리스강 변에는 이슬람 민족의 4대 성지인 ‘사마라’가 있습니다. 이곳에 바벨탑 모양을 짐작하게 할 만한 탑이 있다고 합니다. 그곳으로 가보겠습니다.


사마라(Samarra)로 가는 길에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었다는 모술의 아바시드 다리가 있다. 아름다운 곡선을 이루는 아치 5개가 장식되어 있는데, 앗수르 시대의 교각 양식을 대표한다. 그 부근 우뚝 솟은 암석에는 마이티 교회가 있다. 이곳은 A.D. 4세기에 박해를 피해 터키 동부지역에서 건너온 수도사들이 세운 시리아 정교회의 수도원이다. 해마다 9월이면 사람들은 이곳에 처음 복음이 전파된 날을 기념해 축제를 벌인다.


모술에서 좀 더 떨어진 곳에 있는 카르발라(Karbala)는 이라크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다. 이곳은 이슬람 순교자들의 무덤이 있어 이슬람교도 4대 성지 중 하나다. 카르발라에서 북쪽으로 가면 그레이트 모스크 알무타와킬 사원의 나선형 미나레트 첨탑을 볼 수 있다. 당시 사람들은 50m 높이 탑 정상을 하늘과 닿는 곳으로 여겼으며 이 터에 세운 지구라트 꼭대기도 하늘에 닿아 신과 소통할 수 있다고 믿었다. 계단을 통해 신에게 오른다고 생각한 지구라트가 바로 바벨탑의 모형인 것이다.


윤석전 목사: 사마라 지역의 탑이 바벨탑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의미가 무엇인지 설명해주세요.


홍순화 교수: 사마라는 성경과 직접 관계는 없지만 바벨탑과 연관 있다고 추정되는 탑이 자리한 곳입니다. 이곳은 바그다드에서 북쪽으로 약 124km 떨어졌는데, 이슬람 시아파의 순례 중심지이기 때문에 이라크에서 중요한 곳입니다. 우리가 주목할 점은 사마라의 미나레트 첨탑입니다. 이 첨탑은 높이도 대단하지만 탑 꼭대기까지 걸어 올라가는 독특한 나선형 구조로 되어있습니다.


윤석전 목사: 바벨탑이 어떤 모양으로 만들어졌는지 알 수 있나요?


홍순화 교수: 고고학적으로 바벨탑 모양은 두 가지로 추정합니다. 첫째, 지구라트입니다. 지구라트는 메소포타미아 지역에만 있던 신전 탑입니다. 지구라트가 바벨탑이라는 직접적인 증거는 없지만, 지구라트를 제작한 시기에 바벨탑을 만들었을 것으로 추정하기 때문에 바벨탑 모양을 본 따 지구라트를 만들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둘째, 사마라의 탑입니다. 이 탑은 뱀이 똬리를 틀 듯 돌아 올라가기 때문에 바벨탑도 이런 식으로 지어 올렸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또 아래 기단은 지구라트 모양으로 만들고 위로는 탑 모양으로 쌓아 올렸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윤석전 목사: 바벨탑을 지어 하나님께 도전한 사람들의 교만은 하나님의 심판으로 깨져버렸고 그들의 최후는 우리에게 큰 교훈을 줍니다. 바벨탑을 쌓는 과정에서 사람들이 어떠한 교만을 행했는지 말씀해주세요.


우택주 교수: 하나님이 계신 하늘에 닿기까지 탑을 쌓는 자체도 하나님을 향한 도전이기에 교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높은 탑을 쌓기 위해 백성의 노동력을 착취한 지도자들에게서도 교만함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에 사람을 창조하여 그들이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셨는데, 오히려 몇 사람의 명예와 높임을 위해서, 더군다나 하나님을 도전하기 위해 사람들을 희생하는 꼴을 용서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모두 다 평등한 존재인데도 다른 사람보다 나를 낫다고 여기는 것을 교만으로 보시고 심판하셨다는 생각이 듭니다.


윤석전 목사: 세계사에서 스스로 신이라 부르던 자들은 대부분 결국 비참하게 망했습니다. 이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겸손하고 평등하게 주 안에서 서로 아끼며 사랑해야 한다는 교훈을 주기도 합니다. 성경에서 바벨탑 사건을 언급할 때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라는 말을 사용하십니다. 유일한 존재이신 하나님이 왜 ‘우리’라고 언급하셨나요?


우택주 교수: 구약성경에는 하나님을 지칭하는 표현으로 우리라는 말이 자주 등장합니다. 창세기 1장에서 사람을 만드실 때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창1:26)이라 하시고, 바벨탑 사건에서도 ‘자, 우리가 내려가서’(창11:7)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사야에서도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사6:8)라고 언급하십니다. 예레미야 23장 18절에 ‘여호와의 회의’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이에 대해서는 하나님은 삼위일체이시기에 삼위를 우리라고 칭하셨다고 보기도 합니다. 또 여호와 회의란 열왕기상 22장이나 욥기 1장에 나오는 하나님과 천사들의 회의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회의를 하셨다는 말씀은 하나님의 역사가 충분한 심사숙고를 통해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윤석전 목사: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20:28). 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면 모든 자의 종이 돼야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막10:44). 베드로전서 4장에서는 “말은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봉사는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하나님이 창조한 인간이고 내 이웃들은 하나님의 자녀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원받은 형제들입니다. 우리 모두 교만하지 않고 서로 사랑하기를 바랍니다.



위 글은 교회신문 <642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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